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아버지, 불효 여식 청이는 요만큼도 생각하지 마옵소서. 떴다(물에 빠지는 모습) 물에 ‘풍’."

효녀 심청이 아버지 심 봉사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백령도 인근 인당수에 몸을 던지며 유언처럼 남긴 애절한 소리에 객석에서는 안타까움과 명창을 응원하는 추임새가 동시에 흘러나왔다.

그리고 4시간여가 흐른 뒤 "고수 팔도 아프실 테요. 이경아 목도 아플 지경이니. 어질더질하다"는 명창의 마지막 소리를 끝으로 오래 이어진 ‘동초제 심청가’ 완창 무대가 막을 내렸다. 

2015년 송도에 터를 잡은 뒤 인천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이경아(40)명창의 다섯 번째 심청가 완창 무대가 지난 15일 인천시무형문화재전수관 풍류관에서 펼쳐졌다.

젊은 명창답게 오랜 시간에 걸친 공연인데도 피곤함을 드러내기보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쭉 들이키며 완창 스트레스를 풀어냈다.

"일 년에 두 번씩, 앞으로 40번을 완창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노력합니다. 이제 겨우 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진짜 인천에서 잘하는 국악인으로 인정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경아 명창
이경아 명창

# 최연소 대통령상

이경아 명창은 2021년 10월 광주광역시 빛고을시민문화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제29회 임방울국악제 판소리’ 마지막 참가자로 나서 명창부 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뒤 ‘명창’ 칭호를 받았다.

앞서 열린 제28회 임방울국악제에서 2등을 수상한 그로서는 매우 힘든 도전이기도 했다. 재도전에서 1등을 못하면 3등으로 내려앉는 국악제 관행 때문에 대상 말고는 관심 밖이었다. 해서 죽기 살기로 연습에 몰두했고, 그 결과 경연이 끝난 뒤 심사위원단 평가에서 총점 492점(평균 98.4점)이라는 최고점을 받고 나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인천에서 인정받는 국악인으로 성장하려고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다 인천시민으로 대통령상 수상과 ‘명창’이라는 칭호까지 받게 돼 많이 자랑스러웠어요. 앞으로도 국악인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의 첫 대통령상 수상은 임방울국악제가 아닌 10여 년 전 대학원 재학시절 때다. 

중앙대 국악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2007년 진도에서 열린 ‘전국남도민요경창대회’ 명창 부문에서 ‘흥타령 육자배기’로 생애 첫 번째이자 국내 최연소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당시 25살 때인 그가 받은 최연소 대통령상은 이후 만 30세 이상으로 출전자 나이 제한이 생기면서 앞으로 깨지 못할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았다.

2021년 임방울국악제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눈물을 쏟는 이경아 명창.
2021년 임방울국악제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눈물을 쏟는 이경아 명창.

# 대표 국악가족

이렇게 40세도 안 된 젊은 명창으로, 최고의 소리꾼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엔 역시 든든한 가족이 있다. 그의 집안은 국내에서 알아주는 ‘국악가족’으로 꼽힌다. 전라북도 도립국악원 창극단장이기도 한 어머니 조영자 씨는 민요와 안무, 판소리 분야에서 세 번이나 대통령상을 수상한 명창이다.

이모 조소녀 씨 역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창이다. 여기에 사촌오빠인 조용안·조용복·조용수 씨는 국내 최고 고수 3인방이다.

이렇게 어머니와 이모, 사촌오빠들만으로도 하나의 창극단을 꾸릴 만큼 실력을 갖춘 가족들 사이에서 이경아 명창은 자연스럽게 국악과 만날 기회가 많았다.

가족들 역시 이경아 명창이 소리꾼의 길로 들어서기를 원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이모의 유혹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어머니와 이모가 소리를 연마하려고 폭포나 암자로 ‘산 공부’를 떠날 때마다 어린이 명창도 따라 나섰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 어느 여름 날, 산 공부에 따라 나선 이 명창에게 이모가 은밀한 제안을 한다. 소리가 그렇게 좋다고 느끼지 못한 이 명창에게 슬쩍 3만 원을 쥐어 주면서 "앞으로 더 많이 줄 테니 이모와 함께 소리를 하자"는 제안에 돈을 더 받겠다는 욕심에 덜컥 응해 버렸다.

그렇게 이 명창의 소리 인생은 시작했다. 이후 9살이 되던 해부터 본격 국악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의 재능은 빛을 발했다. 초등 5학년 때 그의 인생 첫 대회인 ‘군산학생경연대회’에 어머니 한복을 입고 출전해 받은 대상을 시작으로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각종 상을 휩쓸었다.

전주예고를 졸업한 뒤 중앙대 국악대학 음악극과(전통예술학부)에서 판소리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대학원 재학 시절 첫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대학원 과정을 마친 뒤부터는 전통 국악보다 퓨전 음악으로 관심을 돌렸다. 어떻게 보면 정통 판소리에서 벗어난 외도였지만, 그에게는 많은 경험과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한 시절로 기억한다.

"대학원 때 연기자이자 소리꾼인 김성녀 학과장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연기와 국악가요를 부르며 퓨전 음악에 빠져들었는데, 퓨전은 새로운 반찬이라 더 맛있고 그 재미에 푹 빠져 좋은 나날이었습니다." 

이 명창은 국악 뮤지컬에도 출연하고, 정통 록 밴드인 ‘아리랑 플라즈마’에 들어가 ‘별하’라는 예명으로 보컬로 활동하기도 했다. 음반도 여러 개 냈고, 대표 록 페스티벌인 ‘자라섬 록페스티벌’에도 출연하면서 8년 정도를 정통 판소리에서 벗어나 외도했다.

하지만 ‘음악 외도’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판소리로 복귀할 결심을 한 이 명창은 2017년 다시 정통 판소리로 돌아가 임방울국악제 준비를 서두른다. 이왕 판소리를 시작했다면 제대로 해 명창도 되고 문화재도 되겠다는 목표였다.

그리고 2020년 임방울국악제 2등에 이어 2021년 대통령상 대상을 차지하면서 판소리계에서 받아야 할 상을 하나씩 거머쥐며 ‘도장 깨기’를 마무리했다.

15일 인천시 무형문화재전수관 풍류관에서 동초제 심청가를 완창했다.
15일 인천시 무형문화재전수관 풍류관에서 동초제 심청가를 완창했다.

# 또 다른 목표

이 명창은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인천에서 제대로 된 명창으로 자리잡는 일이다. 인천에서 삶이 길지는 않지만 그의 인천사랑은 남다르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아리랑이 인천에만 없다는 점에 착안해 인천 랜드마크와 시민 희망을 담은 ‘인천아리랑’을 작사하고 곡까지 붙여 앨범을 냈다. 

그리고 오는 22일 백령도 심청각에서 심청의 넋을 기리는 음악 행위로서 씻김굿 야외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공연은 심청전 범피중류(泛彼中流) 대목으로 심청이 인당수에 뛰어드는 대목과 심청이 넋을 기리는 소리를 선보인다.

더구나 이번 공연에는 한국무용을 전공한 어머니 조영자 명창이 ‘지전춤’을 담당해 국내 판소리를 대표하는 명창 모녀가 함께하는 무대로 꾸민다.

이경아 명창 기대도 남다르다.

"인천 백령도는 심청이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바다에 빠진 곳이라는 점에서 심청가를 부르는 저에게 백령도 공연은 기대가 무척 큽니다. 그런 점에서 심청가에 더 애착이 가고, 이번 공연에는 어머니도 함께해 더 행복한 공연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한동식 기자 dshan@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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