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전 부산지방경찰청장
이상식 전 부산지방경찰청장

윤석열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을 한 달도 남겨 두지 않은 상황에서 외교안보라인 사령탑이라 할 만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사퇴했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시각이 압도한다. 이미 대통령실 외교라인의 의전·외교 두 비서관이 한 달 간격으로 사퇴했던 터였다.

새 국가안보실장에는 조태용 주미대사를 임명했다. 중요한 외교 회담을 앞두고 외교안보라인 수뇌부가 통째로 흔들리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미국 측에서 블랙핑크와 레이디 가가의 동맹 70주년 기념 협연을 제안했는데, 윤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언론에서 말하는 이유다. 미국 측 제안이 1월 초께 이미 이뤄졌다는데, 여태껏 대통령실 내부에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미적대고 있었다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실 내부 그리고 정부 외교라인 간 업무 협조도, 상호 체크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셈이다. 

초등학교 취학연령 5세 이하, 69시간 근로 따위로 보인 국정 난맥상이 외교안보에까지 번진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이마저도 전임 정부 탓이라고 할 텐가. 그러나 정상회담에 부수되는 팝 공연을 두고 외교안보라인 사령탑을 한미정상회담을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교체한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와 총리실 그리고 해외 공관에서 근무한 경험으로 볼 때 정상회담에 수반되는 이벤트 정도는 쌍방 외교실무라인에서 조율하고 책임질 문제지, 외교안보 수장까지 교체해야 할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외교안보라인 내부의 노선 갈등설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파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파 간 갈등이 있고, 이 중 김태효파가 결국 승리했다는 얘기다. 대체로 전통 있고 이치에 합당한 사고를 하는 외교라인이 뒤로 물러나고 김태효 1차장을 중심으로 한 강경외교라인이 주도권을 잡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제3자 배상안을 중심으로 한 한일외교협상을 주도해 관철시킨 사람이 김태효 1차장이라는 점은 공공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없었더라도 외교안보라인 교체 여론은 높았다. 윤 대통령 해외 순방 때마다 이른바 ‘외교참사’가 빚어졌고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법에 제대로 된 대응도 못한데다, 제3자 배상 방식이라는 대일외교 해법은 국민 분노와 반발을 가져왔다. 기다려 보자는 정부 기대에 일본이 초등학교 역사교과서 개악으로 바로 뒤통수를 쳤다. 대일외교가 심각한 실패로 끝난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렇듯 악화일로의 민심에 윤 정부가 선수 교체로 응답했다고 해석할 만하다. 기왕 교체한 마당에 정부는 하루빨리 외교안보라인을 정비해 산적한 한미 현안에 대응해야 한다. 한미 간에는 북핵 미사일 위기, 한미 군사동맹 강화, 한미일 군사협력, 쿼드체제 같은 군사외교 사안뿐 아니라 IRA에 따른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보조금, 칩4동맹, 대중국 수출규제를 비롯한 중차대한 경제 현안이 산적했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되돌아봐야 할 부분은 지금까지 우리 외교가 너무 미국에 끌려다니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 국력은 세계 10위권이고 군사력은 6위다. ‘가장 강력한 국가 순위’에서 한국은 6위로, 일본(8위)보다 앞선다.

우리 국력이 지금보다 못했던 김대중 정부 때도 클린턴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에서 한국이 운전수이고 미국은 조수라며 우리 외교를 인정한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요구인 해외 파병을 하면서도 북핵위기를 평화롭게 해결하려고 노력하는가 하면 자주외교를 펼쳤다. 문재인 정부도 미국과 중국 간 등거리 외교로 국익을 최대한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다.

그에 견줘 윤석열 정부는 미국은커녕 일본에도 저자세 외교로 일관한다. 그러면서 실리도 챙기지 못한다. 한미 동맹은 분명 우리 안보의 핵심이다. 그러나 한미일 동맹에 성급하게 뛰어드는 일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언젠가 선택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균형·실리외교로 국익을 최대치로 챙겨야 한다.

사드 때 경험과 대중 무역 적자, 그 밖에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할 때 현 정부 외교가 한미일 동맹에 너무 치우치는 듯싶어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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