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주인은 시민입니다. 인천시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만한 도시를 만드는 데 함께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인천에서 20년 넘게 근대문화유산 지키기 활동에 힘을 쏟은 이희환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공동대표 겸 인천대학교 인천학 학술연구교수가 사라지는 근대문화유산을 안타까워하며 인천시민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기호일보가 인터뷰를 하려고 찾은 그의 활동 근거지인 ‘인천문화양조장’은 배다리 문화예술의 거리에 있는데, 인천 대표 막걸리인 소성주를 만들던 옛 공장 건물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100여 년의 시간을 머금은 듯 낡고 허름한 내부가 근대문화유산을 아끼는 이 대표 마음을 보여 주기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 딱 들어맞는 공간이 있을까.

이희환 대표.
이희환 대표.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를 소개해 달라. 그리고 이 일을 하게 된 동기도 궁금하다.

▶2005년께 국방부가 인천 도심 문학산에 패트리엇 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발표하는 바람에 기지를 이전한 뒤 도심 속 공원을 바랐던 인천시민 반대가 거셌다. 이에 범시민연대를 결성해 미사일 배치에 반대했고, 문학산 기지는 2006년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이 일이 무분별한 도시개발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됐고, 당시 인천공공네트워크 전신인 ‘도시환경연대회의’를 만들어 활동했다. 이후 2015년께 ‘인천 도시 공간을 공공과 공익 관점에서 모두가 누리는 도시로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인천공공네트워크를 정식 발족했다.

-인천공공성네트워크를 결성한 뒤 벌인 주된 활동은.

▶현재 화도진공원에 자리한 화도진지 터를 바로잡으려고 여러 활동을 시작했다. 사건 시작은 1882년 서구와 최초로 맺은 불평등조약인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 올라가지만,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년을 기념한다며 급하게 화도진공원을 조성한 게 발단이 됐다. 그러다가 2013년께 인천세관 공무원이 ‘인천해관장 사택 터’를 명기한 지도를 발견해 이를 바탕으로 고증을 거쳐 조선과 미국 조약 체결 장소가 현재 자유공원 입구(중구 제물량로232번길 23)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화도진공원에 세워진 조미수호통상조약 기념비가 오류로 드러나면서 인천시가 붙인 기념비 이전 안내판.
화도진공원에 세워진 조미수호통상조약 기념비가 오류로 드러나면서 인천시가 붙인 기념비 이전 안내판.

이에 몇몇 시민단체, 전문가와 함께 2016년부터 조미수호통상조약 바로 알기 활동을 벌인 끝에 인천시에서 이를 수용해 자유공원에 2019년에 표지석을 세웠고, 2021년 말에는 영어와 중국어를 추가한 기념비로 교체했다.

하지만 동구청은 화도진공원에 잘못 세운 조미수호통상조약 기념비를 옮기거나 철거해야 한다는 요구에 묵묵부답이다. 이를 바로잡으려고 성명서도 내고 지역사회에 꾸준히 문제를 알린 결과 다음 회기에 구정질의로 문제를 다룬다고 한다.

화도진지 옆 화수·화평 재개발지역 안에 도시노동운동의 산실인 ‘인천도시산업선교회’ 건물(현 일꾼교회)도 철거 위기에 내몰렸다가 합의했다. 2021년 지역재개발조합과 시가 철거를 진행하려 해 교계와 시민단체가 단식농성까지 벌이며 보존을 요구했다. 결국 2022년 5월 원형 그대로 이전을 합의하고, 그 자리엔 상징물을 세우기로 했다.

최근에는 인천 3·1운동 발상지이자 가장 오래된 공립학교인 창영초등학교 이전 반대 활동도 벌였다. 올해 초 재개발 예정지(금송지구)로 창영초를 이전하고 그 자리에 동구 여자중학교가 들어설 계획이라는 보도에 놀랐다. 이에 초교 동창회와 그 지역 역사 전문가들과 함께 이전 반대운동을 벌였다. 이런 노력 덕인지 교육청 투자심사에서 부결되고 지역 여론과 인천시 반대에 부딪혀 올해 3월 인천시교육청이 이전계획을 철회했다. 외려 창영초 발전 방안을 세우고 재개발지역엔 새로운 초등학교와 여중을 합한 병설학교를 세우기로 가닥을 잡았다.

인천 애관극장
인천 애관극장

그리고 애관극장을 말하고 싶다. 애관극장은 조선인이 세운 한국 첫 실내극장이자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128년) 극장이다. 1970년대부터 3대째 운영했지만, 멀티플렉스 극장과 넷플릭스로 대표하는 OTT 플랫폼에도 밀리고 코로나19 불황까지 겹치다 보니 적자를 유지하기 힘든 수준까지 왔다. 그래서 인천시가 매입(감정평가액 70억 원)해 인천 역사박물관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해 전임 시장 때 공공매입 방침을 세웠다. 그런데 2021년 부임한 문화관광국장이 매입한 뒤 활용 계획이 확실하지 않다며 매입 의사를 철회하고 연구용역을 했다. 결과는 문화·역사 가치는 뛰어나지만 건축물 가치는 낡아서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고서가 올라왔고, 언론에는 건축물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나와 난관에 부딪혔다. 시에 공공매입을 다시 촉구할 예정이다. 지금은 인천 안에서만 토론회를 여는 수준이지만 최근 이슈인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 위기(60년 된 극장 보존과 철거 뒤 개발하자는 양측이 대립했으나 5월 25일 시의회에서 철거안이 통과됐다)와 더불어 전국으로 여론 환기가 필요하다.

일본 조병창 건물과 미군 캠프 마켓
일본 조병창 건물과 미군 캠프 마켓

부평 캠프 마켓 안 일본군 조병창 병원 건물도 보존 가치가 높은 근대문화유산이다. 이곳은 1939년 일본군이 한반도에 세운 무기 공장터로, 일제 만행과 조선인이 겪은 고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건물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군 부대가 그 자리를 대신했고, 시민들이 미군 부대 반환운동을 오랜 기간 벌인 끝에 미군이 평택으로 통합하는 정책과 맞물리면서 캠프 마켓 역시 이전을 시작했다.

그런데 국방부와 인천시가 차례로 반환하는 땅에 공원 조성사업을 발표해 캠프 마켓 B구역 낡은 조병창 건물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주된 철거 이유로 너무 낡아 위험한데다 건물 밑에 오염이 심해 철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철거를 하지 않고도 오염을 제거하는 공법이 있다. 결국 시간과 비용 문제로 철거하겠다는 논리다. 아직 미개방 구역에 여러 건물도 남은 상태에서 조병창 병원 건물이 철거로 결론이 난다면 나머지 건물도 철거가 불 보듯 뻔해 시민단체 걱정이 많다.

더욱이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부동산 가격 상승을 바라고 공원 조성을 밀고 나가려고 해 반대에 부딪힌 상황이다. 급한 대로 법원에 철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조미수교통상조약 기념비
조미수교통상조약 기념비

-최근 불거진 이슈는.

▶얼마 전 인천시가 인천내항 1·8부두 재개발을 발표하며 용역을 발주했다. 여기에는 항만 일부를 친수 공간으로 조성해 140년 만에 인천시민에게 돌려주는 계획도 포함했다. 하지만 항만업계는 반대 의견을 냈다. 그래서 사업 시행사인 인천항만공사(IPA)가 고민이 많은 듯하다. 항만업계가 워낙 강력해 그들 입맛대로 개발계획을 바꾸지 않는지  지켜보는 중이다.

-앞으로 활동 방향은.

▶시가 신도시 개발(송도·청라·영종)에 중점을 두니 원도심은 사람들이 떠나는 양극 현상이 도드라졌다. 개발과 경제논리만 따르지 말고 균형발전에도 관심을 두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더불어 변해 가는 도시환경에서 근대문화유산이 사라지거나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상황을 막거나 늦추려고 한다. 그에 맞게 대안이나 방안을 찾는 연구가 필요하다. 

김동현 기자 kdh@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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