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KG패스원 교수
김준기 KG패스원 교수

부끄러움은 양심의 최소한 양식이며 인간성의 최후 보루다. 

맹자가 말한 인간의 타고난 4가지 마음인 4단 가운데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주지하다시피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거짓된 행동을 미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시대와 무관하게 우리 모두는 근원의 생명 의지를 갖췄으며, 거기에는 일찍이 가림막은 없었다. 따라서 수치심에 대한 자극도 예민했고 죄의식에 대한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완전했던 본원의 기질이 몸을 가짐으로 해서 개인에 따라 서로 다른 성격의 편향을 가져오고, 정도에 따라 물욕의 함정에 빠져 애초 상태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경우가 있다.

부끄러움은 자기의 실수나 결점을 강하게 의식하고 남을 대하기가 떳떳하지 못한 감정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해 주는 마음의 기둥이자 영혼의 버팀목이다. 

그래서 인간은 아무리 실수를 저지르고 악에 빠져도 설령 법적인 처벌은 피하지 못할지언정 부끄러움에 의한 자성을 토대로 도의적 책임감을 통해 본인이 죄업에서 솟아날 구멍을 모색할 수 있다.

물론 그 허물은 명백하고 구체적인 증거를 토대로 사법적으로도 판단된다.

그런데 허위가 법적으로 드러났음에도 그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떳떳하다고 강변하는 태도야말로 법치를 모욕하는 처사다. 게다가 그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손해를 입혔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윤동주는 ‘자화상’에서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라고 노래했다.

밝은 달과 흐르는 구름, 펼쳐진 하늘과 파란 바람은 자아의 마음에 비치는 투명한 세상의 모습이다. 그리고 인격의 완성을 나타내는 가을은 뜨거운 여름을 견딘 결과물이며, 지난 기억을 의미하는 추억은 성찰을 위한 흘러간 시간이다.

결국 인격의 성장은 치열한 반성의 과정과 냉철한 가책의 고통에서 비롯된다.  

마크트 웨인은 인간만이 얼굴이 붉어지는 동물이라고 했다. 그 붉어지는 얼굴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자책감에 대한 솔직한 마음의 토로이고, 가장 떳떳한 내면의 고백이다.

인간이 신은 될 수 없을지언정 짐승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지·인을 상형해 글자 ‘·, ㅡ, ㅣ’를 만든 세종의 의식에도 키에르케고르처럼 인간은 땅을 딛고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존재로 인식했다.

결국 우리는 도덕성의 경계에 서서 땅을 향해서는 동물로 전락할 위기에, 하늘을 향해서는 신에게 도달할 기회에 동시에 직면했다. 물론 그 하늘은 각성의 문이 열리고 부끄러움을 아는 온전한 유심(唯心)으로만 만난다. 그래서 ‘서시’에서 시적 화자는 하늘을 우러러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랐다.

자존은 자신의 존재와 인격과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긍지를 가지고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는 태도다. 부끄러움은 바로 이러한 자존을 지키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유안진 시인은 시 ‘뿔고’에서 "사람에게는 왜 뿔이 없을까? 있지 더러는, 엉덩이에"라고 했다. 곤충인 풀여치나 귀뚜라미에게도 있고, 동물인 사슴이나 순록에게도 있는 뿔이 엉덩이에 난 인간에게 죄책감과 모욕감이 남아 있을 리 없다.

예컨대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인간들을 포함해 조작으로 취한 혜택이 불법이고, 위조로 얻은 이익이 위법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리를 외면하고 일체의 사과를 거부하며 당당하게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이들의 뒷모습이 궁금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외면과 부정은 인식의 교란에서도 비롯되지만, 더 심각하게는 도덕적 오만에서 배태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그 도덕적 교만은 인격적 자만심과 어우러져 올바름에 대한 과장과 결백함의 착각을 증폭시킨다.  

부끄러움을 거부하면 그 몫은 고스란히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분노와 곤혹스러움으로 돌아간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결백하고 정직한 마음이다. 이 염치를 자각하고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잃어버린 인성을 극복하고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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