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호 부천지원 민사가사조정위원
조수호 부천지원 민사가사조정위원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본능적으로 길을 만들고, 길을 통해 타인과 교류한다. 만남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면서 보다 나은 삶을 개척해 왔으니 오늘날 인간의 위대한 문명은 길 위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이동본능을 충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길이 로마의 길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당시 로마가 길을 통해 세계에서도 가장 큰 교류의 장이 됐다는 의미다. 풍부한 도로망은 로마를 정보와 지식의 저수지로 만들었고, 그들의 문명은 1453년 동로마제국이 오스만투르크에 멸망할 때까지 1천 년을 이어갔다. 

인간의 본능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도 있다. 극한 상황을 뚫고 인간이 개척한 차마고도와 실크로드가 그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길을 통해 타인과 마음껏 교류하면서 문화와 문명을 더욱 발전시켰다.

길이 인간 생활에 필수품임에도 길이 없는 맹지가 있다. 일정한 공간을 벗어날 길이 없는 토지가 맹지인데, 맹지라는 말만 들어도 고립, 감옥, 폐소와 같은 답답한 단어들만 떠오른다. 우리가 일본을 통해 도입한 근대적 사유재산제에 따라 소유권 범위를 보장하고 공시하기 위해 지적도를 만들면서 필지와 필지를 연결하는 길을 표시하지 않은 게 맹지를 양산한 원인이었고, 이것은 후대에 인간의 자유로운 이동을 방해하면서 수많은 불편과 분쟁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러면 맹지에 길을 내는 방법이 있는가? 포괄적이고도 절대적인 소유권이 인정되는 오늘날 잘못된 지적도를 개선하고 맹지에 길을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맹지 소유자가 도로에 접하는 토지의 매수, 임대차, 사용대차, 지상권, 지역권 설정을 통해 사도를 개설하거나, 구거나 하천의 불하 또는 점용허가를 받아 도로를 개설할 수 있다. 이것이 어렵다면 민법이 맹지를 해결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규정하는 ‘주위토지통행권’을 이용해 통로를 만들 수 있지만, 소송을 통해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민법은 제219조에서 ‘①어느 토지와 공로 사이에 그 토지의 용도에 필요한 통로가 없는 경우에 그 토지소유자는 주위의 토지를 통행 또는 통로로 하지 아니하면 공로에 출입할 수 없거나 과다한 비용을 요하는 때에는 그 주위의 토지를 통행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통로를 개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한 손해가 가장 적은 장소와 방법을 선택하여야 한다. ②전항의 통행권자는 통행지 소유자의 손해를 보상하여야 한다’는 주위토지통행권을 규정한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토지의 용도에 맞춰 필요로 하는 통로가 없는 경우에만 인근 토지를 이용할 수 있고, 주위토지통행권이 인정되는 때에도 토지소유자에 대한 손해는 최소한으로 하여야 하므로 기존의 통로가 있음에도 단지 더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는 이러한 권리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쌍방 토지의 용도 및 이용 상황, 통행로 이용의 목적 등에 비춰 토지의 용도에 적합한 범위 내에서 통행 시기나 횟수, 통행 방법 등을 제한하여 인정할 수도 있다’라고 해 그 해석이 아주 제한적이다. 

맹지에 통로를 개설하려는 행위는 주로 건물을 신축하기 위한 것인데, 이에 대해 대법원은 ‘건축법상 건축허가를 받기 위한 도로 개설을 위해서는 이해관계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주위토지통행권 확인 판결만으로 이해관계인 동의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해 별도로 동의나 동의를 강제하는 판결을 얻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어 법을 통한 맹지 해결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맹지를 취득함에는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불완전하고 비정상적 형태인 맹지를 다루는 법원이나 행정관청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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