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과 입추가 지난지 몇 일이 됐건만 더위는 속절없이 가실 줄을 모른다. 삼복더위 속에서도 입추만을 기다렸건만 35℃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앞에는 꼼작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올해처럼 입추가 우리에게 아무런 선선함도 주지 못했던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희망을 갖고 처서(處暑)를 기다린다. 24절기의 하나인 처서. 음력으로는 7월의 중기이고, 양력으로는 8월20일 이후 무렵으로, 입추와 백로 사이에 있는 서퇴기(暑退期)이다. 이때 태양은 황경(黃經) 150°에서 15°사이인 처서의 구역을 지난다. 옛날 중국에서는 처서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해 ①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②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며 ③논벼가 익는다고 했다고 전해지는 얘기도 있다. 그리고 처서가 든 8월은 세 벌 김매기를 한다. 피뽑기, 논두렁 풀베기를 하고 참깨를 털고 옥수수를 수확한다. 또 김장용 무·배추 갈기, 논·밭 웃비료 주기가 이뤄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 간격으로 곡식 천 석이 감해진다'는 말처럼 처서에 비가 오면 흉작이 든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그 만큼 처서에 맑은 날씨와 선선한 기운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처서가 지나면 벌초를 하고, 여름철 장마로 습기가 찬 옷이나 책을 말리는 포쇄를 하며 아침·저녁으로 선선함을 느끼게 된다. 아울러 `처서가 되면 모기 입이 삐뚤어 진다'는 속담처럼 파리·모기도 사라져 그야말로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게 된다. 또한 백중의 호미씻이도 끝나게 되어 수확만을 앞둔 시기로 잠깐이나마 농촌이 한가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농부들은 익어가는 곡식을 보며 가을의 풍성함을 기다리며 행복에 젖는다. 처서가 든 8월을 `동동 팔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칠월은 한가해 어정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팔월은 추수하느라 바빠 행복에 젖은 발을 동동 구르며 지낸다는 말도 있다. 최근의 정치와 경제상황이 올 여름 무더위 만큼이나 극성을 부리고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의 요즘 심정은 아마도 `세월아 빨리 지나가라. 그러면 더위는 지나갈 것이다'라는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입추가 지나도 더위는 가시지 않듯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들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어 무더위 만큼이나 답답하다. 따라서 국민들은 다시 처서를 기다린다. 국민들에게 처서 같은 시원함과 행복감을 안겨줄 희망의 정치와 경제상황이 그리워 지고 있다.(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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