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연예인이 봐도 눈부신 오라로 범접하기 어려운 사람을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고 하듯 작가들의 작가도 있다. 체호프, 도스토옙스키, 플로베르, 모파상, 헤밍웨이, 버지니아 울프 등 문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작가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인물이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다. 

톨스토이는 작가 인생의 중기로 평가받는 30대 중반부터 40대 후반에 그의 역작으로 손꼽히는 「전쟁과 평화」(1864~1869)와 「안나 카레니나」(1873~1877)를 발표했다. 하지만 쉰 살 이후에는 이 두 작품을 ‘귀족의 예술’이라 말하며 자신의 흑역사로 치부했다. 이는 톨스토이의 세계관 변화와 연관이 있다. 귀족으로 살아온 톨스토이는 오십이 된 시기에 인생의 의미와 삶의 목적을 고통스럽게 탐구했고, 밭을 일구는 농부의 모습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남들 눈에는 다소 미련하고 바보처럼 보여도 베풀며 선을 행하는 삶과 그 실천이 이후 삶의 주제가 됐다. 때문에 평범한 농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귀족의 생활과 문화를 배경으로 한 두 작품을 작가 스스로 부정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 작품에도 톨스토이의 후반기 인생 철학이 녹아 있다. 

1956년 개봉한 영화 ‘전쟁과 평화’는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배경은 19세기 초 러시아를 무대로 한다. 당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영국에 경제적 압박을 가하기 위해 ‘대륙봉쇄령’을 내렸는데, 그 여파가 러시아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한 결과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 귀족 가문의 안드레이는 전쟁에서 큰 부상을 입고 겨우 살아 돌아왔지만 아내마저 산후병으로 잃자 삶에 회의감을 느낀다. 한편,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피에르는 막대한 유산과 백작 작위를 물려받은 뒤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하지만 그의 삶은 허무했고 불행했다. 생각과 사고방식 등 모든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아내는 향락과 사치에 빠졌다. 그렇게 황폐한 두 사람에게 나타샤의 존재는 찬란한 햇살이자 등불이었다. 

나타샤는 마치 운명처럼 안드레이와 사랑에 빠지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끝나지 않는 오랜 전쟁으로 다시 참전하게 된 안드레이는 끝내 사망하게 되고, 전쟁에 무관심했던 피에르도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전쟁포로로 끝까지 생존한 끝에 존재의 허무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개혁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타샤와 농민들과 함께 밭을 성실하게 일구며 살아간다. 

‘전쟁과 평화’ 속 다양한 등장인물은 각자의 시련을 극복하며 전쟁 이전보다 한층 성장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생의 행복은 물질적 풍요로움이 아닌 정직하고 건강하게 흘리는 땀방울에 있음을 그리고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도 소수의 영웅이 아닌 다수의 선한 민중들임을 작가는 말한다. 비록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가 자신이 지향하는 작품이 아니라며 참회하기도 했지만 이 작품에서도 그의 후반기 세계관을 느낄 수 있다. 영화 ‘전쟁과 평화’는 소설의 장대한 대서사를 촘촘히 담아내기에는 다소 아쉬운 지점도 있지만 오드리 햅번은 그야말로 찬란한 나타샤의 모습을 훌륭하게 구현해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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