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복 부천교육지원청 교육장
김선복 부천교육지원청 교육장

탈무드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랍비들이 시찰을 위해 한 마을에 도착해 "이 마을을 지키는 사람을 불러 주시오"라고 했더니 경찰서장이 나왔다. "이 마을을 지키는 사람을 불러 달라고 했잖소." 그랬더니 이번에는 수비대장이 나왔다. 그러자 랍비들은 "우리가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학교 선생님’이란 말이오. 진정 마을 지키는 사람은 교육자들이오"라고 했다.

유태인은 기원전 3천 년 전부터 의무교육을 시행한 민족이다. 2천500년 이상 디아스포라 생활을 하면서도 민족적 동질성과 우수성을 지켜온 비결은 교사를 우대하고 교육을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도 1948년 헌법 제정과 동시에 의무교육을 시행했고, 세계 어느 민족 못지않게 교육열이 뜨겁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대격변의 강을 건너다 보니 학생들의 학습결손이 누적돼 기하급수적으로 학습 지원 대상 학생이 증가했다. 교육계는 심각성을 확인하고 서둘러 기초학력보장법 제정을 촉구했고, 동법이 2022년 3월 23일자로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다각도의 지원책이 예산과 함께 쏟아졌다.

학습 부진의 원인은 지적, 심리·정서적, 사회적 문제 등 복합적이다. 이에 비해 학습 지원 사업은 너무 분권적이고 개별화돼 상담, 정서 지원, 보충 지도, 난독증 지원 등 사업별로 학생을 선정해 운영 중이고, 이로 인해 유사한 내용이 중복되거나 공백이 발생하는 영역도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황을 파악한 부천교육지원청은 선도적으로 경기도교육청과 지자체에 다음과 같은 개선책을 제안했다. 먼저, 학습 지원 대상 학생의 조기 발견을 위한 AI 기반 진단·보정 시스템을 갖춰 정확한 진단과 촘촘한 맞춤형 지원을 위한 큰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근시안 진단과 땜질식 처방은 일시 향상은 가능할지 몰라도 원천적인 부진 원인을 해소하지 못해 부진 상황이 언제든 재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학생 지원 이력 관리를 전산화하고, 성장 이력을 꾸준히 기록해 재진단과 보정을 해 나가는 긴 호흡의 과정을 밟아 나가야 한다. 매년 담당하는 선생님이 달라지더라도 학생별 지원 시점과 방향에 혼선이 생기지 않도록 법정 기록 관리가 필요하다. 

셋째, 학습 지원을 위한 보조 인력을 전문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선생님들은 교육전문가로서 우리 반 학생들을 가장 잘 알고 학습 지원 대상 학생들을 도울 수 있지만, 전적인 책임 부과는 높은 피로감을 유발해 정규교육과정에 차질을 준다.

뉴질랜드에는 각 학급에 보조교사가 배치돼 과제마다 부진이 발생하지 않도록 개별 지도한다. 경기도에도 올해 저학년 학습 지원 협력교사가 정원외로 배치돼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지원해 호응이 좋다. 일시 채용이 아닌 제도화로 기초학습 역량이 보장되는 가운데 각 교사들의 유연한 교육과정 운영에 날개를 달아주면 좋겠다.

끝으로 연계 기관 협업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학습 부진은 원인에 따른 맞춤 지원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뿐 아니라 지역 교육장, 기초지자체장, 광역단체장이 협업해야 한다. 이는 현재 운영되는 사업 간 연계와 전문인력의 협업을 통한 공백·중복 해소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부천교육지원청은 이 같은 제안과 동시에 솔선하는 차원으로 부천미래교육협력지구를 통해 구축한 학교·지역사회 협력 거버넌스 기반의 부천형 지역맞춤 공유학교인 ‘기초학력공유학교’를 다양한 유형으로 기획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인근 지역사회 공간을 활용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거점형 마을작은학교’, 중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운동장에서 상담버스와 지역 체험활동을 운영하는 ‘찾아가는 마을작은학교’는 코로나 이후 더 큰 어려움을 겪는 학생의 심리·정서를 보다 촘촘히 지원하기 위해 학교와 지역사회의 협력으로 활발히 추진 중이다. 

또 다른 유형으로 원도심 학교를 묶어 지역 교육자원과 운영하는 ‘기초학습 통합지원 지역센터(가칭)’를 준비한다. 학교, 지자체의 기초학습 관련 인력, 접근도와 안전도가 높은 공공시설, 학생 생활권 내 지역공동체, 교육복지 네트워크를 모두 연계한 전방위 통합 지원으로 기초학습 결손과 교육격차 해소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 같은 부천형 기초학력 공유학교를 통해 그간 분권적으로 운영되던 기초학력 관련 여러 교육 지원들이 협력하고 연대해 지속가능한 교육 인프라 발굴의 교두보를 이루리라 기대한다.

부천교육 수장 자리에 앉아 보니 할 일이 참 많다. AI 기반 스마트 미래교육, 행복한 미래를 위한 진로직업교육, IT 강국을 향한 정보화교육, 방과 후 돌봄 등 갈 길이 바빠도 너무 바쁘다. 그런 와중에 기초학력을 먼저 논한 건 기초학력이 단연코 이 모든 교육의 내비게이션으로 작동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며, 이를 근면과 성실로 함께 지원해 나가자고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에 권면하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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