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얼마 전 남유럽과 북아프리카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의 위상이었다. "꼬레아, 안녕하세요, 대박, 손(손흥민)" 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그저 뿌듯했다.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라 하지 않고 바로 한국인임을 알아봤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이 더 열성적으로 반겼다. 이는 장래 희망적인 한국의 모습을 짐작게 하는 하나의 바로미터였다.

가는 곳마다 쉬이 만나게 되는 관광객은 거의 한국인들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왕래가 힘들었던 지난 수년간 단절로부터의 해방감이 일시에 분출된 걸까. 그 옛날 저 대륙을 누비던 기마민족의 유전인자가 발동한 걸까. 게다가 풍족한 경제적 여유일까. 아무튼 나쁘지 않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또한 싸이나 BTS의 영향력은 모로코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모로코 현지어로 편곡돼 불려질 정도였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대서양 해변도시 카사블랑카 도로변에서 일어났다. 점심 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마주친 20대 초반 모로코 여성이 구사하는 한국말을 접했을 때의 놀라움은 컸다. 

검정 원피스에 검정 히잡을 두른, 앳되고 어여쁜 얼굴에서 말이다. 평소 알던 사람처럼 자연스레 우리말을 주고받다 보니 더 뇌리에 새겨졌다. 음성만 들었다면 전혀 외국인이라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우리말 일상어를 인터넷 자습으로 익혔다는 점이 참으로 가상했다. 

그녀는 아직 우리나라에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으며, 마치 한국과 서울을 반드시 가 봐야 할 이상향으로 여기는 듯했다. 유토피아, 무릉도원, 샹그릴라 등등 무슨 동천복지(洞天福地)라 해도 그녀에게는 어울릴 듯싶었다. 내 일정상 꼭 한국에 오기 바란다며 격려 아닌 격려를 하고 돌아설 때의 아쉬움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 나라 수도 라바트에 2021년 개설된 세종학당(마루문화원)도 인기가 높다고 했다. 모름지기 한국어 붐이 아프리카 땅에까지 일고 있음을 실감했다. 이제 모로코 최대 규모의 유서 깊은 경제도시 카사블랑카에도 세종학당이 설립되기를 관련 문화당국에 권고한다. 지구촌 최고로 위대한 한글이 머잖아 세계 공용어가 될 것이라고 나는 졸저 「한글과 한자의 아름다운 동행」에서 설파한 바 있는데, 그 젊은 여성에게 이 책을 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다음부터는 꼭 챙겨 다니리라 다짐한다.

문화의 힘은 무엇보다도 강하다. 그들 나라 호텔마다 삼성 TV, 가정마다 LG 냉장고라는 것도 벅찬 일이지만, 머나먼 타국에서 피부로 듣고 느끼는 한국어 확산 추세는 감격의 행복호르몬을 분비케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런 추세라면 어느 날 갑자기 한국 문화가 세계를 지배할지도 모르겠다. 유명한 축구선수, 성악가, 클래식 연주자, K무비, K드라마는 물론이려니와 특히 K-POP 가수들은 한국어와 한국문화 전파의 일등공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성싶다. 이들이야말로 국위 선양의 수훈갑이라 하겠다.

근년 한국에는 세계 10대 선진국, 6위 강대국, G8 같은 그럴싸한 언론 보도가 있었다. 과연 그런가. 겉모습은 그럴 듯하나 속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아 문제다. 여기서 속마음은 입법·행정·사법·언론을 비롯한 우리나라 국내 정치·사회의 제반 상황을 말한다. 지난달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공적기관에 대한 국민 신뢰지수는 167개국 중 최하위권인데 그 중 사법시스템이 155위로 가장 낮았다. 요즘 이슈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보자. 북한 해킹과 직원 채용 문제(현대판 음서제)도 문제지만, 더한 문제가 있다. 선거관리는 행정작용이지만 그 수장들은 대법관 내지 지방법원장급들이니 사법시스템의 보호 영역이라 할 수 있다.

2020년 4·15 부정선거가 핵심이다. 이제 국민 상당수가 아는 듯하다. 선관위는 눈 가리고 아웅하면 더 큰코 다칠 상황이다. 해결책은 명료하다. 관련 당국은 사전선거·QR코드·법관 선관위원장을 폐지하고 수개표를 하라. 이것만 되면 명실공히 선진국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억울하게 징역 살았던 구리시선관위 참관위원 이종원 씨 같은 분을 당연히 사면시켜 그 뜻을 높이 사야 할 것이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면 안 된다. 시조 올린다.

- 한국어 독백 -

나 한글아 한국어야
하늘 땅의 사람 소리
 
이제 막 때가 왔어
우리 뜻을 펼칠손가
 
다만당
썩은 선관위를
되살리면 빛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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