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의 마지막 33년

정아은 / 사이드웨이 / 1만8천 원

대한민국 11대, 12대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뒤 전대미문의 학살과 인권 탄압을 자행했다. 대통령 임기를 채우고 퇴임한 뒤 33년간 풍족하게 살아가며 천수를 누렸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마땅한 처벌을 받은 적도 없고,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친 적도 없다. 수십 년간 진상 규명과 사죄를 외쳤던 5·18 유족들의 고통과 절망이 무색하게, 그는 2021년 11월 23일 자신의 집에서 평화로이 눈을 감았다.

전두환을 둘러싼 해설과 논평은 넘치도록 많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제대로 답을 내놓은 적이 없다. 그 질문에 답하려면 전두환의 생애와 대한민국 현대정치사·경제사·사회사·문화사를 근원부터 상호 연관시켜 철저하게 들여다봐야 하고, 그의 여러 악행을 가능케 했던 개인적 기질과 당대의 정치환경, 시대적 맥락을 총체적으로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다섯 편의 장편소설과 세 편의 인문 에세이를 출간한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 정아은은 이 책을 통해 바로 그 작업을 완수했다. 정아은은 전두환이란 인물의 태생부터 죽음까지를, 그의 집권 전후의 시간을, 나아가 그가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의 여생을 지금껏 나온 그 어떤 문헌보다도 철저히 복원한다. 전두환을 악마처럼 몰아붙이는 작업도, 영웅으로 미화하는 작업도 아니다. 대신 전두환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치열하게 규명한다. 그의 영광과 모순, 몰락 그리고 그 인물을 탄생시킨 ‘악(惡)의 기원’을 대한민국 현대사라는 지평 위에서 가감 없이 드러내려는 전기적 작업이다.

정아은은 왜 이 작업을 시작하고 끝마쳤는지 책에 그 이유를 적었다.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악’은 물리적 생명력이 끊어진 뒤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미래에도 영향력을 이어갈 것이기에. 피와 눈물을 흘릴 줄 알았고, 자신의 가까운 사람과는 진한 사랑을 나눈 유형의 악인(惡人) 전두환의 면모를 우린 이제라도 똑바로 인식해야 해서다. 전두환이라는 악인을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기억하고 감당해야 하는지 묻는 일은, 그의 사후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본격 성찰하는 첫걸음이다. 

오송역

전현우 / 이김 / 1만9천800원

커뮤니티에 지역이기주의 관련 글이 올라올 때마다 네티즌들은 "오송역만 하겠냐", "오송이 또"라는 댓글을 달곤 한다. 오송역에 대한 의견은 "대한민국 철도 역사상 최악의 오점", "청주 사람도 왜 거기다 지었는지 이해 못함"처럼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역이기주의의 끝판왕으로,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역균형발전의 상징이자 지방의 자기결정권이 실현된 위대한 예시로 극명하게 갈린다.

하지만 역사·정치적 맥락을 조명하지 않은 채 단순한 지역이기주의 혹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념으로만 바라보면 오송 분기 사건은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분기 대안의 흐름과 이를 둘러싼 당시 정치권의 셈법을 읽지 못한 상태에서 직선화를 위해 천안아산역을 혹은 통행량이 많은 대전역을 분기역으로 결정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결과론적이다.

더불어 대안 없는 비판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오송 분기 사건’에 오차 수정 관점을 도입해 쉽게 만들기도, 없애기도 어려운 국가기반시설의 오류와 오차를 바로잡을 방법을 제시한다.

태양 왕 수바:수박의 전설

이지은 / 웅진주니어 / 1만5천120원

「팥빙수의 전설」, 「친구의 전설」로 전설 신드롬을 일으킨 이지은 작가가 이번에는 ‘수박’의 전설로 돌아왔다. 장에 갔다 늦은 시간에 산길을 걸어오던 팥 할머니 앞에 나타난 태양 왕 수바. 

돼지인지, 공인지 데굴데굴 구르기 좋은 모양새로 나타난 수바는 원래 태양을 비추어 생명을 자라게 하는 하늘의 용이었다. 수바의 날개와 태양빛을 탐내던 둘 머리 용에 의해 날개를 떼어 먹힌 채 간신히 땅으로 도망치는 신세가 됐다. 수바는 할머니에게 간절하게 도움을 청하지만, 왕 대접을 받긴커녕 이름조차 수박, 왕수박 따위로 불리며 더 혼란을 겪는다.

할머니는 수바의 부탁대로 밤새 떡을 빚고 과일로 탑을 쌓아 제사상을 차려 줬고, 수바는 땅에서, 물에서 지극 정성으로 하늘을 향해 빌어 보지만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보다 못해 나선 팥 할머니의 용맹한 활약으로 둘 머리 용에게서 날개를 되찾은 수바는 약속대로 할머니에게 용의 여의주만큼 귀하다는 보물을 주고 홀연히 하늘로 돌아간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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