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자녀를 둔 전업주부 A씨는 지난해 2월 학습지 영업사원이 된 뒤 6개월여 만에 9천300여만 원의 계약 성과를 냈다. A씨가 영업 재능을 발휘해서가 아니다. 계약 성과 중 2천300여만 원은 스스로 한 계약이고, 2천여만 원은 친동생 2명과 한 계약이다. 나머지 5천여만 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계약이 이뤄졌다. 학습지 영업을 담당하는 지국장의 과잉 판매 꾐에 넘어간 결과다.

30일 기호일보 취재 결과 A씨 사연은 이렇다.

A씨는 지난해 2월 아는 사람에게 소개받은 교원 빨간펜 B지국장과 월회비 12만8천 원짜리 한글·수학·영어 세 과목을 36개월 약정으로 계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B지국장은 전집을 비롯한 다른 상품 가입을 권하면서 ‘파트너 등록’을 하면 500만 원가량의 전집세트를 10% 할인가에 산다고 했다. 4개월간 4번 교육을 받고 월 10회 이상 출석하면 달마다 100만 원씩 정착지원금 400만 원을 받는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보육교사 자격증을 준비하던 A씨는 "단기 알바처럼 4개월만 교육받고 돈도 벌어가라"는 B지국장 제안에 혹했다. 외벌이 가계에 보탬이 된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결국 A씨는 ‘파트너 등록’ 링크에 접속해 인적사항을 입력했다.

문제는 그때부터다. 파트너 등록은 판매 위임계약으로 빨간펜 학습지 상품에 대한 판매 권한을 개인이 위임받는 절차였다. 단순 알바가 아니라 빨간펜 영업사원이 됐다.

A씨 사번이 등록되자 B지국장 태도는 바뀌었다. 정착지원금을 받기 위한 영업 실적을 요구했다. 또 A씨 휴대전화에 저장한 모든 연락처를 적어내도록 한 뒤 아는 사람들에게 영업 메시지도 전송하라고 강요했다. 메시지는 B지국장이 불러준 내용대로 했다.

B지국장은 전집을 비롯한 각종 계약서를 내밀며 서명하도록 강요도 했다. 서류 확인조차 제대로 못한 A씨는 들은 적도 없는 중국어 프리패스, AI수학, 아이캔두 코딩, 창의완독을 비롯해 1천874만 원 상당의 상품이 자신 명의로 계약된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당초 계약한 한글·수학·영어에 더하면 6개월간 계약한 약정 총액은 2천338만 원 규모다.

B지국장 강매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월회비를 대납하겠다"는 사탕발림으로 친동생 2명을 끌어들이도록 했다. B지국장이 설명도 없이 끼워 넣은 계약서 탓에 A씨 동생 2명이 계약한 상품 총액은 2천만 원을 넘었다.

B지국장은 다른 고객에게 판 상품도 몰래 A씨 사번으로 계약했다. 그렇게 A씨 판매 실적은 8월 한 달에만 7천만 원에 이르렀다.

A씨에게 실적 수당 1천만 원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 중 600만 원은 동생들 월회비로 선납했다. B지국장이 "동생들 회비 부담이 크지 않느냐"며 유도했다.

남은 400만 원도 A씨 몫은 아니었다. 받은 수당을 다시 토해내는 이른바 ‘수당 되물림’ 때문이다. A씨 사번으로 계약한 상품들이 줄줄이 해지되면서 A씨가 토해낼 수당은 676만 원에 이르렀다.

참다 못한 A씨가 가입한 상품과 사번 해지를 요구했으나 사번 해지는 한 달 만에야, 상품은 2천338만 원 중 390만 원 수준만 해지됐다. 나머지는 할부 개념으로 해지가 불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지국장한테 같은 형태로 상품 1천여만 원을 강매 당한 C씨는 상품 해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100만 원이 넘는 월회비 자동이체를 중단했다. 몇 달 뒤 미납금에 대한 교원 쪽 채권추심이 시작됐고, 신용등급 하락에 신용카드도 정지당했다. 첫 달 교육만 참석한 뒤 사번 해지를 요구했으나 136만 원의 수당 되물림도 청구됐다.

교원 빨간펜 판매 조직은 지국장과 교사로 구성하는데, 판매 권한은 교사에게만 위임한다. 지국장은 판매권 없이 독려와 실적 관리를 하고 쌓은 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다.

당초 지국장·지구장·교사 3단계 체계였으나 2007년과 2020년 다단계판매업에 해당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과태료 200만 원과 경고 조치를 받아 지국장·교사 2단계로 줄였다. 판매원도 개인사업자가 아닌 특수고용근로자로 전환했다.

이 같은 제도 개선에 교원은 "준법 경영 방식을 최우선으로 한다"며 "방문판매법을 준수하려고 제도를 적극 개선한 노력을 알아 달라"는 태도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지국장은 교사 거래실적 20%를 수수료로 받고, 팀이 달 매출 1억 원을 달성하면 1천만 원이 넘는 인센티브도 받아간다"며 "다단계 형태 영업으로 판매원에게 과잉 영업을 독려하는 구조는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 일부는 교원과 법정 다툼을 벌인다. 이 중 일부 소송 대리인 김승유 변호사는 "(프리패스처럼) 중도 해지 불가능한 약관, 본사 책임 회피, 과잉 영업 방치 같은 구조가 소비자 피해를 키운다"며 "처벌 규정을 더 상세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앞으로 해당 사안을 유의해 살피겠다"고 했다.

한편, 경찰은 ㈜교원과 교원 직원 30여 명을 방문판매법 위반, 사문서 위조·행사 따위 혐의로 조사 중이다.

# 김승유 변호사 인터뷰

"조직을 갖춰 저지르는 악질 범죄와 다름없습니다."

교원 빨간펜 피해자 소송 대리인인 흰여울법률사무소 김승유 변호사는 30일 "교원은 다단계 구조로 지국장의 과잉 영업을 부추기면서도 강매한 상품의 중도 해지가 불가능하도록 약관을 설계했다"며 "여러 요소가 짜임새 있게 맞물려 피해가 발생한다"고 했다.

이어 "가장 시급한 부분은 (프리패스처럼) 중도 해지가 불가능한 상품의 불공정 약관 개정"이라며 "도요새 프리패스 상품의 경우 해지가 가능하다는 취지의 판결도 있는데, 교원 쪽은 ‘해지 불가하다’는 답변으로 일관한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소비자들이 해지 성공 사례를 모르는 상황이 가장 안타깝다"며 "법상 논리를 갖춰 대응하는 학부모들에는 교원도 소를 취하하고 청구 포기를 하는가 하면 사실상 해지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고 강조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소극 태도에 대한 아쉬움도 표했다.

김 변호사는 "공정위가 약 20년 전부터 수차례 교원의 불법 다단계 영업을 적발하고도 과태료나 경고 처분 따위 소극 대응에 그쳤다"며 "피해 사례가 널리 알려지지 않아 정부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결국 개별 소송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뭉쳐 제도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2020년 개설한 학습지 피해 모임 네이버 카페의 현재 가입자는 2천613명이다. 김 변호사 말고 박재천·윤지영 변호사가 피해자들의 대응을 돕는다. 

 윤소예 인턴기자 yoon@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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