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색한 부자 이야기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밥을 먹을 때 밥 한 숟갈에 천장에 매달아 놓은 굴비를 한번 쳐다보는 식으로 밥을 먹거나, 생선을 사러 가서는 이것저것 만져만 보고 집으로 돌아와 생선 만진 손을 솥에 씻어 국을 끓이는 행태다. 이들을 일명 지독한 구두쇠, 즉 ‘자린고비’라고 한다.

전혀 다른 이야기도 있다. 평생을 구두쇠짓 해서 모은 돈을 가뭄에 시달리던 1만 가구의 백성을 구하는 데 쓰자 주민들이 감동해 ‘자인고비’(어버이같이 인자한 사람)란 비석을 세운 이야기다. ‘자린고비’란 단어 하나를 두고 전해지는 이야기가 정 반대다. 우리는 후자를 이른바 ‘기부천사’라고 부른다.

용인특례시에는 ‘고구마 할아버지’가 산다. 예전에는 ‘빵 할아버지’였다. 2013년부터 주마다 금요일 어려운 이웃에게 빵을 나눠줘 붙은 애칭이다. 2015년부터는 고구마 농사를 지어 나눠준다. 자식들이 모아서 준 칠순 축하금도 이웃을 위해 내놨다.

올해도 2천만 원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기탁했다. 처인구 이동읍에 사는 모질상(75) 씨다. 모 씨뿐 아니라 통 큰 기부를 하는 기업, 쌈짓돈을 선뜻 내주는 노인과 어린이, 익명의 기부자를 비롯해 ‘기부천사’란 애칭을 얻을 만한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KCC 중앙연구소가 연말연시 이웃돕기 운동 ‘사랑의 열차 이어달리기’에 성금 1억원을 기탁했다.(왼쪽부터 이상일 용인시장, 최재성 KCC 중앙연구소 상무) <용인시 제공>
㈜KCC 중앙연구소가 연말연시 이웃돕기 운동 ‘사랑의 열차 이어달리기’에 성금 1억원을 기탁했다.(왼쪽부터 이상일 용인시장, 최재성 KCC 중앙연구소 상무) <용인시 제공>

#꾸준한 기탁, 통 큰 나눔

지난 2일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KCC 중앙연구소가 용인시를 찾아 시의 연말연시 이웃돕기 운동 ‘사랑의 열차 이어달리기’에 성금 1억 원을 기탁했다. 2015년부터 9년째 이어 오는 통 큰 기부다. 이들이 지금까지 시에 기탁한 성금은 13억1천만 원이다.

㈜대원고속도 1만 원짜리 온누리상품권 1천 장을 전달했다. 2021년부터 설·추석 명절마다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을 위해 써 달라며 기탁한 온누리상품권이 5천만 원에 이른다.

㈜삼일코스텍도 올겨울 성금 기탁을 잊지 않았다. 2017년부터 해마다 3천만 원씩 기부한 단골 나눔기업이다.

처인구 김량장동 용인 아산내과도 2007년부터 해마다 2차례 이웃사랑을 실천한다. 올해는 1천만 원 어치 쌀(10㎏ 314포)을 기탁했다.

㈜모나미 역시 올 겨울 성금 1천만 원과 3천만 원 어치 문구류를 기탁했다. 지난해에도 성금 3천만 원과 7천만 원 어치 문구류를 내놨다.

광주광역시 나누미봉사단이 용인시를 방문해 고향의 따뜻한 온정을 전달했다. <용인시 제공>
광주광역시 나누미봉사단이 용인시를 방문해 고향의 따뜻한 온정을 전달했다. <용인시 제공>

#사랑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타고

아동보호를 담당하는 용인시 공무원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알게 된 기회로 해마다 시 보호아동들을 위해 물품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

대구에서 착즙주스를 생산·판매하는 ‘The청송’의 유주은 대표는 올해 500만 원 어치 착즙주스 41상자와 액상 비타민 200상자를 보냈다. 2021년 한라봉 착즙주스를 보낸 뒤 지금까지 1천여만 원 어치 나눔을 실천했다.

빛고을에서도 사랑이 도착했다. 광주광역시 나누미봉사단 회원 21명이 용인시를 찾아 김치 100통(1통 10㎏)을 전달했다.

#모내기부터 추수까지…오직 나눔을 위해

포곡읍 농촌지도자회는 지난해 12월 30일 10㎏들이 쌀 50포대를 들고 처인구 포곡읍행정복지센터를 찾았다. 회원 79명이 한 해 동안 공동으로 재배한 쌀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기 위한 발걸음이다.

이들의 쌀 나눔 프로젝트는 올해로 10년째다. 2013년부터 포곡읍 영문리에 공동경작지를 마련해 이른 봄 모내기부터 늦가을 수확까지 손수 한다.

천주교 수원교구 보라동 성당 신도들도 관내 취약계층을 돕고자 ‘용인시민 200명에게 희망을’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성당 카페 운영, 성물 판매, 희망콘서트로 1억 원을 모았다. 약속대로 취약계층 200가구를 지원하는 데 쓴다.

용인시어린이집연합회 가정분과도 관내 가정어린이집 재원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플리마켓을 열어 모은 수익금 200만 원을 기탁했고, 기흥구 서농동 금빛서내어린이집과 영덕1동 시립새솔어린이집도 바자회 수익금 각각 71만여 원과 59만여 원을 보탰다.

처인구 역북동 명지대 동아태권도 원아들이 각양각색의 라면 1천898개와 성금 50만원을 전달했다. <용인시 제공>
처인구 역북동 명지대 동아태권도 원아들이 각양각색의 라면 1천898개와 성금 50만원을 전달했다. <용인시 제공>

#억만금보다 ‘쌈짓돈’

내 주머닛돈 단 1천 원도 크고 작음을 떠나 선뜻 누군가에게 내놓기 쉽지 않다. 누구에게나 이런 마음은 매한가지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겠다며 내놓은 10원짜리 동전 하나가 억만장자 금고에 고이 모셔둔 금괴보다 더 값어치가 높은 까닭이다.

기흥구 신갈동 원기경로당 노인들은 지난달 27일 이웃을 도와달라며 용돈을 탈탈 털어 50만 원을 기탁했다. 손자가 오면 양념치킨이나 주문해 줄 요량으로 장을 볼 때마다 거스름돈을 모아놓았던 할머니의 마음이, 손녀 손 잡고 편의점에 가서 젤리 한 봉지를 사주려던 할아버지의 마음이 모인 큰 사랑이다.

이웃사랑이라면 아이들도 할머니·할아버지에 지지 않는다. 지난달 20일 용인시청 시장 접견실에는 돼지 저금통 50개가 나란히 놓였다. 수지구 동천동 시립이스트포레어린이집 원아들이 지난 1년간 용돈을 모은 저금통이다.

지난 10일에는 수지구 상현1동 금호키즈스쿨어린이집 원생들이 동전이 가득 담긴 저금통을 가지고 갔다. 상현동 시립심곡어린이집 어린이들이 모은 성금도, 처인구 역북동 동아태권도 원생들이 모은 라면 1천898봉지도 억금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순수한 이웃사랑이었다.

#맞춤형 나눔

가려운 데를 긁듯이 꼭 필요한 나눔을 하면 그 가치는 더 커진다. 기흥구 영덕동 수원영은교회 내 마을공동체 봉사동아리, 영덕동마을쟁이는 지난달 3일 저소득 청소년과 여성 등 90명에게 위생용품 360팩을 선물했다. 지난해 7월에도 위생용품을 사기 부담스러운 취약계층 여성과 청소년을 위한 생리대를 지원했다.

역북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들은 저소득 장애아동을 위한 성금을 기탁하는 대신, 아이들과 함께 쇼핑을 즐겼다. 아이들이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고르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반나절을 위원들에게 손주를 맡겼던 조손 가정 가장 김 모 할아버지는 "사춘기가 와서 유행에 맞는 외투를 찾는 손주 때문에 곤란했다. 맘에 드는 외투를 마련하게 돼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용인시 민간어린이집 원장 모임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랐다. 추위를 무릅쓰고 폐지를 줍는 저소득 취약계층 노인들에게 필요한 게 뭘까 고민하다 발열조끼 66벌을 마련해 노인들에게 전달했다.

#재능기부

예비사회기업인 한우리건축㈜는 처인구 원삼면에 길 고양이 세 마리와 사는 88세 김모 할머니의 사연을 전해 들었다. 지은 지  60년이 넘은 집이지만 주택 소유주와 땅 주인이 달라 시의 집수리 지원을 받지 못해 불편하게 산다는 사연이다.

한우리건축은 흔쾌히 집수리를 도맡아 했다. 웃풍이 심한 안방 대신 부엌으로 사용하던 중간 방을 침실로 바꾸고, 새 문을 달고, 도배와 장판을 바꿨다. 전기온수기도 들여 놓고, 녹슨 대문도 고쳤다.

집을 고치는 동안 김모 할머니는 한우리건축 직원들에게 바나나와 우유를 건네는 일이 전부였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건네받는 직원들의 가슴은 뻐근하고도 묵직했다.

익명의 기부자가 풍덕천1동에 기탁한 아이스 쿨매트 <용인시 제공>
익명의 기부자가 풍덕천1동에 기탁한 아이스 쿨매트 <용인시 제공>

#이름 없는 천사

3년째 익명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노인이 있다. 2020년부터 연말이면 어김없이 시 복지정책과를 찾는다. 예고도 없다. 그저 20㎏들이 쌀 60~70포대를 내려놓고 홀연히 사라진다. 지난해 12월에도 쌀 70포대를 내려놓고서 조용히 자리를 떴다.

수지구 풍덕천동에도 2년째 익명 천사가 나타났다. 2021년 "코로나19로 더 어려워진 저소득 취약게층 이웃에게 희망과 행복을 나누고 싶다"는 쪽지와 함께 이불과 전기매트, 컵밥 들을 행정복지센터에 남겨두고 유유히 떠난 그는 지난 여름에는 70여 개의 쿨 젤 매트로, 올 겨울에는 이불 100채로 이웃사랑을 보여줬다.

#팬심과 함께한 사랑

수지구에 이불 100채를 기탁 한 김호중 팬클럽 회원 <용인시 제공>
수지구에 이불 100채를 기탁 한 김호중 팬클럽 회원 <용인시 제공>

용인시에서 장어구이 전문점 만수정을 운영하는 김민수 대표는 평소 프로골퍼 박지영을 후원한다. 김 대표는 KLPGA 투어 하나금융그룹 싱가포르 여자오픈에서 박지영이 우승하자 이를 기념해 박지영은 물론 함께 후원하던 프로골퍼 안선주·정연주·김성호 와 함께 이불 100세트(400만 원 어치)를 시에 기탁했다.

프로골퍼 김해림(KLPGA 삼천리 소속)과 그의 팬클럽 ‘해바라기’ 회원들도 지난달 4일 성금 1천만 원을 기탁했다. 김해림은 버디 1개를 칠 때마다 1천 원을 적립했고, 팬클럽 회원 200여 명도 십시일반 성금을 모았다.

‘트바로티’ 김호중 팬클럽 ‘분당·수지·용인 연합 아리스’ 회원들도 이불 100채(800만원 어치)를 기탁했다. 아리스(ARISS)는 김호중 팬들을 지칭하는 말로 ‘분당·수지·용인 연합 아리스’에는 팬 200명이 활동한다.

이들은 지난해 6월 김호중이 사회복무요원 소집해제를 기념해 관내 장애인 시설에 800만 원을, 2021년 12월에도 이웃돕기 성금 500만 원을 선뜻 내놨다. 

  안경환 기자 jin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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