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한때 미국 오바마 전임 대통령은 "한국의 교육을 보라"며 국민의 높은 교육열과 수준 높은 교사진을 수차례 언급했다.

주지하는 바처럼 우리 교육열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온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대학 진학률이 고졸자의 70%를 넘어 선진국 가운데 단연 압도적이다. 여기에 최상위 5% 정도로 인정받는 학력(學力) 집단인 교사(아시아 최고 선진국 싱가포르의 경우 상위 30%)는 대한민국이 최단기간에 걸쳐 최빈국에서 산업화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 낸 주역으로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로 칭송받았다.

그런데 이런 교사의 위상이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87%에 달하는 교사들이 이직이나 사직을 생각 중이며 23.6%만이 교직에 만족하고, 다시 태어나 직업을 갖는다면 20%만이 교직을 택하겠다고 한다. 여기에는 교권 추락과 생활지도의 어려움, 학부모 민원과 소송은 물론 잦은 간섭과 갑질, 과도한 행정업무로 교원 본업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심지어 정신질환을 앓는 것이 주원인이다. 한때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되는 존경의 대상에서 3D 업종의 기피 대상으로 추락한 배경이다.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대표 거인족인 티탄 프로메테우스는 트릭스터(흑과 백,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양의적 존재)였다. 소위 올림포스 신들에게는 매우 괘씸하고 골치 아픈 ‘분노 유발자’였지만, 인간들 사이에서는 고맙고 든든한 ‘아는 형님’이었다. 그런 프로메테우스가 바위에 쇠사슬로 묶인 채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고 있다. 그의 벌은 제우스에게서 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결코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도대체 그의 죄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프로메테우스가 인류 문명을 꽃피우게 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 교사의 처지와 유사한 운명이라면 지나칠까.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에는 ‘앞서 생각하는 자’라는 의미가 담겼다. 원래 그는 신들이 창조한 인간과 동물들에게 필요한 재능과 능력을 나눠 주는 임무를 맡았다. 동생 에피메테우스와 함께 부여받은 임무였으나, 동생이 이것저것 구별하지 못하고 무모하고 무책임하게 동물들에게 이런저런 능력을 나눠 주는 행위에 인간에게 줄 능력이 더 이상 없게 되자 직접 해결사로 나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제우스가 인간에게 절대 줘서는 안 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천궁의 불을 훔쳐 건네준 것이었다. 이에 제우스의 분노와 심기를 자극해 그는 결국 형벌을 받는다고 신화는 전한다.

쇠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는 밤새 간을 파먹히면 다시 돋아난 간을 또 파먹히며 같은 고통을 3천 년 동안 받았다. 나중에 비로소 헤라클레스에 의해 쇠사슬에서 풀려나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을 통해 그가 처절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신념을 지킨 위대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여타 신들과 달리 인간에 대한 사랑이 차별화됐다. 이는 비록 신화에 불과한 이야기지만 그의 정신은 오늘날 인류에게 나누고 베풀어야 할 강력한 사랑을 교육활동으로 다시금 부활시킬 충분한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교육하는 자는 의지와 신념이 굳건해야 한다. 한때 신의 소명인 성직(聖職)이라 불리던 교직은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사에 이런 신념을 지킨 또 다른 위대한 스승이 있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형벌을 인간 사랑으로 몸소 실천한 예수는 인류의 참스승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현실에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숭고한 교육에의 정신과 자세 실천은 과거 국가 건설자로서의 교사 이미지와 닮았다. 

이 땅에서 교직은 여타 직업이 주는 만족과 명예도 뛰어넘는다. 미래 세대에 대한 사랑의 실천과 성스러운 교육행위는 프로메테우스의 인간에 대한 선(善)보다 더 위대하고 강하다고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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