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인사를 하며 반기는 이가 있다. 말끔한 양복 차림에 가스총을 허리에 두른 채 고객들이 어떤 용무로 왔는지 눈여겨보다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다가가 친절하게 안내한다.
 

주인공은 바로 은행 업무를 보러 온 고객들을 최일선에서 상대하는 로비매니저다. 보통 청원경찰이라고 착각하는데, 로비매니저는 은행 문을 여는 준비부터 마감까지 창구 업무가 효율 높게 이뤄지도록 도움을 주는 직업이다.

산본중심상가에 있는 NH농협은행 군포시지부에 근무하는 김은정(51)씨는 2021년부터 로비매니저로 일한다. 주된 임무는 은행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장애인·외국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각종 공과금과 국세·지방세를 내는 무인 수납기 사용을 안내하는 일이다.

김 씨는 로비매니저 경력이 그다지 많지 않지만 성실성과 친근한 성격 덕분에 직원과 고객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산본중심상가는 평소 유동인구가 많고 노인층이 많은 지역 특성상 이곳에 자리잡은 농협은행은 고객이 많은 매장으로 유명하다. 번호표가 400번을 넘어설 정도로 북새통인 경우가 다반사다.

서서 안내하는 직업이라 입사 초기 몇 달은 퇴근한 뒤 쥐가 나고 다리가 저려 힘들었지만 지금은 요령껏 다리 운동도 하면서 잘 적응한다.

취객이 시비를 걸거나 업무가 조금 길어지면 기다리지 못하고 불같이 화를 내는 고객들을 상대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 그러나 주취자와 흥분한 고객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해를 구하는 업무도 능수능란하게 처리한다.

"자주 찾는 어르신들이 ‘고생이 많아. 이거 먹고 힘내고, 오랫동안 근무해’ 하며 가끔 사탕이며 요구르트며 먹을거리를 주머니 속에 넣어주면 하루의 피로가 다 풀려요."

가끔 자리를 비우는 시간에 찾아온 고객들은 다른 직원들이 업무를 처리하겠다고 해도 익숙한 손길이 그리운지 기다리다가 김 씨를 발견하면 반가운 얼굴로 통장을 건네며 용건을 말한다.

처음엔 어눌한 노인을 상대할 때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작은 몸동작에도 그 뜻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몇몇 노인들은 자신의 가정사를 풀어내기도 한다.

홀몸노인들이 걷기도 힘든 상태에서 자녀 도움도 없이 은행 업무를 보러 오는 경우도 많다.

김 씨는 "자주 뵀던 어르신들이 한참 오지 않을 땐 가슴이 먹먹해진다"며 "어르신들은 고객이기 이전에 부모님이라 생각하고 정성껏 대한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더 건강해지고 행복했으면 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그 혜택을 받는 이는 그들의 고마움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은행 업무가 어려운 고객에게 도움을 주고, 노인들의 마음까지 보듬는 김 씨는 은행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분명 ‘산소 같은 존재’다.

군포=임영근 기자 iy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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