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어머니에게 하루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하루는 친구와 다퉜고 잘잘못을 따져 보니 잘못한 쪽은 기자였다. 다음 날 사과하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진심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마음에 생긴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흉이 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또 사과를 하고 말고는 선택이지만 사과를 받을지는 상대방 몫이라고 덧붙였다. 그 뒤로 사과 받는 처지에 놓이며 말뜻을 이해했다. 상대방 태도 때문이다. 끝내 못 이긴 척 "미안"이라고 내뱉었지만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상황을 쉽게 무마하려는 행동 같았다. 차라리 달갑지 않은 사과라도 받은 기자 쪽이 나은지 모르겠다. 끝내 뉘우치지 않고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사건·사고 소식이 쏟아지는 대한민국에서 잘못을 저질러도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은 많지 않다. 다양한 증거가 사실을 증명하는데도 이를 부정하고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다. 심지어 왜곡해 두 번 상처를 주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을 증명하고 바로잡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지난주 기자협회 연수로 찾은 광주는 43년 전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도시였다. 2015년 금남로 인근에 개관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건축총면적 13만9천217㎡ 대규모로 지었지만 대부분 건축물은 지하에 있다. 광주 민주화운동의 마지막 항전지인 옛 전남도청을 고층 건물이 가리지 않고 맨 위로 올려 잊지 않고 기억하자는 취지다. 그 앞에는 헬기사격을 부정하던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듯 전일빌딩245가 총탄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자리를 지킨다.

지난 3월 전두환 손자가 광주를 찾아 피해자 유족들을 만나 사죄했다. 가해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 아쉽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유족들은 사죄하는 마음을 반겼다. 당사자는 용서하지 못하지만 포옹과 함께 "고맙다"고도 했다.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바로잡고 기억해야 한다. 광주 역시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많고,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떠넘긴다. 끝나지 않은 그날을 제대로 된 진상 규명으로 끝맺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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