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미국 북감리교회 선교사인 로제타 홀(1865~1951)은 1890년 우리나라로 건너와 반평생인 43년간 활동하며 맹아(盲啞)학교와 의학·간호전문학교를 설립하고, 점자 도입과 한글용 점자 개발에 힘썼으며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점동(박에스더) 등 의료인 양성에 헌신한 여성이다.

특히 1894년 평양에서 시각장애를 앓던 오봉래에게 점자를 가르친 것이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시초가 됐다. 1897년 제작된 ‘로제타 홀 한글점자 교재(4점식)’는 기름을 먹인 두꺼운 한지에 바늘로 구멍을 내어 만들었는데, 1926년 송암 박두성이 6점식 점자에 기초한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발표하기 전까지 약 30년간 쓰였다. 대구대학교 점자출판박물관에 있던 로제타 홀 교재는 2022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로제타 홀은 1890년 25세에 미국 감리교 여성 해외선교회로부터 한국에 파송돼 여의사 메타 하워드의 후임으로 정동에 위치한 조선 최초의 여성병원 ‘보구여관(普救女館)’ 책임자로 임명됐다. ‘여성을 널리(普) 돕고(保) 치료(救)한다’는 의미의 보구여관은 1893년 그 분원 격인 볼드윈 진료소를 동대문 부근에 개설했는데, 이 진료소는 1912년 보구여관과 통합돼 ‘릴리언 해리스 기념병원’으로 확대됐으며 이후 동대문부인병원으로 불리다가 광복 후에 이화여대 부속병원으로 발전했다.

1898년 평양에 여성 치료소인 ‘광혜여원(廣惠女院)’을 열었고, 평양 정착 과정에서 병사한 어린 딸을 기리며 최초의 시각장애인학교 ‘에디스 마그렛 어린이 병동’을 개원했다. 1921년 인천에도 인천기독병원의 전신인 인천부인병원을 설립했다. 동아일보 1921년 7월 4일자 3면에 "미국부인 전도회에서는 일즉이 녀의를 조선에 파견하여 평양에는 광혜녀원, 경성에 동대문부인병원을 세워 일반 부인환자를 치료하더니 이번에는 다시 인천 율목리 237번지에 부인병원을 신설하고 명일부터 진찰을 할 터인데 녀의계에 유명한 ‘홀’ 부인이 감독이 되고 조선 녀자 의사 두 명이 보조 하리라더라"라는 기사가 보인다.

「한국선교연보」(1928)에도 "1921년 ‘홀’ 박사가 제물포의 부녀자들을 위한 의료사업이 절실히 필요함에 따라 한국식 여관을 사서 부녀자의료소를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인천 최초 여성을 위한 진료의 시작이었다. 주기적으로 인천부인병원을 오가던 로제타 홀은 1928년 조선 유지들과 힘을 모아 개설한 ‘여자의학강습소’의 교장으로 부임했는데, 이후 이 강습소는 여러 차례 개명됐다가 ‘고려대 의과대’로 발전해 갔다.

의사인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1860~1894)은 감리교 평양 선교 책임자로 파견돼 의료 선교에 매진하다가 1894년 청일전쟁 시기 발진티푸스에 감염돼 34살의 나이로 타계했다. 조선에서 태어난 최초의 서양인으로도 알려진 아들 셔우드 홀(1893~1991) 역시 의사로서 평생을 결핵 퇴치에 헌신해 최초의 결핵요양원인 황해도 ‘해주 구세요양원’을 건립했으며 ‘조선 결핵환자의 대부’로 존경받았다. 결핵에 대한 계몽과 선전을 위해 남대문을 그린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홀 가족의 헌신적 활동을 기념하는 공간이 곳곳에 남아 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는 로제타 셔우드 홀 기념관과 가족묘가 있다. 여기에 로제타 홀이 조선에서 자녀를 키우면서 쓴 일기와 자녀 교육용으로 작성한 기록의 원본이 그대로 남았다. 대구대학교에는 1984년 로제타 셔우드 홀 여사 기념관이 개관했다. 강원도 고성군에는 독일인 건축가가 지은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는 건축물인 셔우드 홀의 별장이 있다. 

인천은 2021년 인천기독병원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로제타 홀 기념관’을 답동에 개관했다. 1933년 고향으로 돌아간 로제타 홀은 1951년 미국에서 눈을 감았지만 유해는 화장돼 남편이 있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혔다. 

130여 년의 세월을 넘어 현재에도 큰 울림을 주는 홀 가족은 로제타 부부와 두 자녀 그리고 아들(셔우드 홀)의 아내와 아들을 포함해서 모두 6명이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잠들었다. 로제타 홀은 조선에서의 의료 활동 중 남편과 딸을 병으로 잃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조선 여성에게 근대의료와 교육의 길을 열어 준, 인천 역사에서도 기억해야 할 여성 인물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