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인천 성냥공장.
1920년대 인천 성냥공장.

인천여성노동자회(여노회)는 1989년 창립한 이래 늘 평등한 노동 권리를 찾고 성차별을 하는 노동 환경에 변화를 꾀하려고 투쟁을 이어왔다.

여성에게 전가된 돌봄 노동과 불평등한 노동 환경, 그리고 여성 임금 기준이 돼버린 최저임금까지. 우리나라 노동 환경은 여성에게 유난히 가혹하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존중과 평등을 외치며 불복종에 나선 인천 여성 노동운동 역사를 여노회라는 렌즈로 들여다봤다.

# 나는 여성 노동자다

1921년 일제강점기, ‘조선인촌주식회사’ 성냥공장 노동자들은 주로 10대 여공이었다. 대부분 빈민가 출신으로 가족 생계를 위해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에도 묵묵히 일했지만 일본인 감독이 자행한 성희롱은 여공을 분노하게 했다.

여공들은 인천 최초 여성 노동자 동맹 파업을 시작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려고 우리나라 최초 노조 여성지부장 탄생을 기화로 투쟁을 본격 시작한다.

인천 동구 만석동 동일방직은 당시 여성 중심 사업장이었는데, 1978년 우리나라 최초 노동조합 여성지부장이 탄생한다. 그러나 여성 노조를 파괴하려는 남성 권력과 회사 탄압으로 여성 노동자들은 똥물을 뒤집어쓰며 알몸으로 맞서 투쟁했다. 인천을 넘어 한국 노동운동사에 깊이 각인된 사건이다.

정규직을 요구하며 행진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
정규직을 요구하며 행진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

# 인천여성노동자회 창립

1980년대 후반 격렬했던 투쟁에 정부가 탄압으로 맞서면서 여성 노동자가 많은 산업이 쇠퇴하면서 여성노동조합이 깨지고 노조활동도 줄어든다.

이에 인천지역 민주노조 출신 여성지도자들은 여성 권익을 지키려고 주도하는 활동 방안을 논의했다. 그 결과 1988년 도화동에 ‘일하는 여성의 나눔의집’을 개원한다.

나눔의집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기술 훈련과 교육활동을 하고, 아이를 맡기고 일터에 나가도록 탁아소를 운영했다. 이후 나눔의집을 모태로 공개 선전활동과 미조직 노동자 관련 조직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1989년 여노회가 본격 창립한다.

1978년 동일방직 여공 노조원들에 가한 똥물테러 사건.
1978년 동일방직 여공 노조원들에 가한 똥물테러 사건.

1990년대 인천 여성 노동자 90%가 미조직 노동자들이었다. 

외환위기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으로 여성은 가장 먼저 해고 대상이 됐고, 여성 노동자 대부분이 비정규직을 차지했다. 위기상황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비정규직 자리는 고용 불안과 열악한 근로 조건을 만들어 여성을 더욱 가혹한 환경에 몰아넣었다.

여노회는 1995년 ‘평등의 전화’를 발족해 여성 노동자 권리와 정보를 제공하고, 노동운동 인식과 대응을 높이는 전문 상담 창구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또 대규모 여성 실업 사태에 ‘여성실업대책인천지역본부’를 출범했다. 실직한 여성 가장들의 삶의 위기와 실업 문제 현실을 알리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생계비 지원, 상담과 취업 알선, 쉼터를 지원하고 돌봄 분야 사업을 개발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다양한 기회를 마련하면서 여성 실업문제 해결에 이바지했다.

# 최저임금에 불복하다

급격하게 확산한 여성 노동자 비정규직은 최저임금과 열악한 근로 조건, 법의 보호에서 빠지는 불평등을 낳았다.

1999년 ‘전국여성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인천지역 한 대학 청소노동자들은 최초로 최저임금 문제를 제기했다. 이는 여성 노동자가 겪는 최저임금으로 인한 빈곤 문제를 부각하는 기회가 됐다.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을 맞아 연 집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을 맞아 연 집회.

가사노동자는 대부분 중장년 여성 노동자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2004년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인천지부를 조직해 안정감 있는 일자리를 위한 경제공동체를 만들었다.

전문 직업인이라는 인식을 확산하려고 가정부나 파출부가 아닌 ‘가정관리사’라는 공통 호칭을 부여하고 스스로 권리를 찾아 나섰다. 공식 직업으로 자리잡고 노동자로서 정당하게 법의 보호를 받으려고 법 제정 운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지난해 6월 16일 ‘가사근로자법’ 개정으로 박탈당했던 노동자 권리를 인정받게 됐다.

# 여성 가장, 빈곤 추방을 외치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여성 노동자들. 1년 미만 단기 계약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로 노조에 가입조차 못하는 여성들이 모였다.

보이지 않았던 빈곤 여성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밖으로 드러내고 여성들이 주체가 되려고 2006년 ‘빈곤추방여성노동권확보희망본부’를 만들었다.

빈곤 상태에 놓인 여성 노동자는 대다수가 가장이었다. 본부는 빈곤 추방에 필요한 정책을 요구하면서 희망 품앗이, 한부모 자조모임 같은 대안활동을 벌였다.

여노회는 1989년 대중 활동조직으로 출범한다.
여노회는 1989년 대중 활동조직으로 출범한다.

# 성별 임금 격차 1위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1996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기록 중이다.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으로 고착한 여성 노동시장에는 성차별과 임금 격차가 여전히 있다. 여성 노동자들은 불평등한 노동 현실에 분노와 문제를 제기하면서 우리 사회에 중요한 의제를 이끌어 냈다.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3시 STOP’ 공동 행동, 성별 임금 격차 개선을 목적으로 한 조례 제정 활동, ‘성평등 공시제’로 성차별 없는 평등한 노동환경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구실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현재도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한다.

1998년 문 연 여성실업대책 인천본부.
1998년 문 연 여성실업대책 인천본부.

여성들은 서로 힘을 주고받으며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기 치유와 서로 돌봄으로 당당한 여성 노동자로 살아가려는 활동을 이어간다.

여노회는 평생 노동권을 보장하려고 모성권 강화, 보육 공공성 강화, 함께 일하고 돌보는 일과 생활균형이 가능한 직장문화를 만들려는 활동을 펼친다.

또 직장 안 고용 평등을 실현하고자 고용평등법 개정 활동, 직장 내 성희롱 예방과 피해자 구제 지원,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려고 사회 인식 개선 운동을 꾸준하게 펼친다. 

# 인천여성노동자회 박명숙 회장

"우리끼리는 쌈닭이 돼야 한다고 말해요.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거든요. 목소리를 낼 때 응답하는 주변 동료들이 분명히 있고, 그런 조직이 바로 여노회입니다."

여노회는 지난 35년간 여성 노동 관련 정책을 제안하는 활동과 상담, 토론회를 열면서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여성 노동자 기본 권리 향상과 더불어 기후위기와 환경문제를 다루는 다양한 소모임 활동으로 여성 심리 치유와 자기계발을 돕는다.

박 회장은 "투쟁도 하지만 조합원 간 소모임 활동으로 동지애를 느끼고 여성들끼리 가족 같은 공동체로 우정을 다지는 마치 친정 같은 곳"이라고 했다.

이어 "오랜 활동으로 여러 관련법을 제정하고 혜택이 생겼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 노동환경과 성희롱은 너무나 뿌리 깊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요인으로 성차별 관행과 차별을 꼽았다. 많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으로 노동환경에서 멀어지면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다시 취업하기도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이는 자연스레 청년 여성 노동자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 여노회가 발표한 ‘2022 평등의전화 상담 통계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직장 안 성희롱이 가장 많았다. 주로 직장 상사와 대표 같은 권력을 지닌 남성 때문에 발생하는데, 해임·해고·징계·승진 제한 따위 불리한 조치를 경험했다.

박 회장은 "생계 때문에 일하는 여성들에게 성희롱은 곧 생계를 위협하는 큰 문제로 근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사업주 성희롱은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성희롱 사실을 확인한 뒤 즉시 1천만 원 이하 과태료 처분을 한다. 하지만 법인 대표는 사업주가 아닌 상급자로 여겨 처분이 불가능하고, 법인 안에서 셀프 징계를 내리고 보고하면 그만이다.

박 회장은 "법인 대표에게 당한 직장 안 성희롱은 법 사각지대에 자리잡아 처벌조차 어렵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여전히 처벌을 피해 가며 성희롱을 한다"고 했다.

여성 노동단체는 직장 안 성희롱 사각지대를 해소하려고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을 촉구했고, 2021년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현재까지 계류 중이다.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스스로 쌈닭이 되길 자처한 여성 곁에는 여노회가 선다.

여성을 가로막는 유리 천장, 여전한 남성 중심 문화에 불복종을 선택한 여성들은 오늘도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함께할 여성 연대를 기다린다.   

 손민영 기자 smy@kihoilbo.co.kr

사진=<인천여노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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