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은 캐릭터가 있다. 그저 그런 인물에 통통한 몸매, 공부에도 별 소질이 없는데 운동신경마저 떨어지는 이 아이는 연날리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사냥개 비글을 한 마리 키우지만 찬찬히 보면 강아지가 소년을 돌볼 때가 더 많다. 이 아이 곁에는 하나같이 개성 강한 친구들로 가득하다. 극성맞는 친구들의 기행에 여러 수난을 많이도 겪지만 털고 일어나는 것만큼은 잘하는 소년의 이름은 바로 찰리 브라운이다. 특출난 구석은 없지만 동글동글한 외모처럼 모난 곳 없이 수더분한 이 아이의 일상은 수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1950년 미국에서 4컷짜리 만화로 시작한 작품은 소년 찰리 브라운과 그의 비글 강아지 스누피 그리고 라이너스, 루시, 슈로더, 샐리, 마시, 프랭클린 등의 친구들과 함께 반세기 동안 연재되며 신문 연재 만화의 대명사가 됐다. 만화가 슐츠는 땅콩을 먹으며 즐기는 가벼운 만화라는 모토 아래 작품 제목을 ‘피너츠’로 지었지만 대중에게는 찰리 브라운이나 스누피라는 캐릭터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피너츠’의 첫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찰리 브라운이라는 이름의 소년’으로 1969년 개봉해 큰 인기를 얻었다. 주인공 찰리와 친구들 그리고 50년간 유지된 작품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만한 따뜻한 영화다.

야구를 좋아하는 찰리는 시즌 첫 경기에서 완패한다. 패배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이번 시즌도 지난번처럼 100전 100패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평생 변변한 것 하나 이루지 못한 실패자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엄습할 즈음 친구 루시가 학교에서 여는 영어 철자 맞히기 대회에 나가 보라고 장난스레 권한다. 평소 단어에 관심이 많았던 찰리는 좋은 생각이라며 교내 대회에 참가한다. 그리고 1등을 한다. 

드디어 자신은 패배자 굴레에서 벗어났다며 행복해하는 찰리에게 루시는 전국대회 출전을 강권한다.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고 극구 사양하지만 친구들의 등쌀에 떠밀려 찰리는 전국대회에 나간다. 이웃집 동생 라이너스는 자신의 애착 담요를 행운의 부적이라며 버스에 올라타는 찰리에게 건넨다. 

대회 전날까지 비몽사몽으로 밤새워 공부하는 찰리의 숙소 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 보니 라이너스와 스누피가 서 있다. 사실 라이너스는 애착 담요를 건넨 후 금단증상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이불을 찾아 형의 숙소까지 오게 됐다. 그러나 덕분에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나 기쁜 찰리였다. 

온 김에 응원까지 하게 된 라이너스와 스누피 덕에 든든한 마음으로 대회에 서게 된 찰리. 파죽지세로 2강까지 오른다. 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단어는 비글(beagle). 반려견 스누피의 종이 비글이었기에 우승은 떼어놓은 당상이라 생각했거늘, 철자를 틀리게 말하는 바람에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이에 동네 친구들은 실망하고, 그런 반응에 찰리도 기가 죽는다.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찰리를 위로하러 간 라이너스는 모두 형을 그리워하며, 어제의 실패에도 세상은 망하지 않았다고도 말한다. 용기 내어 밖으로 나온 찰리는 예전과 다름없는 일상을 느낀다. 그리고 뜰에서 홀로 공놀이를 하는 루시 본 찰리는 장난 칠 마음으로 몰래 다가서지만 이번에도 역시 루시에게 당하고 만다. 그런 찰리를 보며 루시는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돌아온 걸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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