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대두한 지 20여 년이 흘렀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따라 한꺼번에 양산한 비정규직은 해를 거듭하며 다양한 사회문제를 일으켰다.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간접고용 노동자를 지나치게 적게 추정한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1천만 명이 훌쩍 넘는다고 다수 현장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은 말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많은 차별을 받았다. 정규직과 임금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진다. 노동자가 누려야 할 기본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외주’라는 명분으로 안전조차 제대로 담보하지 못한 채 위험으로 떠밀렸다. 정규직에 견줘 학력과 숙련도가 떨어지는 ‘대체 인력’이라는 편견은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에게 옭아맨 프레임이다. 그동안 수많은 정치인과 제계·노동계 고위 관계자들이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헛구호에 그쳤다.

‘비정규직’ 탄생과 함께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고난과 차별의 역사를 살펴보고, 노사발전재단 산하 인천지역 비정규직 차별 예방 전문기관으로서 사회 갈등 요소인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차별 없는 일터 지원단 인천사무소’를 톺아보자.

부천지역 차별 없는 일터 지원단이 노동 존중과 일·생활 균형 공동캠페인을 펼쳤다.
부천지역 차별 없는 일터 지원단이 노동 존중과 일·생활 균형 공동캠페인을 펼쳤다.

# 비정규직 탄생

‘비정규직’이라는 용어는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한국사회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단어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취업하게 되면 누구나 정규직으로 채용했던 시기다. 회사에 입사할 때 ‘계약직’이란 말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는 당시 근로기준법 제23조에서 규정 때문이었다. 계약직은 기간을 정하지 않고(정규직) 일정한 사업 완료에 필요해야 하고(한시사업) 1년을 초과하지 못하는 계약을 포함해 3가지뿐이었다. 계약직 반복 사용을 제한하려고 근로계약 기간 원칙이 정규직이고 예외로 1년 이하 임시 계약만 가능하도록 정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는 모두를 바꿔 버렸고, ‘평생 직장’이란 단어도 사라졌다. 근로기준법 근로계약 기간 조항을 삭제했다. ‘아웃소싱’이라는 이름의 용역업체 소속으로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이른바 ‘용역 노동자’가 많아지면서 노동자 파견을 합법으로 하고 파견 가능 범위를 정한 ‘파견노동자 보호 들에 관한 법률’을 1998년 제정했다.

당시 도입한 근로기준법 정리해고로 인해 첫 번째 대규모 해고가 발생한 곳이 현대자동차였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탓에 유연한 고용은 속도를 냈다. 같은 공장에서 왼쪽 바퀴는 정규직이, 오른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끼우는데 월급이 다르고 사장도 달랐다. 2002년 ‘비정규직 보호법’이 생겼지만 기간제 2년 사용, 동종 업무 종사자들끼리만 차별 금지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선에서 그쳤다.

# 정규직으로 가는 고장 난 사다리

2000년대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생산직은 보통 계약직 2년을 거쳐야만 정규직으로 옮겨 갔다. 사내 하도급 노동자는 애시당초 정규직을 포기해야만 했다. 계약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사다리는, 기간제에게는 2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무기계약직으로 가도록 하는 구실을 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다수를 차지하는 사내 하도급 불법 파견 노동자의 경우 정규직으로 가는 사다리가 아예 없거나 고장 난 상태다. 현대자동차에서만 하더라도 2005년 해고로 인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인정해 달라는 첫 근로자 지위 확인 청구 소송이 2012년이 돼서야 복직 판결이 났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승소해도 회사는 계약직으로 복직하라고 통보했다. 이후에도 많은 소송을 제기했지만 직접 승소하는 노동자들에게만 판결을 적용할 뿐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근래 들어 직접 생산공정뿐만 아니라 간접 생산공정에서도 불법 파견으로 인정하는 경우도 있고, 비슷한 사안인데도 인정하지 않은 경우도 발생한다.

비정규직 고용차별 개선 사례 확산을 위한 ‘차별 없는 일터 우수사례 발표회’.
비정규직 고용차별 개선 사례 확산을 위한 ‘차별 없는 일터 우수사례 발표회’.

# 비정규직 차별

2014년 개봉한 영화 ‘카트’는 냉혹한 비정규직 현실을 다룬 작품이다. 2000년대 초반 ‘까르푸’라는 외국계 회사 대형 마트를 이랜드그룹이 인수하고 홈에버로 바꾸면서 정규직 계산원들이 하루아침에 용역회사 소속으로 바뀌자 파업을 했고, 불법 파업이라는 이유로 공권력이 진압하는 과정을 그렸다.

회사가 달라졌지만 용역회사로 명찰만 바꾸고 같은 일을 계속 했을 뿐인데, 이 사람들은 왜 파업까지 불사해야 했을까? 소속이 바뀌면 근로계약이 바뀌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회사,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공장과 마트와 거리가 가득 찼다. 그래서 비정규직 보호법, 기간제 단시간 노동자 보호 들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한 ‘좁은 문’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률로 기간제 단시간 노동자 보호 들에 관한 법률과 함께 파견노동자 보호 들에 관한 법률이 있지만, 비정규직 규모는 계속 늘어나고 차별도 여전하다.

이 법을 근거로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과 차별받을 때 노동위원회나 노동부에 차별 시정 신청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차별 금액은 대부분 임금의 일부로 소액인데, 고발하면 그 절차가 복잡하고 재직 중인 회사를 상대로 분쟁을 벌여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동위원회 차별 시정 신청 숫자도 매우 적다. 비정규직이 815만 명인데 정작 사건은 연간 100건을 넘지 못한다.

차별 금액보다 3배까지 청구 가능한 징벌 성격의 손해배상제도를 2014년 도입했으나, 실제 적용한 사건은 단 한 건에 그친다.

노동자가 정부 차별 시정 제도를 활용함으로써 얻을 이익보다 다툼을 하는 동안 경제·시간·정신 손실이 훨씬 크기에 비정규직 개인 진정이나 신청으로 하는 권리구제는 달걀로 바위 치기와 다를 바 없다.

현재 비정규직을 차별에서 보호하는 노동부 근로감독이나 노동위원회 차별 시정 신청 제도는 피해 노동자가 겪는 억울한 사정이 감독기관 담당자 눈앞에 나타나야 하고, 권리구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와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이 또한 비교 대상과 정규직 간 동종 유사 업무 여부, 격차의 이치에 합당한 이유 여부를 따져 몇 단계 필터를 거쳐야 하니 실제 권리구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을 도리밖에 없는 구조다.

고용 차별 예방 교육.
고용 차별 예방 교육.

# 차별 없는 일터 지원단

‘차별 없는 일터 지원단’은 2010년부터 전국에 사무소 6곳을 두고 노사발전재단이 국비지원사업으로 운영 중이다. 지난 10여 년간 차별 없는 일터 지원단은 사업장을 방문해 차별 진단 컨설팅을 진행했다.지난해는 코로나19 시기인데도 전국에서 350개 사업장, 인천·경기지역만 65개 사업장을 방문해 진단 컨설팅을 수행했다. 그 중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 또는 복리후생 차별이 있는 55개 사업장 비정규직 1천822명이 정규직보다 불합리하게 적게 받는 10억 원 상당액을 받도록 지원했다.

복리후생에서도 경조 휴가나 경조금 격차, 복지시설 이용 차등을 개선했다. 또 계약직이나 사내 하도급 같은 정규직 전환이 쉽지 않은 비정규직을 해마다 500여 명 이상 정규직으로 전환해 높은 고용 안정을 달성하는 중이다.

지난해부터는 여성 차별 개선에도 많은 성과를 거뒀다. 인천지역을 포함해 전국 36개 사업장에서 6천538명에 대한 여성 차별을 바로잡았다.

현재 우리나라 비정규직 차별 개선 방안 3가지, 즉 근로감독, 차별 시정 신청, 차별 없는 일터 지원단 중에서 차별 없는 일터 지원단이 가장 많은 성과와 뚜렷한 예방·확산 효과를 거뒀다.

2010년부터 전국에서 유일하게 차별 예방교육을 해마다 5천여 명 이상을 대상으로, 인천·경기지역에서는 1천 명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해마다 사업장 20여 곳을 방문해 인사·노무 담당자들을 한곳에 모아 교육하는 방식인데, 지난해에는 인터넷 온라인 교육까지 포함해 2천485명을 교육했다.

인천 차별 없는 일터 지원단은 올해도 사용자 인식 전환과 비정규직 차별을 막으려고 인천·경기지역에서 1천 명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할 방침이다.

박문배 인천 차별 없는 일터 지원단 소장은 "인천·경기지역에서 연간 60곳이 넘는 회사를 돌며 고용 차별 진단 컨설팅을 진행함으로써 비정규직 차별을 미리 막아 보람을 느낀다"며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완전히 사라져 할 일이 없어지는 그날을 기원하며 오늘도 새로운 회사를 찾는다"고 했다.

  우제성 기자 godok@kihoilbo.co.kr

사진= <인천 차별 없는 일터 지원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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