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Cinephile)에게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는 책이 있다. 분명 필독서로 꼽히지만 찾기 힘든 책. 구매를 원하는 독자는 여전히 많으나 오래전에 절판돼 중고 도서조차 구하지 못하는 책. 대학 도서관에 가야 운 좋게 만나는 전설의 책. 바로 「히치콕과의 대화」이다. 서스펜스의 거장 히치콕 감독의 영화 철학과 연출론을 비롯해 다양한 아이디어와 촬영 당시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담아낸 이 책은 대담 형식으로 구성됐다. 

책은 20대 초반의 히치콕 감독이 런던에서 무성영화 삽화디자이너로 영화계에 첫발을 디딘 날부터 40여 년간의 필모그래피를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는 히치콕만큼이나 그의 영화를 사랑한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과의 인터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트뤼포 감독의 제안으로 성사된 세기의 인터뷰는 일주일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일 진행됐다. 일생의 인터뷰를 위해 트뤼포 감독은 히치콕의 전 작품을 보고 심층 질문을 준비했다. 바로 그 결과물이 「히치콕과의 대화」로 번역 출간된 「히치콕 트뤼포」다. 오늘 소개하는 ‘히치콕 트뤼포’(2016)은 1962년 육성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도 책과 마찬가지로 두 거장의 대화로 전개된다. 그리고 히치콕의 영화를 보며 성장한 현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 감독의 인터뷰와 논평을 담는다. 오늘날 히치콕을 위대한 감독으로 명명하는 데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테다. 그러나 히치콕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1940~50년대에는 평가절하하는 시선이 있었다. 할리우드가 보는 히치콕은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궁금증을 극대화할 줄 아는 상업영화 감독, 딱 거기까지였다. 분명 영화적인 짜임새와 완성도에 있어서 훌륭하고 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40여 편의 작품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즈음 히치콕에게 날아든 편지 한 통이 그를 거장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다. 프랑스에서 평론가 겸 감독으로 활동하는 트뤼포가 인터뷰 요청 서신을 보낸 것이다. 29세의 트뤼포는 장편 데뷔 영화 ‘400번의 구타’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해 세계적 주목을 받는 신예 감독이었다. 그런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을 묻는 미디어의 질문에 언제나 히치콕을 언급한다는 건 당시로서는 갸우뚱한 일이었다.  

1950년대 프랑스 영화계에선 누벨바그와 작가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이는 영화를 오락으로 판단하던 기존 관습에서 벗어나 한 편의 예술로 보고자 한 새로운 흐름을 말한다. 트뤼포를 비롯한 평론가 그룹은 예술성이 뛰어난 영화를 발굴했고, 작품의 중심에서 자신만의 세계관과 개성을 표출하는 감독을 작가라 칭했다. 히치콕은 정교하게 설계한 자신만의 스타일과 영상언어로 대중의 감정을 끌어낼 줄 알았다. 소설이나 연극을 영상으로 옮긴 것이 아닌, 영화적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현할 줄 알았던 진정한 영화감독이었다. 

영화 ‘히치콕 트뤼포’는 두 감독의 생생한 육성으로 당시 분위기를 느끼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대화 속에는 영화를 향한 두 감독의 사랑과 서로에 대한 깊은 존중도 진하게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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