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시에 있는 철도박물관 전경. 야외전시장에 놓인 열차가 관람객 눈길을 끈다.
의왕시에 있는 철도박물관 전경. 야외전시장에 놓인 열차가 관람객 눈길을 끈다.

한반도에 기차가 처음 달리기 시작한 시기는 124년 전인 1899년 9월 18일이다.

경인철도(지금의 경인선) 인천~노량진 구간 33.8㎞에 미국에서 들여온 모가(MOGUL)라는 이름의 증기기관차를 목재 객차를 연결해 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자본과 기술이 부족해 철도부설권을 미국인 제임스 R. 모스에게 허가했는데, 그가 일본 경인철도인수조합에 팔아넘김으로써 국내 최초 철도가 일본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조선의 수도 한양 경성역과 인천역을 연결하도록 설계한 경인철도가 온전히 개통하지 못하고 경기도 시흥군에 속했던 노량진과 인천 구간만 부분 개통한 까닭은 이 사업의 가장 어려운 공사 구간이었던 한강 철도교 부설을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경인철도가 온전히 개통된 시기는 이듬해인 1900년 7월 8일이고, 이때 비로소 경성과 인천을 철도로 연결했다.

왕국에서 제국으로 전환을 선포한 고종은 수도 위상에 걸맞은 다양한 근대문명의 이기를 갖추려고 했다. 대표 격이 1899년 5월 개통한 서울 전차와 상수도, 가로등이었고 경인철도 건설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비록 철도는 외세가 놓았지만 건설 대가로 부여한 운영 기간이 끝나면 우리가 사들이도록 계약했다. 한데, 일제가 1910년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해당 계약은 무효가 되고 말았다.

움직이는 철도 디오라마.
움직이는 철도 디오라마.

# 철도박물관 탄생과 수난, 재탄생

이 땅에 철도박물관이 처음 생긴 날은 1935년 10월 1일이다. 총독부 철도국이 운영하던 철도는 1917년부터 1925년까지 8년간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가 위탁운영했다.

1935년은 조선총독부가 만철한테 철도 운영권을 돌려받은 지 10년이 되는 해였고, 그 기념사업의 하나로 용산에 철도박물관을 세웠다.

당시 용산은 철도 요람이었다. 철도인을 키워 내는 철도학교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철도도서관, 철도병원, 대규모 철도관사도 용산에 있었다. 철도차량을 만드는 경성공장도 용산에 있었고, 용산역은 물류 수송 중심으로서 경성역과 임무를 분담했다. 이런 기반시설 위에 총독부 철도국이 용산에 자리잡음으로써 용산은 한반도 철도산업의 메카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중국 본토를 침략하기 시작하고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킨 일제는 1945년 결국 패망의 길을 걷는다. 문을 연 지 10년 만에 광복을 맞은 철도박물관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만신창이가 되는데, 다른 철도 시설물과 함께 집중 폭격 대상이 됐다.

전쟁이 할퀴고 간 상흔이 아물고 경제개발이 성과를 거두면서 철도박물관 재건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타난 날이 1981년 10월 15일이었다. 박물관이라고 하지는 못하지만 용산 철도고등학교 실습장에 일정 공간을 마련해 ‘철도유물기념관’을 만들었다.

당시 25억 원이 넘는 큰 예산을 들여 박물관을 세우게 된 배경은 88서울올림픽 개최라는 우리 민족사에 크게 남을 대사건이었다.

# 철도박물관 현황

철도박물관은 의왕시 철도박물관로142(월암동 374의 1)에 자리잡았다. 1호선 전철을 타고 의왕역에 내려 2번출구로 나가면 역 광장인데,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철도박물관이 보인다.

시민들이 강병규 작가의 ‘커피로 그린 철도’ 기획전시를 관람한다.
시민들이 강병규 작가의 ‘커피로 그린 철도’ 기획전시를 관람한다.

1997년엔 옛 서울역 안에 철도박물관 서울역관을 개관해 서울시민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철도의 귀중한 유물을 보게끔 했다. 그런데 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서울역이 새 역사로 이전하면서 2003년 말 자연스럽게 서울역관은 부곡관과 통합 운영하게 됐다.

철도박물관 특징은 일반 박물관과 달리 야외 전시관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다양한 철도차량과 교량, 신호설비 같은 대형 전시물을 야외에 전시했기 때문이다. 전시 공간은 야외와 실내를 합해 약 2만8천㎡이고, 본관은 지하 1층·지상 2층이다.

철도박물관은 1988년 건립한 뒤 국립박물관으로서 철도청이 직접 운영했다. 그런데 1999년 작은 정부 구현과 경영 효율을 위해 민간위탁을 하라는 정부 지침이 내려왔다.

이에 따라 2001년부터 2016년 1월 말까지 만 15년 동안 민간에 위탁운영했다. 그런데 2015년 하반기가 되자 당시 최연혜 사장 지시로 직영을 검토했다. 2016년 1월 내부 공모로 직원을 선발하고 교육을 거쳐 2월부터 직영에 들어갔다.

위탁운영 시기에는 박물관 근무자가 모두 12∼13명이었는데, 환경미화원과 경비인력, 매점 근무자를 포함한 인원이다. 직영으로 전환한 뒤 정원은 관장 1명을 포함해 8명이었으나 현재는 7명으로 운영 중인데, 무인 경비 시스템을 갖췄다. 외부 용역 직원은 포함하지 않았다.

관람 시간은 날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11월부터 2월까지는 오후 5시)며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에도 개관하기 때문에 월요일과 공휴일 다음 날 휴관한다. 또 1월 1일, 추석과 설날 연휴 때도 문을 열지 않는다. 개관일은 연평균 300일 정도다.

코로나19 사태로 휴관이 길어지다가 지난해 4월부터 다시 문을 열었는데, 올해는 일평균 입장객이 500명을 넘어섰다. 연말까지 가면 600명 선을 회복할 전망이다. 평일 입장객은 100명에서 200명 사이고, 주말에는 그 10배인 1천500명 안팎의 관람객이 입장해 주중과 주말 차이가 극심하다.

규모에 견줘 운영 인력이 절대 부족한데도 박물관이 원활하게 기능을 유지하는 데에는 철도문화해설사 구실이 매우 크다. 철도문화해설사는 의왕시와 철도박물관이 공동 양성해 운영하는데, 일반 시민 말고 한국교통대학교 학생과 철도 퇴직자로 구성했다.

교육 이수자 100여 명 중에서 희망자를 위촉해 관람객 안내와 해설 같은 봉사활동에 참여하는데, 각 학교 진로 체험교육 수요가 많아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큰 분야다.

# 주요 전시물과 행사

철도박물관 소장 유물 1만2천여 점 가운데 야외 전시장에 대형 유물 41점을 전시했고, 그 중 33점이 차량 유물이다.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분야는 본관 1층 철도 모형 디오라마 운행인데, 평일에는 오전과 오후 각 1회, 주말과 공휴일엔 3회에서 4회 정도 운행한다.

해마다 어린이날 앞뒤로 이틀 동안 철도축제를 열고,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한국철도 어린이 기차 그리기 대회를 개최한다. 본관 2층 특별전시실에서는 다양한 기획전시를 마련하는데, 올해는 6월 말까지 강병규 작가 ‘커피로 그린 철도’ 특별전을 열었다.

철도박물관은 국가등록문화재 13건을 보유했다. 그 중 10건은 야외에 있는 차량이고, 3건은 본관에 전시했다.

어린이가 디젤기관차 운전 체험에 푹 빠졌다.
어린이가 디젤기관차 운전 체험에 푹 빠졌다.

# 철도박물관의 꿈

철도박물관을 운영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인력과 예산 부족이다. 어느 박물관이나 사정은 비슷하겠지만 철도산업 특성상 핵심 철제 유물을 야외에 전시하는데, 도장(塗裝)조차 제때 못한다. 

또 하나는 근본 기능 문제다. 박물관은 유물의 보존·전시라는 기본 기능 말고 교육과 학습 기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제대로 된 박물관일수록 체험시설을 잘 갖추고 전시유물에 대한 설명이 풍부하고 정확하다. 그런데 철도박물관에는 자료실 자체가 없고, 어떤 자료가 얼마나 있는지 관람객이나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알 만한 방법이 마땅치 않다.

철도박물관 위탁운영을 시작한 2001년 이후 철도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사양산업이라는 오명을 떨쳐내고 고속철도를 성공으로 개통했고, 세계에서 네 번째로 고속철도 기술 보유국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내부에선 국가기관인 철도청이 공사와 공단으로 나뉘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철도산업은 지구온난화 시대를 맞아 녹색환경을 선도하는 교통기관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데, 철도박물관은 아직도 2000년 이전 사양산업 시대에 머문다. 최첨단 교통기관으로서 면모는 찾아보기 힘들고 노동집약형 굴뚝 산업 모습을 보여 주는 셈이다.

철도박물관이 철도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 모습도 보여 주고,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서 비전도 제시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1935년에 처음 만든 철도박물관, 이곳 의왕에 다시 자리를 잡은 지 35년을 맞은 철도박물관이 철도인들에겐 자부심을, 이곳을 찾는 수많은 어린이들에겐 자랑스러운 철도 미래상을 심어 주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간절하게 바란다.

의왕=이창현 기자 kgprs@kihoilbo.co.kr

  사진=<배은선 철도박물관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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