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2022-2023시즌 통합우승을 달성한 안양 KGC인삼공사 양희종이 경기도 안양체육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농구 2022-2023시즌 통합우승을 달성한 안양 KGC인삼공사 양희종이 경기도 안양체육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들이 저와 농구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은퇴했어도 농구를 계속하고 있네요. 제가 이기면 아들이 토라져서 ‘극적으로’ 져 주느라 쇼맨십이 늘어요."

최근 챔피언결정전을 끝으로 ‘프로농구 선수’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은 양희종(39)이 ‘자연인’ 같은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안양 KGC인삼공사의 수비를 대표하는 선수이자 ‘캡틴’이었던 그는 이달 7일 막을 내린 서울 SK와의 챔프전에서 팀의 우승과 함께 선수생활을 마쳤다.

그가 달았던 ‘11번’이 구단 유일의 영구결번으로 또렷하게 남은 안양체육관에서 지난 17일 만난 양희종은 선수로서 마지막 순간의 여운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언론 인터뷰나 육아로 시간을 보내요. 술자리도 가끔 있고,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편히 늦잠도 자며 여유로운 생활을 하죠. 2주가 다 됐는데도 인터뷰로 기억을 계속 끄집어 내서인지 챔프전은 엊그제 끝난 듯해요."

2007년 2월 신인 드래프트 전체 3순위로 안양 KT&G에 지명된 양희종은 2022-2023시즌까지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줄곧 한 팀에서만 뛴 ‘원클럽맨’이다.

정규리그 618경기에 나와 경기당 평균 6점, 3.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숫자로 드러나는 기록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수비 관련 상만 7차례나 받을 정도로 정평이 났던 그는 인삼공사라는 팀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2014년부터는 주장을 맡았고,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득점으로 팬들의 뇌리에 각인되기도 했다.

2011-2012시즌 원주 동부와 챔프전 6차전에서 64-64이던 경기 종료 9초 전 결승 득점을 올렸고, 2016-2017시즌 서울 삼성과 챔프전 6차전에선 3점슛 9개 중 8개를 꽂아 넣는 놀라운 슛 감각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를 포함해 그가 뛰는 동안 인삼공사는 네 차례 우승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며 국가대표로서도 활약한 그는 인삼공사가 정규리그 1위를 달리던 올해 2월 "지금이 적기"라며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인삼공사는 양희종의 상징성을 표현한 ‘라스트 디펜스’를 슬로건으로 플레이오프에 나섰는데, 그에게 극적이면서도 화려한 피날레를 선사했다.

양희종의 은퇴식이 열린 3월 26일 인삼공사는 안방에서 DB를 물리치고 정규리그 1위를 확정했고, ‘선수 양희종’의 마지막 경기였던 7일 SK와의 챔피언결정 7차전에선 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챔피언결정전이 끝나야 쉬는데, 7차전도 모자라 연장전까지 가길래 속으론 ‘은퇴하기 너무 힘들다’는 생각도 했어요. 경기가 계속 치열하게 전개돼서 피가 마를 지경이었죠."

양희종은 "드라마도 이렇게 쓰진 못할 텐데, 너무 아름다웠다. 주변에서 ‘넌 정말 다 가졌다. 전생에 뭘 한 거냐, 천운이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후배들이 형을 위해 끝까지 뛰어준 덕분이다. 여러모로 박자가 잘 맞았다"며 웃었다.

초등학교 때 키가 크다는 이유로 눈에 띄어 시작한 농구는 그의 인생에 때마다 ‘목표’를 안겼다. 고교 시절 만난 김태술(현 해설위원)과 교분을 쌓으며 ‘연세대에 함께 가자’고 했던 약속, 이후엔 ‘태극마크를 달자’는 다짐, 프로에 와서는 ‘우승해 보자’는 꿈을 모두 이뤘다.

양희종은 "저도 득점을 많이 하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도 싶었지만, 농구는 팀 스포츠니까 조화가 이뤄져야 강팀이 된다고 생각했다"며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을 땐 외국인 포워드가 많을 때라 객기나 승리욕도 컸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힘든 시간도 많았다. 팬들에게 손가락질받거나, 나쁜 댓글에 가족이나 지인들이 속상해해서 미안한 적도 있었다. 농구를 괜히 했나 싶기도 했다"며 "농구에 집중하지 못한 그런 시기를 이겨 내니 성숙해지고 철도 들었다"고 말했다.

부침을 견뎌 내며 팀의 버팀목으로 자리잡아 특유의 문화를 가꾸는 데 기여한 건 양희종의 농구인생 성과 중 하나다.

"한 번 우승하고선 계속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젊었을 땐 지금보다 훨씬 ‘강성’이어서 후배들에게 쓴소리도 많이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믿음이 생기고 끈끈해진 듯합니다. (오)세근이가 특히 ‘성격 더러운 형’을 만나 고생 많이 했죠."

최근 수년간은 ‘베테랑’이나 ‘맏형’ 같은 수식어로 불린 그는 후배들을 이끈 원천에 대해 "뭘 많이 먹여야 한다"고 농담하면서도 ‘공감’과 ‘이해’를 강조했다.

"기쁠 땐 같이 기뻐하며 축하해 주고 선물도 주고, 슬플 땐 같이 슬퍼하며 위로해 주는 그런 게 가족 아니냐"며 "서로의 소소한 마음이 느껴지면 경기력에도 도움 되고 시너지 효과도 나더라"고 말했다.

양희종은 "지금은 이 팀에 누가 오더라도 현재 틀이 쉽게 깨지지는 않을 듯싶다"며 "그 속에서 경기력이 첨가된다면 인삼공사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터"라고 덧붙였다.

어깨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던 양희종이 챔피언결정 최종 7차전에서 연장전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3.4초를 남기고 코트를 밟은 건 인삼공사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장면이었다.

이미 그 전부터 후배들의 투혼에 벤치에서 감동의 눈물을 훔치던 그는 이번 플레이오프가 어느 정도는 ‘지도자의 마음’으로 보낸 시간이었다고 했다.

양희종은 "선수로 생각 없이 뛸 때는 상대나 경기에만 집중하며 몸이 저절로 반응했는데, 밖에서 보니 경기 흐름이나 상대도 의식하며 코치진과 대화도 해야 하고 긴장하며 정신도 없어서 시리즈 내내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감독, 코치님들은 정규리그 54경기에 플레이오프까지 매 경기 어떻게 이렇게 치열하게 할까 싶더라. 존경스럽고 대단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생활 최고의 순간을 ‘첫 번째 우승’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번 챔프전을 치르면서 바뀌었다"며 "감동과 희로애락을 모두 느꼈고, 특히 3.4초 전 투입돼 후배들과 코트에 서서 팬들 앞에서 마지막을 장식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김상식 인삼공사 감독은 "우승하는 과정에서 선수들이 같이 무척 고생했고 큰 힘이 됐다. 더구나 희종이가 나와 얘기도 많이 하고 의견도 많이 냈는데, 수비 패턴에 도움이 됐다"며 "코치진과 선수 양쪽에서 힘들었을 텐데, 수고했다고 말해 주고 싶다"고 했다.

연고지도 변함없이 한 구단에서 16년을 보내다 보니 팬들에 대한 감정도 각별하다.

양희종은 "우리 팬과 선수들은 잘 어우러지고 끈끈한 무언가 있었다. 챔프전 서울 경기 때 원정 같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셔서 선수들이 정말 힘내서 뛰었다"며 "팬들이 아니었다면 이번 우승은 하지 못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시 태어나도 농구 선수의 길을 택할까’라는 질문엔 대번에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야구해야죠"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팬들에게 어떤 농구 선수로 남길 바라냐고 묻자 그는 사뭇 진지해졌다.

"열정만큼은 최고였던 선수로 남고 싶어요. 과거에 대한 후회를 남기지 않고, 현재에 최선을 다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갈 준비를 본격 시작했다는 양희종은 선진 농구를 경험하고 돌아와 지도자로 ‘농구 인생 2막’을 열 계획이다.

"감독은 경기인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위치라고 생각해요. 물론 욕도 먹고 힘도 들겠지만 원하는 그림을 그려서 이뤘을 때의 쾌감과 성취감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팀을 맡게 된다면 서로 믿으며 잘하는 걸 잘하게 해 주는 끈끈한 팀을 만들고 싶어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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