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사기」 계포란포열전(季布欒布列傳)에 나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의리, 도리에 관한 이야기다. ‘항우’ 배하의 명장 ‘계포’는 전쟁에 진 후 ‘유방’에게 현상금 1천 금, 숨겨주면 삼족을 멸하는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럼에도 그 인물을 알아 본 노나라 주(朱)씨는 ‘계포’를 숨겨 주고 당시 권력자 하후영(夏候영)에게 이를 고하며 "신하가 자신의 나라와 주군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잡아서 처단만 하려고 한다는 것은 아무리 한 때 적이었다고 해도 의리도, 도리도 없는 일입니다. 받아들여 아끼고 베풀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후영’은 곧 바로 ‘유방’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사면하여 낭중(郎中)이란 중요한 자리에 앉혀 활용했다.

2021년 4월 국제무역위원회(ITC)는 SK가 LG에 2조 원(현금 1조+로열티 1조)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차세대 2차 전지 핵심기술과 영업비밀인 ‘지식재산권’이 사람에 의해 유출, 도용됐다는 내용이었다. LG직원이 SK로 이직하며 시작된 배터리 핵심기술의 조직적 탈취라고 본 것이다. 최근 특허청장은 ‘현대판 매국’인 기술의 해외유출에 반도체 산업이 위험하다고 발표했다. 기술 유출에 의한 실제 피해액은 22조 원에 달한다 밝히며, 사람 마음을 붙들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같이 일하는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포용하고 아끼며 존중해 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특히 이 시대 ‘지식재산권’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보호받는다. 직원 입장에서는 당연히 업무에 대한 보상으로 급여를 지급 받지만, 독창성이 따르고 전문화 된 영역에서는 나름 그 지적가치를 인정받고 보호받아야 하며 함부로 의사결정에서 배제되거나 무시 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사회적 합의인 셈이다. 직원의 독창성을 일반화로 격을 낮춰 마구 대한다면 또 그것이 직원을 일정한 외적인 장치나 보상 없이 대하는데 활용되면 그것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순간 순간 이용만 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경쟁사로 둥지를 옮기고 영업비밀 같은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 정보를 말한다는(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그런 문제까지는 아니더라도 CEO는 그만한 보이지 않는 자산을 인정하는 여유와 덕목, 지혜로움을 가져야 한다. 사람을 관리하는 일이라면 관리하는 사람이나 관리대상인 사람이나 서로 인격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배려심은 최소한 가져야 하는 것이다.

‘감탄고토(甘呑苦吐)나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용어가 수천 년이 지나도 회자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일들이 4차 산업현장에서도 빈번하게, 버젓하게 보여지고 행해지기 때문인 것이다.

기업이 가지는 큰 목적이 고부가 경제활동, 고용창출, 수익극대화 등 교과서적 이해로 CEO들의 마음을 움직이겠지만 경영전략이나 경영환경, 시대적 상황 등 변수가 너무 많은 작금의 보이지 않는 리스크는 결국 사람의, 사람에 의한 상호작용으로 성패가 결정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의 관계 지향점은 본인 아니면 알 수 없는 그런 보이지 않는 그릇의 크기를 나타낸다.

ESG란 결국 다양성과 포용성을 지향하는 경영의 포석인데 사람 하나를 제대로 대접 못해 가치나 문화를 망가뜨린다면 그래서 영업비밀이란 법리적 용어와 탈취라는 형사법 용어까지 동원된다면 가치와 의미는 이미 무너진 그런 관계이다. 물론 A사 직원의 열정과 아이디어가 B사로 갔다고 해서 원천무효나 새로운 독창성을 요구하는 자체는 단세포적이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직원의 열정과 아이디어를 제대로 인정하고 다른 곳으로 옮겼을 때의 리스크까지 함께 고려한 포용성과 인사관리정책이 먼저고 그 다음이 직원의 개인윤리인 것이다. 

직원들의 열정과 업무 아이디어 하나 하나 존중하고 개선보완하며 상호의존형 체제를 유지했다면 직장을 옮기고 옮긴 자리에서 그 뻔한 열정과 아이디어를 탈취 소리까지 들으며 적용 했을까? 최소한 ‘사람의 도리’는 생각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 책임은 CEO에게 있다. 주변 사람을 싸구려 취급하면 반드시 성과나 가치도 종국에는 싸구려로 전락한다. ESG경영 한다고 거창하고 담대한 구호를 아무리 내걸어도 부하 직원 하나 그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사람하나 제대로 얻지 못한다. 직원을 믿고 부렸으면 끝까지 지켜 주며 내 곁에 둬야 하고, 반대로 그렇게 믿음을 주고 존중해 주면 최선을 다해 한마음으로 도움이 되는 도리를 지켜가야 한다. 사람을 한 번 놓치면 그런 사람 다시 얻기도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ESG경영은 한 길 사람 속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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