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아팠기에 누군가의 치유를 돕고 싶었습니다." 구리시 인창동에서 ‘마음숲아동발달센터’를 운영하는 허미정(50)센터장 말이다.

그는 경북 영주에서 허약한 체질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 잠시 숨이 멎었다가 살아났다는 얘기도 있고, 한번은 감기에 걸려 피를 많이 쏟아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도 한다.

신체가 왜소해 맞는 책걸상이 없어 학교 권유로 1년 늦게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보단 노력으로 어려운 상황을 이겨냈다. 늦깎이 대학생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그의 삶을 엿봤다.

-치유하는 길로 들어선 계기는.

▶큰 병이 아니라 시름시름 많이 아팠다. 다른 형제들은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외부 학교로 갔지만, 나는 집 근처 학교만 다녔다.

대학도 집 근처였는데, 부모님 권유로 준종합병원에 취직했다. 대학을 야간으로 돌리고 일을 시작했는데, 물리치료실을 원해 근무하면서 치유의 길로 들어섰다.

경영학 전공인데 자격증이 필요해서 간호조무사를 땄다. 그렇게 14년 정도 일을 하는데 뭔가 조금 공허했고, 채우고 싶은 무언가가 생겼다. 물리치료를 해도 건강해지지 않는 환자들을 보면서 무언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막냇동생이 고등학교 진학부장이었는데 ‘인간재활학과’를 추천했다. 치유하는 새로운 무언가를 갈구했던 시기라 ‘34세 늦깎이 대학생’으로 다시 입학했다.

중등 위주 언어치료와 특수교육을 배웠는데, 초등도 같이 해 두면 좋을 듯싶어 복수 전공을 했다. 덕분에 서울에서 계절학기도 다니면서 모든 시간을 공부에 집중해야만 했다.

졸업한 뒤에는 남양주시 와부고등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처음 교편을 잡았다. 다양한 아이들과 갖가지 상황을 마주하면서 또다시 근본이 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대학원에 입학해 심리학을 공부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치료도 중요하지만, 아이 심리를 꿰뚫어 핵심을 파악하게 돼 큰 도움이 됐다. 자연스럽게 연령대를 벗어나 아이 성장 과정을 조율하기 쉬워졌다. 접근이 쉽고 교육과정이나 수업을 짤 때도 아이 마음을 함께 보게 돼 더 빨리 진도를 나갔다. 

아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치유 관점에서 접근하고 마음까지 두루 들여다 보니 다양한 접근 방법이 생겼다.

-치유에 빠진 이유와 사례를 듣고 싶다.

▶국내 특수교육은 외국에서 만든 시스템을 그대로 들여왔다. 조금씩 변하지만 외국인에 맞춘 시스템이고, 특수법조차도 외국 법을 그대로 가져오다 보니 시스템과 현장 간 괴리가 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현장에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직접 마주치는 현장이 가장 답답할 도리밖에 없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고 배움을 이어가면서 나중에 깨달았다. 내 삶이 치유라는 큰 줄기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치유가 가장 좋은 점은 나 자신도 치유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회복 탄력성’이라고 보는데, 마음이 가라앉을 때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금세 회복한다. 그렇게 가라앉지 않고 행복하도록 함께 배워 나가는 과정이 치유라고 본다. 일로 접근하면 모두가 힘들지만 나 자신을 위로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빨리 나으려면 마음을 정확하고 깊숙하게 파악해야 한다.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준비하고, 이를 아이가 잘 배워 나갈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한번은 가정이 어려워 위탁기관에서 성장한 아이가 신입생으로 들어왔다. 학교처럼 절제된 생활규칙에 적응이 쉽지 않았는데,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심리학으로 접근하니 도울 방법이 생겼다.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그 능력을 제대로 살려 보자고 마음먹었다. 이 친구가 컴퓨터 관련 대회에서 서울 1위, 전국 2위로 입상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같은 성취감은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모두가 자신을 ‘문제투성이’로 오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당연히 학교생활도 매우 잘하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 내 삶이 가장 행복하다.

-마음숲아동발달센터는 어떤 일을 하나.

▶마음숲아동발달센터는 0세부터 만 18세까지가 대상이다. 어른도 준비 중인데, 연령대가 넓은 이유는 성장 과정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아이들이 꾸준히 함께하면 마음을 열고 친구처럼 서로를 응원하며 성장한다. 발달 단계에 어려움이 있거나 장애군에 속한 아이들이 주된 대상이다.

학교에서 교우관계, 학업, 자신을 잘 몰라 문제가 생기는 아이들도 찾아온다. 누군가와 얘기하면서 문제를 빨리 발견해 스스로 치료하는 경험을 하도록 돕는 일이 센터 임무다.

학교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아이가 어릴 때 ‘기저’에서 스스로 잘 이끌면 더욱 건강하게 성장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배움의 핵심 지점이 ‘유아기’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균일하게 성장하기 어렵다면 발달 단계에 맞춰 조금씩 개입하면 어떨까 한다.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기저 구실’이 센터 목표다. 

센터에서 근무하는 선생님 8명도 모두 석·박사까지 마쳤다. 치료와 상담을 전공하거나 교사도 있는데, 저보다 무언가를 꿰뚫어보는 눈이 더 훌륭하다. 대부분 배움이 충만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해 누군가를 도우려고 한다. 선생님들께 큰 도움을 받는다.

-현재 특수교육 정책에서 개선할 부분은.

▶정책 수립 단계에서 현장 근무자 의견에 귀 기울여 주셨으면 한다. ‘우리 아이 심리 지원’처럼 정부에선 특수교육과 관련한 많은 사업을 하는데, 현실을 더 적용해서 계획해야 한다.

수많은 시민을 상대로 하는 업무에 담당 공무원이 1명에서 2명이면 누가 봐도 ‘극소수’ 아닌가. 공무원 1명이 30개가 넘는 기관을 관리하는 곳도 있다. 서비스 대상자가 100명인데, 제공 인력이 2명에 불과하면 사실상 아이들을 치유하기는 무리다. 위탁사업 운영 점검만 하지 말고 조금 더 나아가게끔 현실에 맞는 방향을 함께 수립하면 좋겠다.

더구나 재활 분야에서 명확하지 않은 치료비 부분도 개선해야 한다. 오죽하면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나오겠나. 치료비나 검사비를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고 기관별로 차이도 심하다.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서 상담비까지 지출하면서 찾아와야 하는데, 외려 부담으로 작용할지 모른다. 센터가 상담비를 받지 않는 까닭이다. 국가에서 정책을 명확하게 할 때 더 많은 아이들이 도움을 받는다.

-다음 목표는 뭔가.

▶폐교를 하나 꾸며서 계절학교를 만들고 싶다.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뛰어놀면서 마음을 발산하는 ‘치유하는 공간’이다. 한 학기 잘 가르쳐 놨는데 방학 지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생긴 꿈이다. 처음 목표였던 특수아동을 위한 특별한 공간의 진화형이다.

아직도 우리 아이들을 데려가면 받아주는 카페가 별로 없어서 중랑구 쪽 커피숍을 인수해 체험장을 만들려 했는데 다소 무리가 있었다.

우리 사회가 ‘특수’한 아이가 아닌, ‘특별’한 아이라고 인식하도록 무언가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다. 

조한재 기자 chj@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