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최근 우리 사회의 온갖 건물 외벽, 골목길, 학교 교실, 등산로, 식물원이나 동물원, 유치원, 관공서의 푯말, 시비, 신문 칼럼, 강연 제목, 심지어는 술자리 건배사에서도 패러디되며 아주 많은 곳에서 만나는 한 편의 시가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다. 

총 24자로 된 이 시는 2002년 세상에 등장한 이래로 초등학생은 물론 중고생, 대학생, 성인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시가 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시가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아니라 그 반대인 아이들을 위해서 쓴 시라고 시인은 말한 바 있다. 수업시간에 풀꽃 그림그리기 공부를 하면서 풀꽃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쓱싹 그려 오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풀꽃도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럽단다" 하고 여러 차례 잔소리를 했단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그런 말을 고스란히 듣고 "예"라고 대답하던 상황에서 "얘들아, 너희들도 그래" 하고 들려주던 말을 시로 탄생시켰다 한다. 여기서 우리는 아이들을 자세히 보고 오래 봐야 한다는 교육적 시사점을 얻는다.

몇 해 전 필자는 어느 날 저녁 무렵 교내 공터에서 한 학생이 전날 내린 봄비에 젖은 땅을 정성껏 삽으로 파면서 텃밭을 일구는 모습을 목격했다. 대화를 통해 그는 3학년 학생이며, 6명으로 이뤄진 ‘텃밭 가꾸기’ 자율 동아리 회장임을 알게 됐다. 그는 제법 능숙한 손길로 땅을 파고 흙을 고르며 감자를 심었다. 지금 심으면 7월께 수확한다며 열심히 설명하는 그에게 필자는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단다"라고 화답했다. 그 순간에 가슴에 꽂히는 무언가를 느낀 듯 "아, 참 좋은 말이네요. 나무에 푯말을 걸어서 늘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씽긋 웃는 게 아닌가.

그 후 몇 차례 저녁시간이면 텃밭에 나와서 열심히 땅을 일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텃밭을 가꾸는 모습에 한마디 격려를 덧붙여 "요즘 일본은 농과대학 인기가 크게 부활하고, 농작물은 국가안보에 연계돼 그 중요성이 날로 증대된다고 한다"라고 전해주니 "저는 중국에 화훼산업으로 도전장을 내려고 합니다. 15조9천억 원의 시장이 저를 기다립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어떤 근거로 그러한 수치를 제시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 열심히 자신의 꿈을 생각하며 키우는 모습이라 생각하니 그 학생이 참으로 대견해 자세히 그리고 오래 쳐다보게 됐다.

오늘날 우리는 학생들의 무기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비판하며 한탄한다. 필자는 그 무기력의 원인이 어쩌면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고 느끼지 않는지 되묻고 싶다. 실제로 학생들은 절대로 꿈을 포기하거나 삶을 그럭저럭 되는 대로 살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그들이 과연 생각 없이 산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들은 고민하고 힘겨워하면서 자신들의 꿈과 목표를 생각한다. 다만, 어느 순간에 어떠한 계기가 발생해 그 꿈과 목표를 좌절당하거나 절망을 느끼기 때문에 심하게 무기력하게 된다. 이때 우리 어른들이 나서서 그들을 이해하고 혼내지 말며 낙심하지 않게 도와줘야 한다.

매년 5월은 ‘청소년의 달’이라 칭한다.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굳이 어느 시기만 제한할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청소년들을 달리 보자. 그들을 순간적으로 보고 피상적으로 판단하지 말자. 그들 편에 서서 자세히 보고 그리고 오래 보자.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격려하자. 그들은 우리의 미래다. 그들이 ‘헬조선’, ‘이생망’, ‘N포 세대’라 비하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미래는 무너진다.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해 살아가는 미래 주인공들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주자. 여기엔 모두가 적극 나서 칭찬과 격려와 환대 그리고 그들과 연대해 그 꿈을 키워 주고 응원하는 어른이 필요하다. 

그러면 청소년들도 어른을 존중하는 마음과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볼 테다. 얼마나 멋진 상호 교환인가. 그 시작은 청소년을 자세히 보고 오래 보는 데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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