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0일 수원시청에 ‘특별한 민원실’이 생겼다. 시청 본관 입구 왼쪽에 자리잡은 ‘새빛민원실’이다.

외관부터 행정서비스까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외형은 마치 식물카페 같은 느낌을 풍긴다. 보통 사무 공간에 배치하는 딱딱한 칸막이 대신 곡선형 벽체에 식물을 심어 세련된 외관과 아늑한 내부 공간이 조화를 이룬 덕분이다. 

서비스도 도드라진다. 30년 가까운 경력을 지닌 팀장 이상급 공무원들이 ‘베테랑 ○○○’이라는 이름표까지 달고 시민들을 직접 만난다. 다소 시간이 걸려도 함께 해결 방안을 찾고 만족도까지 챙기며 민원 해결사를 자처한다.

새빛민원실 내부.
새빛민원실 내부.

# 분간하기 힘든 업무 경계를 가르는 베테랑

새로 시작한 새빛민원실 핵심 역량은 부서 간 명확하지 않은 업무를 조정하는 일에서 발휘한다. 민원 다수를 차지하는 도시 정비·개발 관련 민원의 경우 다양한 법과 제도로 얽힌데다 이해관계도 복잡해 담당 부서를 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민원인이 담당 부서를 찾아 헤매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시는 ‘베테랑 공무원’을 활용해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해 나간다.

개소 10일 만에 새빛민원실이 접수한 민원은 부서 간 업무 조정 대표 사례다. 영통구 한 일반음식점의 옥외영업 신고를 접수한 환경위생과에서 관련 규정을 검토하던 중 업무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사실을 발견하고 새빛민원실에 도움을 요청하면서다.

공동주택 행위 신고사항은 구청장에게 위임한 업무지만, 해당 위치가 공동주택 공용부분인 만큼 시청 관할일 가능성도 있다.

담당 부서 의견이 달라 명확하게 업무를 가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25년 이상 경력을 가진 공무원이 조정에 나섰다. 시 담당 부서에서 관련 서류를 구청으로 보내고, 구청에서 의견을 회신함으로써 민원을 이른 시기에 처리하도록 중재했다. 민원인 처지에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지닌 베테랑의 업무 조정은 복잡한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5월 초 화성 농업인이 제기한 민원 해결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모내기철이지만 농업용수가 부족하자 "시 저수지에서 물을 방류해 달라"는 민원이었다. 시는 이미 전년보다 많은 양의 물을 방류하는 상황이었고, 민원현장을 확인하고 조치를 끝낸 상태였다.

하지만 새빛민원실 공무원들은 화성시와 농어촌공사를 비롯한 관계 기관에 협조를 요청해 실무협의반을 운영하면서 적극 나섰다.

실무협의로 농민 생계와 직결한 문제인 만큼 농번기라는 계절 요인을 감안해 일정 기간 수문을 더 개방하기로 결정해 사안을 해결했다. 덕분에 적절한 때에 모내기를 한 민원인은 수원시와 공무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5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직원들로 구성된 민원 해결사들.
5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직원들로 구성된 민원 해결사들.

# ‘내 일’처럼 고민하는 민원 컨설턴트

새빛민원실은 원스톱 서비스를 목표로 한다. 행정절차와 진행이 익숙하지 않은 민원인을 대신해 민원인 처지에서 행정 처리를 조언하는 컨설턴트가 된다.

4월 중순 새빛민원실에는 한 민원인이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 위한 행정절차를 확인하려고 방문했다. 관내에서 축산물가공업 허가를 받으려고 수원시청을 찾았다. 

하지만 관련 업무는 수원시 소관이 아니라 경기도 소관이었다. 민원을 접수한 베테랑 공무원은 민원인이 해야 할 절차를 정확하게 안내하며 도왔다. 사업을 하려는 건물을 직접 열람하고 용도변경 문제와 폐수배출시설 신고 같은 필요한 사전 조치와 서류를 안내한 뒤 도청 어떤 부서를 방문해야 하는지까지 설명했다.

막막한 상황에 처한 시민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전해 주는 일도 새빛민원실이 한다.

5월 말 70대 노인이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신청하려고 찾았다. 그는 아들과 함께 식당을 운영 중이었으나 아들이 뇌질환으로 쓰러진 뒤 생계가 막막한 상태였다. 식당은 접었지만 부동산을 소유해 지원이 가능한지 알 길이 없었다. 

새빛민원실은 민원인 상황을 확인한 뒤 방법을 함께 찾았다. 부동산이 있지만 부채 내역을 증빙하고, 은행 거래 내역을 발급해 자격심사 근거로 활용 가능하다고 알려 줬다. 또 치료를 위한 의료비 지원이 가능하다고 안내함으로써 절박했던 노모를 안심시켰다.

이 밖에도 그물망 사이로 빠져나간 복지민원을 해결하며 희망을 전하는 임무도 수행한다. 잘 알아듣기 힘든 용어로 가득한 체납 과태료 처분 통지서를 들고 온 외국인 주민에게는 압류 해제 절차를 차근차근 진행하게끔 안내해 어려움을 덜어줬다.

또 수술비 마련이 어려웠던 주민을 위해 여러 부서에 문의해 수술비 지원 방법을 찾아주기도 하면서 민원 해결 사례가 차곡차곡 쌓인다.

# 경청하고, 공감하고, 방법을 찾는 감동 행정

민원인 이야기를 경청하고 시간과 마음을 내 함께 방법을 찾는 일은 새빛민원실 강점이다.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다양한 일들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때로는 경청만으로도 민원인이 만족하기도 한다.

새빛민원실의 경청과 민원 해결 태도는 감동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46년 전 입양을 보낸 아들을 찾고 싶었지만 방법을 모르던 70대 노인이 새빛민원실에서 희망을 발견한 경우가 그렇다. 

5월 새빛민원실을 찾은 한 할머니는 가방에서 낡은 호적등본을 꺼내 보여 주며 입양을 보낸 아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입양기관 위치가 수원이어서 찾아봤지만 40년 이상 흐른 지금은 흔적이 없었고, 숱한 날들을 헤매다가 새빛민원실을 찾게 됐다고 한다. 

수원시는 입양 관련 업무를 진행하지 않고, 입양가족을 찾을 권한도 없지만 베테랑 공무원이 할머니 이야기를 경청하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결국 1시간여가 넘는 시간 동안 입양과 관련한 여러 곳을 확인한 끝에 입양사후관리서비스를 지원하는 한 기관에서 아들 입양기록을 확인했다.

46년 만에 아들이 네덜란드로 입양됐다는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그제서야 얼굴색이 밝아졌다. 새빛민원실에서는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을 비롯한 행정서류는 물론 입양인 찾기 신청 서류 작성까지 도운 뒤 민원처리를 마무리했다.

행정기관이 지도하지 못하는 사안이지만 민간 부문 협조를 얻어 해결한 민원 사례도 있다.

5월 초 한 노인이 아파트 경로당 개소가 늦어진다며 새빛민원실에 도움을 요청했다. 현행법은 일정 규모 이상 주택단지에 경로당을 무조건 설치하도록 규정하지만, 운영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규정이 없다. 입주 1년이 다 돼 가는 이 공동주택에서도 기자재 구비를 이유로 경로당 개소를 미루는 상황이었다.

별다른 행정절차상 문제는 없었지만, 베테랑 공무원들이 현장을 찾아 관리사무소와 노인회에 협조를 요청했다. 덕분에 20여 일만에 경로당 설치신고서를 접수했고, 해당 단지에 사는 노인들은 다음 달부터 경로당을 이용하게 됐다.

최영희 새빛민원실 팀장은 "경청과 공감만으로도 민원의 반 이상을 해결한다"며 "경험과 비결을 더해 성심껏 민원을 처리한 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민원인을 보면 자부심이 든다"고 했다.

민원을 들고 찾은 시민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직원.
민원을 들고 찾은 시민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직원.

# 새빛민원실, 소통하는 혁신행정

새빛민원실은 이재준 수원시장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7월 민선8기를 시작한 이 시장은 시민들과 만남에서 빼놓지 않고 ‘혁신민원실’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민원 처리를 위해 여러 부서를 찾아다니지 않고 민원인이 카페 같은 공간에서 기다리는 동안 베테랑 공무원이 민원을 처리하고 결과를 알려 주겠다는 다짐이었다.

이후 조직과 기능을 다듬어 시청 민원실은 투트랙 방식으로 4월 10일부터 운영했다. 각종 증명서 발급, 지원 신청, 민원서류 접수, 분류 업무는 통합민원실에서 진행하고 새빛민원실에서는 원스톱 서비스를 시작했다.

새빛민원실은 민원인이 편안히 앉아 궁금증을 해소하는 상담 창구 구실과 부서 간 민원 업무 조정을 하는 임무를 베테랑 공무원이 주축이 돼 처리한다. 베테랑 공무원은 25년 이상 근무한 행정·건축·토목·사회복지·환경직을 포함해 다양한 직렬로 구성했다.

덕분에 하나의 민원을 처리할 때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두 번, 세 번 방문하지 않도록 하는 원스톱 처리가 가능해졌다. 전국 최초로 시도하는 유일무이한 민원 친화형 소통 서비스다.

새빛민원실을 더욱 쾌적한 환경으로 만들 공사도 마무리 단계다. 외부 정원 조성공사가 이달 말 끝나면 새빛민원실 개소식도 진행할 예정이다. 다음 달부터 통합민원실이 본청 1층 오른편에 자리잡을 예정이어서 7월이면 시청 1층 로비가 온전히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다시 탄생할 전망이다.

이 시장은 "앞으로 새빛민원실은 시민들에게 새로운 민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실무 부서 간 연계와 화합을 이끌어 정책 방향을 정리하고 갈등을 해결해 나가겠다"며 "시민이 공감하고 감동하는 소통을 기반으로 더 나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강우 기자 kkw@kihoilbo.co.kr

사진=<수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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