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복수 인하공업전문대학 호텔경영과 교수 
최복수 인하공업전문대학 호텔경영과 교수 

러시아가 전쟁으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급격히 하락하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은 치열한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것은 세계 무역 규모에서 1위와 2위를 다투는 국가 간의 경제패권 전쟁으로, 세계경제 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특히 미국은 세계 무역 규모에서 지속적으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2017년 연간 무역 규모가 3조8천억 달러로 연간 4조2천억 달러를 달성한 중국에 뒤처지게 됐다. 이것은 미국을 긴장하게 만들었고,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는 중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 더욱 심해졌다. 중국은 이에 대응하면서 양국의 대립은 더욱 격해졌다. 

여기에 더해 두 나라는 차세대 경제패권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분야인 반도체, 2차전지, 바이오, 신재생에너지 등에서는 국가의 명운을 건 살벌한 대결전을 벌이면서 이 분야에 주도권을 쥐기 위한 국수주의 경향이 급격히 팽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규모가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경쟁력이 있고 중차대한 미래 먹거리로 인식하는 반도체, 2차 전지, 바이오, 원자력·수소 등의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국가 차원에서 성장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권 국가인 미국이 자국우선주의에 입각해 대한민국의 명예와 자존심을 심하게 헤집어 놓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처음 문제가 됐던 건 전기차 분야로, 미국의 IRA(Inflation Reduction Act·인플레이션 감축법. 이 법안에 대해서 급등하는 인플레이션을 완화할 목적으로 중국 등 우려 국가들의 배터리 부품과 광물을 일정 부문 이하로 사용하도록 해서 전기차 가치사슬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함) 법안이 문제가 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했을 당시 현대차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미국에 전기차 생산공장을 설립한다 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한 말을 뒤집어 한국 전기차를 보조금 혜택에서 제외하는 법안으로 한국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IRA법의 세부 내용은 3월 중 확정 예정). 한국의 자동차기업과 2차 전지 관련 기업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많은 투자를 통한 반도체 생산설비를 구축한다는 선물을 바이든에게 줬으나 미국의 보조금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장비를 투자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지켜야만 하는 독소조항이 걸려 있어 진퇴양란에 빠졌고, 실제 미국의 보조금은 마이크론과 같이 자국의 반도체업체에만 혜택이 돌아가리라 본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미국은 일본과 2나노 반도체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를 진행한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원자력 분야에서는 미국이 먼저 한국과 협력하자고 손을 벌려 놓고는 우리나라에 개발된 차세대 원자로인 APR 1400 모델에 대해 미국은 원천기술 특허를 이용해 자신들의 허락 없이는 해외에 원자로 수출을 금지하려는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그리고 바이오산업에서도 IRA 법안과 유사한 행동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금 미국이 우리나라에 하는 행동은 중국과 비교해 무엇이 다른지 모를 상황이다. 도대체 우방인지 적인지 분간하기도 힘들다.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 미국은 자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선심을 쓰는 척하고 투자유치를 받아 놓고는 한국의 첨단산업이 대규모로 유치되자 자신의 힘을 믿고 말을 바꾸는 아주 치사하고 졸렬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경기가 그나마 좋은 국가는 미국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다.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으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는다. 심지어 영국은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한다는 말까지 언론에서 회자된다. 이러다 보니 유럽의 선진 각국에서는 선제적으로 금리를 동결해 미국의 금리 인상을 제어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려는 상황이다. 고육지책인 셈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칩4동맹, IRA법으로 우려 국가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염두에 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동맹국들까지 뒤통수를 치는 행동을 하고 있다. 적군도 아군도 없이 오로지 미국 중심적인 행태를 보인다. 서방 국가들은 미국의 이러한 행동에 우려를 하며, 심지어 미국 의회에서까지 바이든의 정책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어떤 주에서는 IRA법 때문에 대규모 투자유치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분리 독립 얘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결국 바이든의 일련의 정책은 동맹국의 분열을 가중시키고 미국에 등을 돌리게 하는 촉매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패권이 약화될 수 있다. 미국의 앞과 뒤가 다른 행동을 믿고 동참해 줄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이 일본의 반도체산업을 무력화시킨 일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 우리 처지에서는 미국이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을 견제한다고는 하지만, 한국도 그 대상이 아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도 현실을 직시하고 대응책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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