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보기엔 비슷하지만 본질은 아주 다른 가짜를 뜻하는 단어 ‘사이비(似而非)’는 중국의 사상가 공자가 말해 널리 알려진 단어다. 사이비에 대해 맹자는 "비난하려 해도 비난할 것이 없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 구실이 없다. 시대 흐름에 합류해 더러운 세상과 호흡을 같이 하지만 그의 태도는 충실하고 신의가 있어 보이고, 행동 또한 청렴 결백한 듯하다"고 했다. 지금 들어도 사이비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사이비에게 그럴듯함은 생명이다. 게다가 그들은 더없이 친절하고 따뜻하게 타깃에 접근한다. 그 모든 거짓된 말과 행동은 사기 행각을 벌이기 위한 계획된 수순에 불과하지만, 그들을 믿는 사람들은 주위에 존재한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연상호 감독의 2013년 애니메이션 ‘사이비’는 여러 층위에서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수몰 예정인 가난한 시골 마을에 모처럼 활기가 돈다. 갈 곳 없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생활할 기도원 건립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온 최경석 장로와 젊은 목사의 영이 맑아서일까? 폐병을 앓던 슈퍼 집 칠성의 처는 교회에서 준 물을 마신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날 만큼 건강해졌고, 사람들의 일상에도 희망이 비쳤다. 그러나 영선의 눈에선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공장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모아 둔 대학 등록금을 오랜만에 집에 온 아버지란 사람이 도박자금으로 날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아버지 김민철에게는 염치조차 없었다. 오히려 큰소리치며 아내와 딸에게 폭언과 폭력을 휘둘렀다. 극단적인 선택마저 생각하는 병든 딸을 보다 못한 엄마는 영선의 손을 잡고 교회로 향한다. 

그리고 그날 밤, 하반신 장애가 있는 사람이 두 발로 걷는 기적도 일어난다. 이에 주민들이 깊이 감동해 눈물을 흘릴 때 주정뱅이 김민철이 깽판을 놓는다. 며칠 전 시내에서 최 장로를 만난 적이 있던 김민철은 그가 가짜 장로에 사기꾼임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최경석은 지명수배자 전단지에도 얼굴이 실렸다. 하지만 평판이 워낙 좋지 않은 김민철의 말을 곧이 듣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 사이 신뢰를 얻은 최경석은 목사를 앞세워 따뜻한 위로와 구원의 말로 주민들의 보상금을 털어간다. 

‘사이비’에는 악한 인간이 다수 등장한다. 그런 만큼 가엾은 사람도 많다. 어째서 그들은 사실을 말하는 김명철 대신 사기꾼을 더 신뢰했을까? 과연 인간의 믿음은 어디에 기인할까? 그리고 그 믿음의 진위를 우리는 잘 파악할까? 어쩌면 우리가 믿는 것은 사실에 근거하기보다는 그럴듯한 태도, 외피에 현혹되는 건 아닌지 영화는 묻는다. 또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들으려 하는 편향성 때문에 잘못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가 맹목성을 낳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연상호 감독의 질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기꾼의 농간임을 알면서도 거짓 상황에서 충만한 행복을 느낀다면 그 행복은 가짜라고 간단하게 판별할 수 있는지, 기꺼이 거짓을 택한 사람을 어리석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지 묻는다. 더 나아가 마을 사람들이 현혹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배려 없이 던진 말과 행동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에 대해서도 한참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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