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6·10만세운동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6월 10일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재위 1907∼1910)의 장례인 인산 행렬이 돈화문을 출발해 금곡으로 가던 중 일어난 만세 시위로 1919년 3·1운동, 1929년 광주학생 항일운동과 함께 3대 항일독립운동으로 손꼽힌다. 

6·10만세운동은 대체로 세 갈래로 추진됐다. 첫째 계열은 노총계로, 사회주의자 권오설을 중심으로 추진되다가 중국지폐 위조사건과 개벽지 압수사건으로 사전에 발각돼 연루자가 붙잡힘으로써 실패하고 말았다. 

둘째 계열은 전문 학생들이 중심이 된 사직동계다. 1926년 4월 26일 조선학생과학연구회 회원 80여 명이 세검정으로 춘계야유회를 가던 중 순종 승하의 비보를 듣고 어떤 형태로든지 민족운동을 일으켜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같은 해 5월 20일 40여 명이 연희전문학교 문과 2년생 박하균의 하숙집에 모여 순종 인산일인 6월 10일 독립만세와 가두시위를 일으켜 민족 독립을 성취하자고 결의했다. 먼저 준비책임자로 이병립, 이병호, 이천진, 박두종을 선출하고 자금은 박하균·박두종이 맡도록 했다. 

6월 8일 이선호, 이병립, 박두종, 박하균 등이 서대문 솔밭에서 태극기와 조선독립만세 격문 30매를 만들고, 다음 날 김종찬 하숙방에서 이병립이 "2천만 동포의 원수를 구축하라! 피의 대가는 자유다. 대한독립만세!"라는 격문을 작성했다. 격문은 ‘시대일보’ 배달부 김낙환을 통해 빌린 인쇄기계로 사직동 이석훈 하숙집에서 1만여 매를 인쇄한 뒤 이선호, 박두종, 이천진, 박하균, 유면희 등이 각각 자기 학교 학생과 관련 학생들에게 나눠 줬다. 

셋째 계열은 중등학교 학생 중심의 통동계다. 중앙고보와 중동학교 학생인 박용규, 곽대형, 김재문, 황정환, 이동환 등이 순종 승하 소식을 듣고 시내 사립고보생 중심의 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했다. 이에 5월 29일 통동의 김재문 하숙방에서 "조선민중아! 우리의 철천지원수는 자본제국주의의 일본이다. 2천만 동포야!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 만세, 만세, 조선독립만세! 단기 4259년 6월 10일 조선민족대표 김성수·최남선·최린"이라는 격문을 기초했다.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에 참가한 2만4천여 명의 학생들은 돈화문에서 홍릉까지 도열했다. 그리고 오전 8시 30분께 순종의 상여가 종로3가 단성사 앞을 지날 때 중앙고보생 300여 명이 "조선독립만세"를 부르고 격문을 뿌리며 시위를 감행했다. 이를 시작으로 오전 8시 45분께 관수교 부근에서 연희전문학생 50여 명이, 오전 9시 30분 을지로 경성사범학교 부근에서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 박두종 등 3명이, 오후 1시 훈련원 부근에서 학생 1명이, 오후 1시 30분 동대문 근처에서 시대일보 배달부 김낙환과 청년 2명이, 오후 2시 신설동 부근에서 학생 1명이, 오후 2시 20분 동묘 부근에서 중앙고보생 박용철·이동환, 중동학교생 곽대형·황정환 등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격문을 살포하며 학생들의 항일독립만세 시위는 계속 이어졌다. 

6·10만세운동 계획을 감지한 일제의 조선총독부는 군사 5천 명을 동원해 만반의 진압 준비를 했다. 군중의 호응으로 시위는 확대됐으나 조직 사이 유대 결여와 민족진영 조직 약화, 노총계 사회주의계열의 사전 체포로 일본 경찰에 저지당해 곧 실패했다. 

그러나 6·10만세운동은 곧 전국으로 번져 고창, 원산, 개성, 홍성, 평양 등지에서 대규모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다. 비록 계획이 사전에 발각됐기 때문에 규모는 3·1운동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를 필두로 1929년 광주학생 항일운동이 일어난다. 이 사건으로 1천여 명이 체포·투옥됐으며, 제2차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 권오설을 비롯한 다수 공산당원이 체포됨으로써 제2차 조선공산당이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6·10만세운동은 침체된 민족운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고, 신간회 설립 배경이 됐으며, 학생 독서회와 1987년 6·10민주항쟁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3·1운동과 1929년 광주학생 항일운동의 교량 구실을 담당해 꺼지지 않는 민족독립운동사의 큰 횃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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