영화 관람은 관객을 특별한 여정으로 이끈다. 그것은 바로 영화가 창조한 특별한 시공간으로의 초대다. 2015년 개봉한 영화 ‘레버넌트’는 19세기 초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거친 세계를 고스란히 체험케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보는 이를 생생한 액션의 현장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는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카메라가 있다.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극한의 생존 사투를 벌이는 한 남성의 이야기, 영화 ‘레버넌트’를 만나 보자. 

민간인 모피 사냥꾼 휴 글래스는 아들 호크와 함께 헨리 대위가 이끄는 미군 소속의 준군사 조직에 가담해 가죽을 모으는 일을 한다. 글래스의 아들 호크는 백인과 인디언의 혼혈인 까닭에 노골적인 멸시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부자의 장점은 인디언의 특징을 잘 파악한다는 점이었다. 야생 짐승을 사냥하는 깊은 산속은 인디언 원주민의 거주지와 겹치는 까닭에 충돌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에 글래스 부자는 유용한 자원이었다. 

목표량을 채운 이들은 식량용 사슴 사냥을 하던 중 리 부족의 급습으로 전체 인원의 3분의 2가 사망하는 큰 피해를 입는다. 그런 중에 길잡이 노릇을 하던 글래스마저 곰의 습격으로 치명상을 당한다. 험준한 겨울 산을 중환자와 함께 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헨리 대위는 후발대로 남아 글래스를 간호할 지원자를 받는다. 거기에는 보상금이 목적인 피츠제럴드도 있었다. 

사실 후발대는 얼마 못 가 사망할 것이 확실한 글래스의 장례를 치러 줄 목적으로 곁에 있었지만 생각보다 글래스는 오래 생존했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길어지자 피츠제럴드는 결국 글래스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를 용인할 리 없는 호크의 저항에 피츠제럴드는 글래스의 눈앞에서 호크를 살해한다.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아버지 글래스는 그렇게 겨울 산에 버려진 채 홀로 남는다. 이후 영화는 혹한과 끔찍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살아남아 복수를 다짐하는 글래스의 생존기를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담아낸다.  

영화 ‘레버넌트’는 표면적으로는 복수극에 가깝지만 결말에 가서는 복수를 놓아 버린다. 이는 응징을 제 손으로 했느냐 안 했느냐의 의미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글래스가 생존하는 과정을 통해 대자연 속의 일부일 뿐인 인간 존재를 조용히 바라보게 한다. 영화 속 자연은 때론 가혹하게, 때론 안전하게, 인간을 보호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하며 한 사람을 변화시킨다. 150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내내 주인공의 거친 호흡과 숨소리로 가득한 이 영화는 죽음의 문턱에서 자연의 흐름에 따라 재생하고 부활한 한 인간의 생존기를 처절하고 파란만장하게 보여 준다. 다만, 전체적인 서사가 그리 친절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이 주는 다양한 질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경이로운 체험으로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새삼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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