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U-20 월드컵에서 보여 준 우리 청년들의 투혼은 비록 4강에 만족해야 했지만 황금세대로 불린 선배들에 비해 아무도 찾지 않는 ‘골짜기 세대’라 불렸고 언론 주목도 별스럽게 받지 못한, 원팀(one team)만을 앞세운 선수들이었다. 우월한 피지컬과 키 크고 화려한 공격수에 의지한 팀플레이가 승리 규칙처럼 여겨졌다면 우리 U-20 대표팀의 작은 키에 수비를 전담하는 선수들의 자로 잰 듯한 어시스트, 돌고래처럼 뒤에 처져 수비하다 상대팀 수비 선수들의 장신 숲을 헤치고 튀어 올라 골을 성공시키는 모습에서 일반론적 예측을 논하는 규칙이란 것을 분명하게 깨부수는 정상적 반칙처럼 보였다. 

얼마 전 올림픽공원 옆 소마미술관 ‘규칙과 반칙의 변증법’이란 전시회를 찾았다. 하나의 이론이 등장하면 그 이론과 반대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고, 다시 두 이론에 대한 절충된 새로운 이론이 나타나면서 발전한다는 의미라 여기고 관람했다. 보여 주는 영상이나 메시지가 내게는 어렵게 느껴졌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구조적 질서, 즉 주변과의 조화를 이루는 규칙, 그 규칙을 깨는 반칙, 그러면서 제목에서 나타나듯 규칙과 반칙의 변증법은 그 자체로 세계가 변화해 나가는 원리로 이해하게 됐다. 애초부터 규칙과 반칙은 같은 선상에 놓인 상황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높이뛰기 선수 ‘딕 포스베리’는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몸을 뒤집어 등쪽으로 뛰는 ‘배면뛰기’를 최초로 시도하며 게임 방식 자체를 바꿨다. 스포츠에서 규칙은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고, 스포츠 정신세계의 최고점이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진화’와 ‘생존’의 큰 틀에서 규칙의 한계를 실험하거나 규칙의 허점을 찾아내는 도전 역시 스포츠 정신이라고 평가된다. 이런 접근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살이 구조마저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진화시키려는 ‘규칙’과 ‘반칙’의 변증법으로 풀어내려 노력한다. 

국내 ESG 공시 의무 시점은 2025년이며 이는 CEO가 챙겨야 할 핵심 사안으로, 이미 자본시장에서 ESG 관련성과 조작에 관한 규제가 강화된다고 한다. 한 예로 글로벌 1위 어느 제조사 역시 평가기관에서 ESG 등급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협력업체까지 ESG 등급과 보고서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보면 ESG에 대한 생태계가 온통 지켜야 할 규칙, 그 규칙에 따른 불이익적 영향, 보고서 등급이 낮으면 협력사에서 빼겠다는 요구, 불성실 공시에 대한 제재, 손해배상, ESG 리스크 관리에 대한 법적 책임, 제3자 검증 절차 의무화, 해외 소송 리스크 등 도대체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핵심적 비재무적 요소가 온통 강자논리식 일방적 규칙과 위기감 조성으로 중소기업을 코너로 몬다. 정부기관, 학계, 언론계, 단체나 협회의 경영컨설팅, 변호사들까지 나서서 경영간섭을 초월하는 가공의 기준을 제시하며 매몰적 시간과 비용, 인력을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다소(?) 거칠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즈음에서 중소기업 CEO는 이렇게 묻는다. "과연 ESG는 누굴 위한 국가사회적 해결 과제인지?", "중소기업 CEO의 자기주도적 역할과 철학, 의지로 ESG 경영을 소프트랜딩(soft landing)시켜 나갈 수는 없는지?"

자연환경에 대한 문제, 인권, 아동노동, 공급망 리스크, 절차나 정당성이 무시된 경영비리 등 기업의 책임이 명확한 사항들은 당연히 법적·사회적 합의에서 충분한 제재나 반칙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또 법에 의해 촘촘하게 관리되며, 올바른 선택과 성과를 위해 대부분 CEO들은 최선을 다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경영활동에 매진한다. 그냥 막 던지는 "ESG 조건 못 맞추면 납품하지 마세요" 같은 현장을 무시한 전문가를 앞세운 메시지는 지금 이 상황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ESG가 메가트렌드라고 인정하자. 그래도 순서와 영역, 주기와 단위, 범위와 역량은 있다. 규칙은 대기업 수준에서 수용하고 실천하며 중소기업은 문제의식은 갖되 ESG 경영 추진은 각 기업에 맞는 방식과 절차로 실천하게 만들자. 강자논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럴듯해 보인다.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심리적 의무감을 두르게 한다. 장벽효과다. 매순간 시대와 인간을 통찰하는 기업가들의 양식을 믿고 수익 우선주의를 인정하면서도 신뢰와 미래 가치로 ESG 경영을 실천하게 만들어야 한다. 규칙에는 반드시 반칙이 따르고, 그 반칙이 규칙이 되면 또 다른 반칙이 나타나는 정반합의 변증법을 생각해야 한다. 산업·업종별 큰 그림을 던지는 일은 전문가 집단지성으로 풀어가고, 경영현장은 CEO가 올바른 선택과 성과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자존감 확립이 더 중요하다고 격려해야 마땅하다. 지금도 중기 CEO들은 현장에서 경영에 대한 신념을 걸고 ESG를 분명하게 실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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