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했다. 3월 윤 대통령의 도쿄 방문의 답방 차원으로 두 정상이 52일 만에 다시 만났다. 이번 회담은 크게 ‘안보, 첨단산업, 청년·문화 협력,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로 요약된다. 과거사 언급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은 미흡했다. 일본 총리로서 좀처럼 갖기 힘든 좋은 기회였는데, ‘직접적인 사죄나 책임 주체를 명확히 밝히는 성의를 보여 주면 어땠을까’란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다. 과거사와 영토 문제로 지난 12년간 양국 정상의 직접 소통은 전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의지와 기시다 내각의 호응으로 양국 간 협력 가능성이 점차 증대되는 점은 자못 의미가 크다. 답이 없을 땐 서로 마주 보며 따지기보다 이렇게 같은 방향을 보며 나아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한일 간에는 그래야만 할 중차대한 안보·경제적 이유가 존재한다. 공동 관심사인 북 비핵화와 격화되는 미중 대립, 공급망 재편에 대한 대응이 그것이다.

북핵 고도화는 한일 모두에 실존하는 위협이다. 그런데 북은 한일보다 미국을 의식한 군사·외교정책을 전개하고, 미 정부는 대중·대러·대이란 정책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각지대를 채우려면 두 나라의 공조가 절실하다. 미중 대립과 공급망 재편 대응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중국과 공급망 재편으로 경제강국을 유지하려는 미국 사이에 낀 한일 양국의 손실과 비용이 막대하다. 당연히 같은 처지에 놓인 나라들끼리 공동 대응해야 시너지 효과도 극대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앞에 놓인 간극은 너무나 크고 깊다. 이를 이용하는 양국 내 정치세력의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엇갈린다. 하지만 분명한 건 국민의 대일 인식에는 ‘반일 정서와 일본에 대한 전략적 사고가 공존’한다는 점이다. 두 가지 모두 주목해야 한다. 지금처럼 눈앞에 닥친 현안들을 함께 해결하며 나아가는 노력을 멈춰선 안 된다. 동시에 과거사와 영토 문제도 학계를 비롯한 교육·외교 현장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하는 순간 국민은 신뢰를 거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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