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국가가 형성되기 전인 고대시대에는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에 의해 해악을 당했을 때 피해자는 이를 가해자에 대한 ‘복수(復讐)’로써 해결했다. 즉, 자신이 당한 해악을 ‘보복’으로 앙갚음했던 것이고, 이러한 행위는 널리 용인됐다. 

그러나 무한정·무차별적 복수는 ‘복수의 악순환’ 등 많은 폐해를 수반했기에 마침내 복수에 제약을 가하자는 발상이 태동했는데, 이것이 바로 동해보복사상(同害報復思想)이다. 즉, 복수는 허용하되 동해(同害)를 가하는 것만 허용되고, 자신이 입은 해악을 초과하는 해악을 가하는 행위는 금하는 것이다. 복수에 대해 마침내 ‘형평(衡平)의 관념’이 도입된 것으로서, 보복을 제한해 권력적 질서 하에 둔 것은 야만을 탈피한 큰 진보라고 받아들여진다. 

흔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로 표현되며 ‘탈리오의 법칙’이라 일컫는데, 가장 대표적 사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인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법전이다.

국가가 형성된 이후에는 사인(私人)의 사인에 대한 복수는 원칙적으로 전면 금지되고 형벌권은 국가에 전속(專屬)됐다. 즉, 범죄자에 대한 수사·소추 및 재판은 모두 국가기관(경찰·검찰과 법원)이 담당하게 됐고, 형사처벌 과정에 범죄의 피해자나 일반인(국민)이 개입할 여지는 부인됐다. 그러므로 국가기관(경찰·검찰과 법원)은 형벌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피해자의 보복욕구(원한)를 씻어 주고 국민의 정의 관념에 부합하도록 형벌권을 적정하게 행사해야 할 엄중한 책무를 진다.

최근 ‘대장동 일당’에게서 아들 퇴직금과 성과금 명목으로 50억 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검사 출신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를 두고 많은 국민들이 "납득이 안 된다"며 개탄한다. 법원의 판결에도 비판이 제기되지만 "미진하고 부실한 수사·기소로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며 검찰의 소극적이고 무능한 태도에 대한 비판도 거세게 인다. 국민들로서는 어찌할 수 없이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참담한 심정이 든다.

우리 국민 중에는 ‘한(恨)’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권력자와 기득권자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즉, ‘진실’이 은폐되고 ‘정의’가 실종된 일을 많이 겪었다는 말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엔 ‘거짓’과 ‘가짜’가 판을 치고 있다(허위 학력, 허위 경력 등). 거짓 주장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하소연할 길 없어 한탄하기도 하고, 목숨을 던져 결백을 주장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거짓과 가짜가 횡행하다 보니 ‘사기범죄’(부동산사기, 금융사기 등)도 종전보다 훨씬 더 기승을 부리며 활개를 친다. ‘거짓’과 ‘가짜’를 가려내어 ‘진실’과 ‘진짜’를 보호해야 할 책무가 국가(공권력)에게 있지만, 국가(공권력)는 거짓과 가짜를 가려내는 데 무능하고 허약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때때로 거짓과 가짜를 방치하거나 왜곡·결탁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국민들에게 절망과 분노를 안겨 주기도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수사기관·재판기관이 극심하게 불신을 받는 총체적 난국이 펼쳐지고 있다. 예로부터 국가(공권력)가 난국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때 ‘민간(의병·의거)’이 나섰다. 수사기관·재판기관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므로 국민들은 자구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의병·의거를 일으키는’ 심정으로 ‘탐정업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다른 OECD 국가들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국민들이 자기 돈 들여서라도 ‘탐정’을 활용해 ‘사실 규명’에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한다. 민간(탐정)이 ‘공권력(수사기관)’을 보완하고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신용정보업법 개정으로 2020년 8월 5일부터 ‘탐정’ 명칭 사용과 ‘탐정업’ 영위가 가능해졌지만, 법적 토대가 취약하다 보니 탐정업 활성화에는 여전히 제약이 많다.

국회는 ‘탐정법’을 조속히 입법함으로써 공권력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한숨 짓는 국민들이 탐정의 도움을 얻는 자구 노력이라도 기울이도록 해야 한다. 수사기관·재판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이대로 방치하다가 자칫 ‘복수의 시대’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필자만의 기우(杞憂)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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