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석 인하대학교 이민다문화정책학과 교수
서광석 인하대학교 이민다문화정책학과 교수

100세 인생 시대, 나의 3막 삶 가운데 마지막 3막을 다문화(多文化)에서 다문화(茶文化)로 항로를 변경해 맑은 공기, 깨끗한 물과 건강 차(茶) 그리고 영리하고 예쁜 친구 토종벌과 잘 살아내고 있다. 꿀 떨어지는 노랑마을(가평군 북면 적목리)에서 2도(都) 5촌(村) 생활한다. 이틀은 인하대학교에서 이민정책을 가르치고, 닷새는 하늘이 칠백 평 남짓한 적목리 조무락골 입구 하심정(下心停)에서 마음 내려놓기를 연습한다.

산촌 생활 5년 차 새내기, 나의 하루하루는 새로운 자연법칙을 새삼 깨달으며 삶의 지식을 넓혀 가고 있어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 초보 산촌인 나에게 가장 만만한 건강 차(茶)는 칡차와 칡순 효소 차다. 칡은 소화·강장제로 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데 최고이기에 급성심근경색으로 죽음의 문턱을 오간 나에게는 최고의 보물이다. 인천 소래포구에서 즐겨 마시던 생 칡즙과 어찌 견줄까. 손만 뻗어도 두릅이 지천이요, 산 더덕, 산도라지, 둥굴레를 맘껏 먹을 수 있는 호사를 인생 3막에서 맘껏 누리는 난 행복이 넘친다.

우연찮게 3년 전 초보 산촌인 나와 토종벌은 아주 친한 친구 사이가 됐다. 하심정에 자리잡던 5년 전 마을 어르신에게 선물 받은 설통(전통 방식으로 토종벌을 사육하는 통나무 벌통)에 귀한 토종벌이 이주하면서 토종벌에 관심을 두게 됐고, 이제는 하심정에서 가장 귀한 가족이 됐다. 3년 전 토종벌이 1군이었으나 12군으로 늘어나 어엿한 축산경영체 등록자다.

예로부터 토종벌은 사람의 마음에 반응하며 주인을 알아보는 예의 바르고 독립심이 강해 영충(靈蟲)이라 불렸으며, 토종꿀은 불로장생 선약과 만병의 명약이라고 했다. 이렇게 귀한 영충과 친구가 됐고, 그가 주는 명약 선물 토종꿀은 나에게 달콤함을 넘어 불로장생 건강을 선물해 준다. 하지만 이렇게 귀한 토종벌이 인간의 끝없는 욕심으로 점차 사라져 간다.

우리 마을은 아이 울음소리를 들은 지 오래라 한다. 하심정 근교 명지초등학교 학생 수가 예전에는 300명을 넘었다고 하는데 현재 학생 수는 단 2명뿐이다. 행정안전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앞으로 사라질 기초자치단체 80여 곳 중 경기도가 두 곳인데 그 가운데 한곳이 가평군이고, 특히 가평의 최북단 북면 적목리가 일순위로 지목된다.

사라져 갈 위기에 직면한 우리 마을과 토종벌은 같은 운명에 처했는데, 그 운명을 바꿔 줄 ‘산촌 공동체 활성화 지원사업’(산림청 임업진흥원 지원사업)은 나에게 행복한 산촌 생활을 할 기회를 준 마을에 재능기부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꿀 떨어지는 노랑마을 활성화 사업(달콤한 토종꿀이 줄줄 흐르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공모했고, 운이 좋아서 공모사업이 선정돼 올해로 2년 차를 맞았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중심으로 전통적 가업으로 이어온 ‘토종벌 사육과 토종꿀 채밀사업’을 구체적이고 조직적으로 확대해 주민 간 소통을 강화하고, 일자리와 소득 창출 등 산촌 공동체의 자립 성장을 위한 마을 공동체 사업으로 진행해 새내기 산촌인은 더욱 행복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토종벌이 자꾸 사라져 걱정이다. 꿀벌 개체 수가 감소하면 미래 생태계 붕괴는 불 보듯 뻔하다. 식물의 화분 매개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식물이 열매를 맺지 못해 사라지고, 식물을 먹이로 삼는 초식동물이 사라지고, 식량 부족 등으로 연쇄적으로 인간의 생존도 위협받게 된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도 사라진다"고 예언한 아인슈타인의 예언을 떠올려 본다. 지구 생태계의 대들보 노릇을 하는 꿀벌, 그 가운데서도 토종벌의 개체 수 급감은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평군은 조속히 조례 지정을 통해 ‘토종벌 특별보호구역’ 지정과 특별 지원대책을 마련해 청정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보전하며, 주민의 소득 증대를 꾀해야 한다.

또한 가평군 내 국유림 지역에 헛개나무, 피나무 등 꿀이 많이 나는 밀원수림을 꾸준하게 조성하고, 생태계의 대들보 토종벌을 지켜내기 위한 방역 약제비 지원을 늘리고, 토종벌 사육 농가 수급 관리와 병충해 연구 활성화로 양봉산업 기반을 튼튼히 해야 한다. 더불어 가평군 내 국유림에서 양봉농가가 자유롭게 자연환경을 보호하면서 토종벌을 사육·채밀 활동을 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이 같은 대책들이 토종벌의 줄어든 개체 수를 순식간에 되돌려 놓는 것은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이 지속된다면 다시 한번 한국의 산 어디에서나 윙윙대는 토종벌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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