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인간의 욕구 중 가장 기초적인 욕구는 ‘안전 욕구’다. 국가는 국민들의 ‘안전 욕구’를 충족시켜 줄 책무를 지닌다. 즉, 국민들이 ‘생명과 신체의 안전’, ‘재산의 안전’ 등을 보장받으며 삶을 ‘평온하게’ 유지하도록 보살피고 배려해야 한다. 우리 헌법은 전문(前文)에서 "…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라고 천명한다. 대한민국의 궁극적 목적은 ‘국민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의 확보’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어떤 여건과 안전망(safety net)을 제공하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 10·29 참사 등 대형 인명사고가 빈발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국민들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이 잘 보장된다고 보기 어렵다. 요즘에는 금융사기·부동산사기 등 각종 사기가 빈발해 ‘사기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여서 국민들의 ‘재산 안전’도 크게 위협받는 상황을 맞았다. 

특히 현재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전세사기’ 사태는 그 피해자들이 대부분 서민들이어서 폐해가 매우 심각하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전세의 문제점과 임차인 보호의 취약성’, ‘갭투자의 위험성’ 등을 자주 지적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근본대책을 세우지 않은 정부의 무사안일한 태도가 이런 사태 발생의 근본 원인이다. 최근 이원석 검찰총장은 "전세사기범에 대해 법정에서 최고형이 선고되도록 엄중 수사하겠다"고 했는데, 검찰을 포함한 정부가 이런 일이 터지기 전엔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무능한 정부를 가진 국민들만 불쌍할 따름이다. 

왜 우리는 사전에 문제를 발견하고 미리 예방하는 능력이 이토록 부족한지 한탄스럽다. 사건·사고가 터지면 우왕좌왕, 허겁지겁하면서 내놓은 대책들은 대개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임기응변적 미봉책에 불과하다. 현재 정부와 여야가 무슨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면밀한 근본대책도 아울러 강구하기 바란다.

근본대책을 마련하는 데 참고가 되도록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 ‘전세’ 폐지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전세’는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맡기고 거주한 뒤 계약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주택임대차 유형 중 하나인데,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독특한 방식이다. ‘월세’보다 안정적으로 주거할 수 있고, 집주인도 이자를 내지 않고 쉽게 목돈을 빌릴 수 있어 오랫동안 널리 활용돼 왔다. 그러나 집값의 50~90% 내외에 해당하는 거액의 보증금을 일시에 임대인에게 맡기는 것이기 때문에 임차인은 임대차계약이 종료될 때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 위험을 상시 떠안아야만 한다. 더욱이 임대인들이 전세보증금을 받아 또 다른 주택을 매입하는 ‘갭투자’가 성행하게 된 근본 유인이 된다. 

이처럼 ‘전세’는 ‘폭탄 돌리기’식 위험이 전가·확산되는 것을 사회적으로 묵인하는 셈이어서 언제 누가 그 피해를 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을 조성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전세’ 폐지를 목표로 ‘전세’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월세’로 전환하도록 각종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예컨대 전세보증금 대출제도도 점진적으로 축소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편, 과거 일부에서 그 필요성을 제기했던 ‘주택 소유 상한제’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사유재산제 하에서 ‘주택 소유 상한제’는 마땅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지만, 좁은 국토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과다한 주택을 소유함으로써 무주택자들이 많은 불이익을 보는 상황을 감안하면 ‘주택 소유 상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 사람이 수백 채, 수천 채의 주택을 소유하도록 용인하는 건 ‘공공복리’와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깊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사견으로는 1가구가 소유할 수 있는 주택의 상한을 5채 정도로 제한하는 편이 적절하다고 본다. 또한 다주택 소유자는 임대사업 등록을 의무화하고, ‘전세’가 아닌 ‘월세’로 계약을 체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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