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학교급식 제도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니세프(UNICEF)를 비롯한 외국 원조기관 지원으로 ‘구호급식’ 형태로 시작했다.

1973년 외국 원조기관이 지원을 돌연 중단하자 우리나라는 자립급식으로 전환해 1978년부터 학교 자체 조리 급식제도를 시범운영했다. 그리고 1992년부터 정부는 학교급식 ‘확대 정책’을 추진해 1998년 초등학교, 1999년 고등학교, 2002년 중학교까지 확대했다. 2003년부터는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전면 급식을 단행했다.

그러나 개선하지 않은 채 운영하는 급식실, 정규직과 다른 임금체계, 복리후생수당을 비롯한 각종 문제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하자 이들은 싸울 도리밖에 없다.

경기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신학기 총파업 선고 기자회견’을 열고 17개 시도교육청에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복리 후생을 촉구했다.<기호일보 DB>
경기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신학기 총파업 선고 기자회견’을 열고 17개 시도교육청에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복리 후생을 촉구했다.<기호일보 DB>

# 처우 개선 시급한 학교급식 비정규직 노동자들

학교 비정규직이란 학교급식에 근무하는 조리실무사, 특수교육실무사, 초등돌봄전담사를 말한다. 이들은 교육불평등이 갈수록 심화하자 교육당국과 맞서 싸운다.

현재 경기도내 학교급식 노동자 한 명이 담당하는 식수 인원은 110∼130명으로 파악된다. 한 명이 감당하는 인원이 100명을 넘어가자 이들의 노동 강도는 매우 높아졌다. 하지만 인원 충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교육부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전국에서 학교급식 조리종사자 1만3천944명이 퇴직했다. 지난해에만 5천400여 명이 퇴직했지만 신규 채용 인원은 4천여 명에 그친다.

30여 년간 도내 학교에서 학교급식 업무를 담당하는 50대 여성 김모 씨는 조리인력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했다.

김 씨는 "가장 나이가 적은 학교급식 조리종사자는 40대 중반 정도로 보면 된다"며 "무거운 물건을 나르고 고된 노동이 따르는 직업을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인원 보충이 되지 않은 이유도 많다"며 "정규직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조리종사자의 낮은 처우와 높은 노동 강도가 계속되면 조리종사자 부족 현상은 갈수록 심화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학교급식 비정규직 노동자인 60대 여성 이모 씨는 일부 학교들의 급식시설이 낡은 점을 문제 삼았다.

이 씨는 "요즘 학교도 10년, 20년이 지나면 리모델링을 하거나 재건축하는데, 낡은 급식실 문제는 뒷전으로 밀린다"며 "지난번 다니던 학교에서는 미끄러운 급식실 바닥재 탓에 크게 넘어져 병원 신세를 졌다"고 했다.

교육당국의 지방재정교부금 감축으로 인해 재정난이 심각해져 개선이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도내 한 중학교 급식실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50대 박모 씨는 "급식시설 현대화사업을 위해 장비와 공간을 보수하려면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데, 정부는 지방재정교부금을 감축하려고 한다"며 "교육당국의 조리환경 개선을 비롯해 조리종사자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 ‘고용노동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전체 조리종사자는 25만5천여 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만 46.9세로 나타났다. 이 중 학교급식소에서 일하는 조리종사자 수는 7만2천여 명에 이른다.

이처럼 학생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학교급식이 일반급식소에 견줘 조리 경력을 중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리종사자 평균연령은 계속 높아질 전망이다.

이 통계에 비춰 보면 5년, 10년이 지나면 학교급식 조리종사자 평균연령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중·후반에 근접하거나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 고공농성에 나선 그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을 비롯한 전국교육공무직본부와 전국여성노동조합, 학교 비정규직과 교육부·17개 시도교육청 간 ‘임금 교섭 잠정 합의안’이 지난 4월 14일 나왔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8개월간 ▶본교섭 5차례 ▶실무교섭 21차례라는 ‘역대 최장기 교섭’을 진행했는데, 마지막으로 임금교섭 잠정 합의안을 이끌어 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속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학비연대)는 지난해 11월 25일 정규직 노동자들과 임금 차별 해소를 주장하며 총파업을 벌였다.

올 1월부터는 도내 각 시도교육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면서 임금 교섭 타결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교섭이 이뤄지지 않자 3월 성지현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장이 직접 도교육청 옛 남부청사 현관 앞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당시 성 지부장은 ‘교육공무직원 임금체계 개선과 급식실 인력 추가 배치안’을 요구하면서 3m 높이 현관 캐노피 위에 홀로 올라가 텐트를 설치하고 농성을 했다.

이들은 결국 ‘임금 교섭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고,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29일째 농성을 중단했다.

학비연대 관계자는 "교육당국과 학비연대 잠정 합의에 더해 최근 도교육청과 부분으로라도 급식실 인력을 충원하는 방안에 대한 이견을 좁혀 농성 중단을 결정했다"며 "앞으로도 비정규직을 비롯한 급식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목소리를 내겠다"고 했다.

교육당국과 잠정 합의가 이뤄지자 이들은 8월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달마다 한 차례 노사 협의를 하기로 했다. 

이어 교육공무직원 임금체계 개선을 위한 논의를 진행함은 물론 처우 개선을 위해 한 사람 앞에 100만 원 인상에 합의했다. 달마다 전 직종 기본급 5만 원 인상, 명절 휴가비 20만 원 인상, 정기상여금 10만 원 인상, 맞춤형 복지비 10만 원 인상이다.

교육당국과 학비연대는 4월 25일 최종 집단 임금 교섭 체결식을 진행했다.

# 건강까지 무너지는 학교급식

2022년 국정감사에서 학교급식실 노동자 폐암 발생률이 일반과 비교했을 때 35배에 이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최근 도교육청 소속 급식실 종사자 1만1천19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폐CT 검사 결과 이상 소견자 3천840명(34.3%), 폐암 의심 88명(%), 폐암 매우 의심 27명(%)으로 확인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폐암 의심자 125명이라는 결과에도 경기도교육청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며 "경기교육청과 산하 교육지원청에는 아직도 낡은 급식실이 있어 배기 효율이 낮다. 외부 송풍기를 제대로 연결하지 않았거나, 설치했어도 제대로 송풍이 안 되는 문제도 있다"고 우려했다.

도내 한 중학교에 다니는 급식 노동자 60대 여성 김모 씨는 "수년간 동고동락한 동료가 ‘폐암’이라는 충격을 주는 결과를 받아 들고 현재 일을 그만두고 병원 치료를 받는다"며 "우리가 왜 이런 처우를 받아야 하는지 원통하지만 좋은 일자리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처럼 학교급식 조리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폐 검진 결과를 공식 발표하면서 인력난은 더욱 심각해진다.

최근 도내 일부 학교에서 급식 노동자를 구하지 못해 위탁급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직영 무상급식 제도가 흔들리는 상황이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기지부 관계자는 "급식실에 나이가 많은 노동자들이 대부분이고, 급식실 내부도 낡은 곳이 많다"며 "열악한 급식실 안에서 노동자들이 건강까지 포기하며 노동을 하는 상황"이라고 규탄했다.

그는 "급식 종사자들이 무너지면 미래 주역인 아이들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며 "급식 노동자를 10년이 넘도록 방치했다. 앞으로 이들을 위한 대책 마련을 비롯해 해결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했다.  

김강우 기자 kkw@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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