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2023년 2월 21일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중국 랴오닝성 다롄의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지 87주년이 되는 아주 뜻깊은 날이다.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상임대표 이장섭)는 오전 11시 충북 청주시 낭성면 귀래리 단재 영당 묘정에서 순국 87주기 추모식을 개회선언, 국민의례, 내빈 소개, 단재 선생 약력보고, 헌사, 추모사, 조선혁명선언 낭독, 추모공연, 폐회 선언, 헌화, 기념촬영 순서로 개최한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선생은 조선 말기인 1880년 고종 17년 대전 중구 어남동에서 부친 신광식(申光植, 1849∼1886)과 모친 밀양박씨(密陽朴氏)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항일독립운동가, 민족사학자, 언론인, 문필가로 활약한 역사적 인물이다. 신숙주(申叔舟)의 후예로 본관은 고령신씨(高靈申氏)이고, 필명은 금협산인(錦頰山人)이며, 가명은 유맹원(劉孟源)이다. 10여 세에 통감(通鑑)과 사서삼경을 읽고 시문에 뛰어나 신동이라 불렸다.

신채호 선생은 일제와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anarchist, 무정부주의자)로, 구한말부터 언론계몽운동을 하다가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했으나 견해차로 임정을 탈퇴하고 국민대표자회의 소집과 무정부주의 단체에 가담해 활동했으며, 만주 벌판에 산재한 한민족의 유적과 유물을 찾아다니며 민족사학 연구에 몰두했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란 자아와 피아의 끊임없는 투쟁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특히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항일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이암-이맥-이기-계연수-이유립-정인보-최태영으로 이어지는 민족사학의 맥을 이어받아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등을 저술해 청사에 길이 빛나고 있어 민족사학자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런데 신채호 선생이 최근 뉴라이트 계열의 주류사학자인 권희영(權熙英, 1956)에 의해 ‘또라이’ 또는 ‘정신병자’로 매도당했음에도 대부분의 충청권 언론기관과 시민단체가 침묵해 문제가 됐다. 그리고 신채호 선생이 대전에서 태어나 8년 동안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대전시청과 교육청의 홍보 부족으로 상당수 대전시민들이 신채호 선생의 생가지가 대전 중구 어남동에 위치하는지조차 알지 못해 지역 차원의 관심이 요구된다. 

반면 신채호 선생 묘소와 사당이 있는 충북 청주시의 경우 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와 단재문화예술제전추진위원회 등의 민간조직과 국가보훈처, 충북도, 청주시 등 국가기관과 지자체의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전국 규모로 충북이 자랑하는 지역 인물로 부각시켜 나가고 있어 대전과 대조된다.

그리하여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87주기를 맞이해 신채호 선생을 홍보하고 대전시의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중앙로를 단재로로 명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전국에 ‘중앙로’라는 명칭이 무려 99개가 있어 ‘중앙로’라는 도로명이 지역 특색을 살릴 수 없는데다,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잔재라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구 어남동에 이미 단재로가 개설됐지만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대전시민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도로명은 지역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을 잘 나타내 주기 때문에 지역이나 나라를 빛낸 대표 인물의 호를 활용하는 실례가 많다. 서울 중심가에는 세종로, 충무로, 을지로, 퇴계로가 있다.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에는 계백로가 있고, 천안에는 충무로가 있다. 

둘째, 대전역 광장에서 해마다 8·15 광복의 감격을 경축하는 행사가 개최되는 만큼 이곳에 단재 동상을 세우고 ‘단재 광장’으로 명명해 대전의 정체성 확립과 옛 도심 활성화를 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대전과 충북교육청이 중심이 돼 단재 신채호를 기리고 알리는 향토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넷째, 대전광역시와 청주시가 단재 신채호를 기리는 다채로운 행사를 해서 선생의 위대한 업적을 영원히 기려야 한다. 

다섯째, 한국 정부가 1992년 대전시 중구 어남동에 복원해 놓은 기념물 26호인 신채호 선생 생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여섯째, 관계 당국이 앞으로는 어느 누구도 신채호 선생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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