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다빈치로 불린 인물이 있다. 과학기술, 공학, 행정, 법, 국방, 의학 등의 학문에 두루 능했던 조선 후기 대표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다. 배다리를 준공하고 수원화성을 설계한 기술자로 정조의 눈에 들었지만 순조 1년인 1801년 신유박해와 황사영 백서 사건에 연루돼 18년이라는 오랜 시간 귀양살이를 하기도 했다. 

당시 정약용은 서양 학문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것을 계기로 천주교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유교의 가르침과는 여러모로 반대되는 점이 많았던 서학을 조선의 지배층은 용인하지 못했다. 정약용은 두 명의 형님과 함께 고초를 겪었는데 셋째 형 정약종은 배교를 거부해 사형에 처해졌고, 둘째 형 정약전과 정약용은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가게 된다. 그 시절 탄생한 명저가 다산의 「목민심서」이고, 형님 정약전의 「자산어보」다. 자산어보는 흑산도의 바다 생물을 기록한 어류도감이다. 2021년 개봉한 영화 ‘자산어보’는 귀양길에 오른 두 형제의 이별에서 시작한다.

세상으로부터 유배된 정약전은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을 띠는 흑산도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물고기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는 청년 창대를 만난다. 둘은 나이 차이, 생각 차이,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의 스승이자 벗이 돼 준다. 입신양명을 꿈꾸며 학문에 뜻을 둔 창대를 위해 정약전은 자신의 지식을 내어주고, 창대 또한 어류도감의 집필을 도우며 우정을 쌓아간다. 

정약전은 신분 구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바라던 학자였지만 미처 다 떨쳐내지 못한 신분 질서와 남존여비에 대한 편견이 있었음을 창대와 흑산도 여인인 가거댁과의 대화를 통해 깨닫는다. 그렇게 정약전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며 더욱 깊어진다. 

영화 ‘자산어보’는 좋은 벗을 만나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때 성장은 비단 정약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어부 창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창대는 어류도감의 마무리를 함께하지 못한 채 자신의 꿈을 향해 세속으로 나아가지만, 이후 고향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통해 세상과 부딪히며 성장한다. 유배 당시 정약전에게 흑산도는 깜깜하고 어두운 흑산(黑山)이었지만 창대와 함께하는 동안 그 섬은 검고도 깊은 자산(玆山)이 된다. 

정약전은 「자산어보」 서문에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책이 많지 않았다"고 창대를 소개하며 "그의 도움으로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창대에 대한 기록은 그것뿐이다. 따라서 영화는 그 서문을 바탕으로 실화와 허구를 적절히 섞어 조화롭게 완성시킨 팩션이다. 작품은 서로의 벗이자 스승이 돼 마음을 나눈 두 사람의 아름다운 관계를 쉽고, 재미있으며, 따뜻한 감정으로 풀어냈다. 그 뿐만 아니라 역사가 기억하는 위인의 행적은 그 사람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니라 함께했던 사람들과 같이 이뤄 낸 결과임을 전한다. 이는 한 시대를 살다 간 이름 모를 많은 이들의 가치를 존중하는 감독의 역사관·세계관과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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