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영 작가 친동생 이우진 작가.
이우영 작가 친동생 이우진 작가.

지난해 국내 콘텐츠산업 규모는 148조1천607억 원이다. 전년(137조5천80억 원)에 견줘 7.7% 늘었다. 방송(17.4%), 출판(16.7%), 광고(15.2%), 게임(14.3%, 21조1천847억 원) 비중이 가장 크지만 캐릭터(3.6%, 5조2천672억 원) 시장 규모도 만만치 않다.

애니메이션(0.5%, 7천882억 원)과 만화(1.6%, 2조3천414억 원)를 더하면 영화(2.8%, 4조813억 원) 시장에 버금간다.

게임·만화·캐릭터 시장 확대는 저작권 등록 증가로 이어졌다. 2021년 한 해 국내에 등록한 저작권은 모두 6만1천885건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31.5% 늘었다. 유형별로는 미술 저작물(2만4천247건)이 34.3%로 가장 많았는데, 캐릭터 등록이 활발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콘텐츠를 둘러싼 분쟁 증가 추세도 가파르다.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 조정을 요청한 건수는 2020년 1만7천202건으로 전년(6천638건)보다 2.5배가량 늘었다.

저작권 분쟁도 잇따랐다. 한국저작권위원회가 받은 저작물 분권 분쟁 조정 건수는 2017년 92건, 2018년 123건, 2019년 116건, 2020년 84건, 2021년 115건이다.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난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도 수년간 출판사와 저작권을 놓고 외로운 싸움을 벌였다.

용인예술과학대학교 웹툰만화과 홈페이지에 게시한 이우영 교수 모델의 학과 홍보 컷.
용인예술과학대학교 웹툰만화과 홈페이지에 게시한 이우영 교수 모델의 학과 홍보 컷.

# 1호 국민 만화작가

"존재 자체가 강점이고, 그런 분이 함께하는 자체가 영광이다." 이우영 작가에 대한 용인예술과학대학교 웹툰만화과 문이식 학과장 평이다. 이 작가는 2022년 신설한 용인예과대 웹툰만화과 교수로 활동했다.

문 학과장은 "이 교수는 우리나라 1호 국민 만화작가"라며 "국민만화가가 학생을 지도하는 일은 학생들한테도 학교에도 축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신설 학과에 수많은 지원자가 몰린 점을 이유로 들었다. 지난해 신설한 이 학과에는 모두 180명이 지원했다. 정원 대비 경쟁률은 3대 1이다. 3년제이고 신설 학과인데 이렇게 주목받은 경우는 전례가 없다고 문 학과장은 설명한다.

이 작가는 교단에서도 열정이 넘쳤다. 스스로 학과를 알리는 홍보 모델이 되기도 하고, 학생들이 프로(전문 만화가)로 데뷔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요구 사항을 일대일 맞춤형으로 지도했다. 다만, 다양성은 강조하되 가장 중요한 방향은 자신의 장점을 살려 학생 스스로 정하게 했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까닭이다.

이우영 작가를 추모하며 이우진 작가가 그린 팬아트.
이우영 작가를 추모하며 이우진 작가가 그린 팬아트.

웹툰만화 저변 확대에도 관심이 커 용인시 관련 조례 제정에도 힘을 실었다. 용인시의회 박은선(국힘·보정·죽전1·3·상현2)의원이 대표발의한 ‘용인시 만화·웹툰 진흥 조례안’은 지난 4월 시의회를 통과했다.

문 학과장은 "이 교수가 저작권 문제로 우리 곁을 떠난 사실은 작게는 우리 학과, 나아가선 우리나라 웹툰만화 분야 큰 손실"이라고 했다.

이어 "오는 8월 예정한 전시회를 1년여간 함께 준비하는가 하면 재직 중에도 분쟁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며 "지난해 말 출판사 쪽이 소송 대리 법무법인을 바꾸면서 수년간 이어온 싸움을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점이 큰 부담이 된 듯하다"고 했다.

용인예과대 웹툰만화과는 이 교수가 세상을 떠난 이틀 뒤인 3월 13일 홈페이지에 이 교수 명복을 비는 공지사항을 올렸다. 공지사항에는 "새롭게 시작하는 용인예과대 웹툰만화과에서 웹툰작가 꿈에 도전하세요. 저를 비롯한 모든 교수진이 최선을 다해 여러분과 함께하겠다"는 내용의 글과 함께 이 교수를 모델로 한 만화 컷을 올렸다.

문 학과장은 최근 고민이 하나 늘었다. 이 교수 아내가 전한 기부금 1천만 원 때문이다. 문 학과장은 "어려울 텐데 학과를 위해 써 달라며 1천만 원을 전했다"며 "학과에 도움이 되고, 이 교수도 잊히지 않도록 뜻깊게 쓰려고 하는데 어렵다"고 했다. 

5월 15일 연 ‘검정고무신 캐릭터 인질극 규탄 대회’에 전시한 추모 팬아트.
5월 15일 연 ‘검정고무신 캐릭터 인질극 규탄 대회’에 전시한 추모 팬아트.

# 동료이자 동생 그리고 절친

"아무 데나 앉아서 자기 할 일 할 줄 하는 사람." 동생 이우진 작가가 말한 형 이우영 작가 강점이다.

이우진 작가는 "무수히 많은 작가를 알지만 형처럼 아무 데서나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전철과 버스에서까지 일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했다.

이어 "마감 한 번 어긴 적이 없을 만큼 일에 굉장히 철저했다"며 "작품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작업할 때 집중을 잘 하는 스타일이고, 냉철한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평소 모습은 프로 만화가가 아니다. 이우진 작가는 "평소에는 누구한테도 피해 주지 않는, 길가에 담배꽁초 한번 버리지 않은 굉장히 선한 사람"이라며 "늘 한결같고 다른 사람 말도 많이 들어준다"고 했다.

두 작가는 단순히 형제를 넘어 동료이자 절친(절친한 친구)이었다. 이우진 작가는 형과 추억을 묻는 말에 "딱히 꼽기 어렵다"면서도 "모든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함께 캠핑한 일, 이우영 작가 집에 친구들과 놀러갔던 일, 밤새 술을 곁들이며 얘기한 일, 함께한 작업, 그 밖에 모두가 형제에겐 일상이자 추억이다.

만화가 꿈에 도전한 사람은 이우진 작가가 먼저였다. 이우진 작가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했고, 이를 본 이우영 작가가 흥미를 느껴 같이 그리기 시작했다. 이우영 작가는 6학년이었다. 당시 부모도 인기 월간지 소년중앙을 정기 구독하면 형제가 꿈을 키우도록 도왔다. 이때부터 형제는 함께 그림을 그리고 공유했다.

5월 15일 연 ‘검정고무신 캐릭터 인질극 규탄 대회’에 전시한 추모 팬아트.
5월 15일 연 ‘검정고무신 캐릭터 인질극 규탄 대회’에 전시한 추모 팬아트.

이우진 작가는 "누가 물어보면 ‘만화가가 꿈이에요’라고 말할 정도로 관심이 컸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화는 여러 사람이 작업해 만드는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혼자 작업하는 점이 장점이고, 내 마음대로 무언가를 창작해 좋다"며 "현실에서는 왕따를 당하더라도 만화에서는 이른바 ‘짱’이 돼 이들을 응징 가능하다"고 했다.

이우영 작가는 공주전문대(현 공주대) 만화학과 1학년 때인 1992년 도서출판 대원의 소년챔프 신인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만화가로서 본격 길을 걸었다. 이후 소년챔프에 ‘검정고무신’을 연재하며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다.

만화는 1960~1970년대 서울 마포를 배경으로 주인공 기철과 기영 형제의 가족, 친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그려냈다. 개성이 있으면서 정감 어린 그림체와 따뜻하고 긍정하는 내용에 큰 사랑을 받았다.

대중 인기에 힘입어 TV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가 하면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대표 성공 사례로 꼽혔다.

2006년 45권으로 완결했고 1995년 문화체육부 주관 만화문화상 신인상, 1999년 YWCA 우수만화 추천 작품, 2000년 문화관광부 주관 출판만화 영상만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검정고무신’은 형제가 함께 그렸다. 주인공 캐릭터 기영이는 형이, 강아지 땡구는 동생이 탄생시켰다.

이우진 작가는 "스토리작가 콘티를 보고 형과 여러 캐릭터 그림을 그린 뒤 함께 골랐다"며 "기영이 머리 형태를 보면 뾰족뾰족한 잔디머리를 형이 군대 간 사이 뭉툭하게 그렸더니 제대한 형이 더 뭉툭하게 변화를 줬다"고 했다.

또 "땡구는 애초 콘티에 없던 캐릭터지만 피너츠 찰리브라운 옆 스누피처럼 강아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판단에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우진 작가에게 형은 형제이자 동료, 절친으로 평생 동반자였다. 그런 형 이름 앞에 ‘고(故)’자가 붙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우영 작가는 3월 11일 강화도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우진 작가는 "형 이름 앞에 고자가 붙고 ‘OO했어’와 같은 과거형으로 말하는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며 "잠시 떨어진 심정"이라고 했다.

이어 "3월 9일 법정에 다녀온 뒤에도 별다른 심경 변화는 보이지 않았고, 우리 얘기를 잘 정리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알릴 사람을 찾아보자고 했다"고 전했다.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가 저작권 분쟁 중인 출판사를 규탄했다.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가 저작권 분쟁 중인 출판사를 규탄했다.

# 계약의 덫…빼앗긴 창작물

이우영·이우진 작가와 출판사 간 저작권 다툼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출판사 쪽에서 캐릭터 사업을 제안했고, 형제는 이를 받아들여 2007년 계약했다.

출판사는 이듬해에는 사업을 하는데 필요하다며 형제에게 기영이·기철이를 비롯한 9개 캐릭터 저작권 지분 28%와 글 작가 지분 8%를 무료로 받아갔고, 2011년 글을 쓴 이영일에게 2천만 원을 주고 글 작가 지분 17%를 추가로 양수해 지분 53%를 보유했다.

여러 가지 캐릭터 상품이 나왔지만 형제는 어떤 사업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우진 작가는 "400여 원, 700여 원과 같은 수익금이 통장에 들어오기도 했다"며 "이 정도로 사업이 안 되면 관둬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더욱이 "사업에 대한 원작자 몫이 3%인 사실도 최근 알았다"며 "그나마도 3%를 우리 형제와 글 작가, 출판사 대표가 나눴다"고 덧붙였다.

두 작가는 2018년께 출판사 쪽에 "작가들이 (계약에 대해) 전혀 모른 채 사업을 진행하는 상황은 옳지 않다"며 투명한 진행을 요구했다.

출판사 쪽은 이듬해 소송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렇게 두 작가와 출판사 간 소송은 시작했다.

이우진 작가는 "창작활동은 자유롭게 하라더니 형이 책을 내자 저작권 침해 소송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소송 전인 2018년 폐업한 부모님 체험학습 농장까지 같은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체험학습 온 초등생들에게 밥 먹을 때 보라고 ‘검정고무신’을 틀어 줬을 뿐"이라고 했다.

두 작가를 더 힘들게 한 부분은 출판사 쪽에서 ‘검정고무신’을 마음대로 그리지 못하게 한 점이다.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도 사업 계약 당시 두 작가가 작품활동을 하는데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에 출판사가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 끝나지 않은 전쟁

3월 20일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유족과 협의해 구성한 대책위에는 국내 만화·웹툰 관련 단체가 다수 합류했다.

참여 단체는 한국만화가협회, 한국웹툰작가협회, 우리만화연대, 한국원로만화협회, 한국여성만화가협회, 한국만화스토리작가협회, 대전만화연합, 대구경북만화인협동조합, 부산경남만화가연대, 전국여성노조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웹툰작가노조, 한국출판만화협회, 한국만화스토리작가협회, 한국카툰협회, 한국민족예술총연합, 참여연대, 문화연대,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문화예술노동연대 들이다. 김승수(국힘)·유정주(민주)·류호정(정의)국회의원도 함께했다.

이들은 대책위를 꾸린 뒤 3월 27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5월 11일엔 ‘검정고무신’ 비극을 막아 달라며 ‘웹툰 계약서 실태조사’ 국회 토론회를 열었다.

표준계약서 개정도 요구했다. 같은 달 15일에는 소송 당사자인 형설출판사 앞에서 ‘검정고무신 캐릭터 인질극 규탄대회’를 했다. 검정고무신 장례 집회 성격으로 드레스코드는 검정색 자유 복장이었다. 동료 작가들과 팬들이 그린 팬아트 70여 점을 전시하고, 직접 그린 작품을 태우는 위령제로 이우영 작가 넋을 기렸다.

대책위는 유가족 법률 지원뿐 아니라 8월 추모 전시회도 계획 중이다. 페이스북에 개설한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 추모관’에는 추모전에 사용할 동료 작품이 속속 올라온다.

규탄대회서 발언하는 모습.
규탄대회서 발언하는 모습.

대책위는 이우영·이우진 작가와 출판사가 맺은 계약이 불공정하다고 판단했다.

대책위 대변인인 법무법인 덕수 김성주 변호사는 "2007년께 (원작자들과 형설앤 간) 사업권 설정 계약서와 양도 각서를 작성했다"며 "‘검정고무신’ 저작물 관련 사업을 (형설앤 쪽이) 포괄·무제한·무기한으로 마음대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아 영구 사업권을 설정한 점, 사업 내용과 종류를 전혀 특정하지 않았고 원작자 동의 절차도 없다는 점, 사실상 포괄 권리를 양수하면서도 이에 따른 대가는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계약은 불공정하고 효력도 없다"고 대책위 생각을 알렸다.

또 15년간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을 비롯해 200여 개 사업을 벌이면서 작가 동의를 구하기는커녕 통지조차 제대로 하지도 않았다고 대책위는 판단한다고 전했다.

대책위는 이 기간 이우영 작가가 수령한 금액은 1천200만 원 수준에 불과한데다 어떤 명목으로 지급했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형설앤 대표가 ‘검정고무신’ 공동 저작자로 이름을 올린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형설앤 대표가 작가를 설득해 자신을 ‘검정고무신’ 주인공 격인 캐릭터 9개 공동 저작자로 등록했다"며 "캐릭터를 창작하지 않았기에 애초에 성립하지 않고, 저작인격권 침해이자 허위 등록"이라고 했다.

이우영 작가 생전인 지난해 1월 ‘검정고무신 충격 비하인드 TOP5’란 제목의 한 유튜브 채널에 단 덧글은 그간 그의 심정을 잘 설명한다.

이우영 작가는 "넷플릭스 검정고무신 극장판에 아쉬움이 많으시리라 생각한다. 애초에 극장용으로 만들 예정이 아닌 TV 시리즈에서 탈락한 에피소드를 짜깁기해서 만들어 그렇다"며 "심지어 원작자인 저에게 허락도 구하지 않고 만들었고, 얼마 되지 않는 원작료까지 지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현재 저는 캐릭터 대행한테 허락 없이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등장시킨 만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피소돼 4년째 소송을 진행 중"이라며 "원작자가 왜 캐릭터 대행회사 허락을 얻어 만화를 그려야 하는지, 왜 피고인 몸으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순리대로 잘 해결되리라 믿는다. 나중에 제대로 된 검정고무신 영상으로 찾아 뵙길 바란다"며 희망의 끈도 놓지 않았다.

이우진 작가는 "(이 싸움은) 출판사와 작가 간 싸움이 아니다"라며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부당하고 도와주시는 분이 많다. 모든 국민이 다 지켜보기에 힘이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래 그랬듯 정당한 원위치로 되돌아오고, 나중에 형한테 찾아가 ‘잘 됐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안경환 기자 jin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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