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사고를 겪은 한 가족이 수원시와 수원시민의 따뜻한 도움으로 새로운 희망을 품게 돼 이목을 끈다.

인생 최악의 순간으로 기억된 끔찍한 사고에서 이들을 구한 원동력은 이웃의 세심한 관심이었다. 작지만 큰 도움을 준 이웃들 덕분에 갑작스러운 위기를 극복하고 활기를 되찾았다.

집에 돌아온 최민웅 씨 부부가 이웃들에게 직접 만든 쿠키를 전하며 감사인사를 했다.
집에 돌아온 최민웅 씨 부부가 이웃들에게 직접 만든 쿠키를 전하며 감사인사를 했다.

"주위에서 도움을 주신 이웃들이 많아 가족이 빠르게 일상을 되찾게 돼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수원시 장안구 조원1동에 사는 최민웅(39)씨는 다문화가정이자 다자녀가정 가장이다. 20대 초반부터 해외에서 생활하던 그는 프랑스 국적 아내를 만나 2013년 가정을 꾸렸다.

두 자녀와 함께 프랑스에서 생활하던 중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자 최 씨는 가족 안전에 위기감을 느꼈다. 결국 2020년 11월 한국행을 결정한 뒤 2022년 3월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아파트에 둥지를 틀었다. 조용하면서도 잘 갖춰진 생활 인프라가 가족을 위한 최적의 조건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조원1동에서 쌍둥이 남매까지 출산하면서 부부와 9살, 6살, 8개월 쌍둥이까지 여섯 명이 다복한 가정을 꾸렸다.

외벌이로 빠듯했지만 행복이 넘쳤던 최 씨 가족이 갑작스러운 위기를 맞은 시기는 1년여 만인 지난 2월 14일이었다.

아이들 점심을 준비하던 아내가 잠시 식재료를 사러 마트에 간 사이 조리하던 냄비에 불이 붙었다. 방학이었던 첫째와 쌍둥이 남매가 집에 있는 상태였다.

다행히 스프링클러가 작동해 큰 화재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주방과 거실이 불에 탔고, 바닥은 물바다로 변해 집에서 일상생활은 불가능했다.

화재로 불에 탄 주방 모습이 처참하다.
화재로 불에 탄 주방 모습이 처참하다.

서울에 있는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한 최 씨는 아수라장이 된 집에서 가족을 찾은 뒤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면식도 없던 위층 주민이 따뜻하게 가족들을 보살폈기 때문이다.

이웃들은 돌도 안 된 어린 쌍둥이들에게 깨끗한 옷가지를 챙겨 덮어 주고, 한국말이 서툰 아내를 안심시켰다.

그는 "급히 대피하느라 몰골이 말이 아니었던 아이들도 챙겨 주시고, 처음 본 가족인데도 갈 곳이 없으면 자고 가라고 선뜻 말했다"며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하다"고 했다.

화재 소식을 들은 조원1동 행정복지센터도 발 빠르게 지원을 시작했다.

대한적십자사가 지원하는 긴급구호 세트를 제공해 급한 가재도구를 마련했다. 물에 젖어 아무 물건도 사용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담요와 세면도구, 옷가지가 큰 도움이 됐다. 이웃에 더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최 씨 가족은 회사 근처에 단기 월세를 찾아 잠을 청했다.

수원시가 사고 조사와 피해 복구를 진행하는 동안 최 씨 가족이 거처할 임시 주거시설을 지원했다. 화재 발생 6일 만에 제공한 임시 보금자리였다. 서울에 마련한 임시 거처에서는 첫째 아들의 통학이 불가능해 걱정하던 차에 단비 같은 지원이었다.

가족이 사용하던 생활용품 중 사용 가능한 물건을 골라 정자2동에 있는 방 두 칸짜리 임시 주거시설에 옮기는 일 역시 조원1동 자원봉사자가 힘을 보탰다.

최 씨는 "식구가 많아 받아주는 곳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개학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 정말 다행이었다"며 "당시 조원1동장님이 사용하던 냉장고까지 지원해 줄 정도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긴급복지 생계비 지원도 석 달간 이어져 급한 불을 껐다. 수원시는 실직과 질병, 재해 따위로 갑작스러운 위기를 맞게 된 가정이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생계비를 지원한다.

단체장협의회에서 소식을 공유한 조원1동은 온 마을이 돕기에 나섰다. 자문위원회, 통장협의회, 주민자치회, 마을만들기협의회,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새마을부녀회를 비롯해 조원1동 주민단체가 십시일반 힘을 보탰다. 쌀과 라면, 반찬을 비롯한 먹거리부터 생활용품, 연기를 뒤집어 쓴 이불 빨래까지 전방위로 지원했다. 인근 조원초등학교 학부모회는 아이들을 위한 옷가지와 신발, 장난감, 도서 들 꼭 필요했던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

둘째 딸 유치원 수료일에는 특별한 이벤트를 열어 온 가족이 다시 힘을 내게 했다. 유치원 수료를 마음 쓸 겨를이 없던 최 씨 부부를 대신해 주민단체가 꽃다발과 통닭을 보냈다.

수원시는 휴먼서비스센터를 통해 최민웅 씨 가족에게 생필품을 전달했다.
수원시는 휴먼서비스센터를 통해 최민웅 씨 가족에게 생필품을 전달했다.

최 씨는 "황량했던 임시 거처에서 꽃 한 다발이 엄청난 위로로 느껴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다문화가정이자 다자녀가정의 손을 잡아주는 도움은 끝이 없었다.

수원시 복지협력과, 수원시휴먼서비스센터 지원과 지인에게 소식을 들은 경상북도 경주의 한 독지가 후원으로 전기밥솥과 청소기를 비롯해 꼭 필요한 집기도 받았다.

이웃 도움 덕분에 최 씨 가족은 지난 3월 말 예상보다 빨리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집에 간 최 씨 부부는 이웃에게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돌려주려고 소소한 아이디어를 냈다. 이웃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려고 엘리베이터에 편지를 게시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직접 구운 쿠키를 들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인사를 했다.

화재 탓에 엘리베이터를 중단한데다 복구 공사로 장기간 불편을 겪은 이웃들은 최 씨 가족에게 오히려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그는 "계단을 걸어다니면서 힘들었을 텐데 ‘덕분에 운동됐다’고 안심시켜 준 어르신부터 손잡고 힘내라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까지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했다.

수원시와 이웃들의 따뜻한 사랑은 외국인인 아내에게도 생경한 경험이었다.

고향에서도 가까운 이웃의 도움을 받아 본 적은 있지만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해 동 전체에서 도움의 손길을 계속 보내는 수원지역 이웃사랑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덕분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했던 부부는 수원에서 계속 살기로 마음먹었다.

최 씨는 "조원1동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분들은 물론 이웃들이 항상 관심을 표현해 주셨다. 도움을 주신 손길 하나하나에서 가족의 정을 느꼈다"며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돕는 가족이 되겠다"고 했다. 

김강우 기자 kkw@kihoilbo.co.kr

사진=<수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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