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마음을 정하는 것을 ‘결심’이라 한다. 대표적인 3대 결심으로 금연, 다이어트, 운동이 있다. 건강을 위해 금연을 결심하고, 헬스장에 등록하고, 식이요법으로 체중 조절에 도전하지만, 돌아보면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실패 앞에서 시도는 해 봤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며 다음을 기약한다.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클수록 차돌 같은 작심삼일의 벽을 넘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결심이란 말로 결심이란 걸 할 때 우리는 실패를 일정 부분 예감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음, 또 다음 기회에 관대한 건 아닐까? 이처럼 쉽지 않은 결심 앞에 헤어진다는 단어가 붙었다. ‘헤어질 결심’, 그것 참 어려워 보인다. 그 뿐만 아니라 그런 결심을 했다는 자체가 이미 헤어질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2022년에 개봉한 영화 ‘헤어질 결심’은 히치콕 감독의 어깨 위에 올라탄 박찬욱 감독의 색다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서스펜스 멜로영화다. 

영화에는 숱한 결심이 등장한다. 결혼생활 16년 차 주말부부로 사는 해준과 정안은 여느 부부와는 다른 각별한 부부애를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부산서부경찰서 강력2팀의 계장인 해준은 깔끔하고 품위 있게 맡은 사건을 해결하고자 최선을 다한다. 각각의 살인사건 피의자 홍산오는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주겠다고 결심한 사내였고, 남편을 살해했다고 의심받는 중국인 아내 송서래도 한국에서 결혼할 당시 찰나일지라도 사랑을 맹세했을 테다. 그러나 이 결심 중 지켜진 건 단 하나도 없었다. 

특히 경찰로서 사건을 올바로 수사하고 처리하는 것이 자부심의 원천이었던 해준이 용의자 서래에게 빠져 결과를 오도한 건 그를 붕괴시켰다. 해준은 자신과 같은 부류로 서래를 인식했고, 서로에게 깊게 스며들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해준은 뒤늦게 송서래가 무죄 입증을 위해 경찰인 자신을 이용했음을 깨닫고 그녀를 떠난다. 유죄의 증거가 될 휴대전화를 바다 깊숙이 던져 버리란 말과 함께. 영화는 "과연 송서래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사내를 이용한 팜 파탈이었을까?"라는 의문을 남기고 다음 챕터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송서래의 관점으로 전개된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여러모로 히치콕을 떠오르게 한다. 비밀로 가득한 신비로운 여인과 그녀를 대변하는 녹색의 빛깔, 여인을 관찰하고 수사하며 보호하는 경찰과의 로맨스, 어지럼증을 불러일으키는 나선형 이미지, 불면증, 관음증, 파도 등 두 영화는 여러모로 겹쳐 보인다. 그러나 하려는 이야기는 다른 궤적을 그린다. 히치콕 감독은 강박적 사랑의 허구와 그 파국을 그렸다면 박찬욱 감독은 훨씬 다층적이고 섬세하게 사랑의 감정을 쌓아 올리고 또 무너트리면서 그 심연에 다가간다. 

특히 헤어짐을 물리적으로 이뤄 내는 엔딩은 형용할 수 없는 먹먹함을 안긴다. 헤어질 결심을 결심하며 영원에 닿게 된 사랑 이야기, ‘헤어질 결심’은 고전의 재해석으로 더 깊고 먼 곳으로 나아갔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