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동두천여중 교장
강철 동두천여중 교장

동두천여자중학교 강철 교장은 1989년 9월 동두천여자중학교에 영어 교사로 부임한 뒤 35년째 교직생활을 이어간다. 교장이 된 뒤 3년 6개월 동안 모교인 동두천중학교에서 근무한 시간 말고는 대다수 교직생활을 동두천여중에서 했다.

1963년 동두천에서 태어나 동두천중학교와 의정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35년간 교단에 몸담은 강 교장을 만났다.

-간단하게 학교 소개를 해 달라.

▶동두천여중은 1970년 3월 12학급으로 개교해 54년간 지역 중등교육 한 축을 담당했다. 미래를 주도할 지성·감정·의지를 균형 있게 갖춘, 전 세계를 품은 다이아몬드 칼라인 육성을 목표로 한다.

지력·심력·체력·자기 관리력·인간 관계력이라는 5가지 요소가 골고루 발전하도록 훈련하는 5차원 전면 교육과 핵심 역량 교육을 전 교육과정에 적용해 올바른 인성과 실력을 갖춘 여성 지도자를 육성하려고 노력 중이다.

동두천여중 강철 교장이 졸업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동두천여중 강철 교장이 졸업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교편을 잡게 된 계기는.

▶군대 제대하고 첫 직장이 보험회사였는데 업무량이 많아 힘들었다.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귀가하는 생활을 반복하던 어느 날, 새벽 출근길 지하철에서 잠이 들었다 깼는데 앞에 여학생이 시집을 읽는 모습이 새벽 햇살과 어울려 정말 예쁘게 보였다.

문득 나도 교사 자격증이 있는데 저런 아이들에게 인생을 가르치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날 바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찾아보니 공교롭게도 3일 만에 동두천여중에 자리가 났다. 그 길로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니 천직이 됐다.

학생들과 재능나눔 벽화그리기 봉사.
학생들과 재능나눔 벽화그리기 봉사.

-첫 수업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면.

▶남중·남고를 다녀 여학교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첫 수업은 3학년 6개 반 중 튤립반이었는데 한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학생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교실 뒷벽과 칠판만 보고 수업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앞에 앉은 학생이 땀을 닦으라고 손수건을 줬던 기억이 난다.

-교육철학은.

▶첫 번째는 한 아이도 버림받지 않는 학교를 만드는 일이다. 

모든 아이들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학교에 와서도 행복해야 하고, 그러려면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는 참된 아이를 길러내는 일이다,

공부보다는 인성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에 인간성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교육한다.

앞으로는 AI 시대이기 때문에 지식 정보는 휴대전화 하나로도 얼마든지 얻는다. 따라서 그 안에 있는 무수한 정보가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능력을 키워 주는 일이 학교 임무다.

세 번째는 봉사 실천이다. 아이들에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꼭 가르치는 부분이 있는데, 자신의 재능으로 꿈을 이루면 혼자 소유하지 말고 배운 바를 나누며 봉사하라고 말한다.

RCY 동아리 식목행사에 참여한 학생들.
RCY 동아리 식목행사에 참여한 학생들.

-재직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처음 담임을 맡아 교실에 들어갔는데 아이들이 모두 뒤돌아 앉은 상태였다. 이전 담임 교사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빈자리를 내가 맡게 됐다. 교탁 위에 우리 선생님을 죽이고 온 사람이라는 편지가 여러 통 있어 깜짝 놀랐다.

이 때문에 먼저 담임을 맡았던 교사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청소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청바지 같은 간편한 복장으로 아이들과 항상 같이 행동하는 분이었다. 그런 모습이 권위주의를 무너뜨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같은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간다면 아이들도 마음의 문을 열 듯싶다는 생각에 양복을 벗고 아이들과 격의없이 어울리려고 노력했다.

그때 선배들에게 내복 입고 다니지 말라는 핀잔도 들었다. 혼자 했다면 힘들었을 텐데 마침 동료 선생님들이 함께해서 힘이 됐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반 학기 동안 아이들이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다음 학년에 그 반 그대로 담임을 맡게 됐다. 반장을 맡은 아이가 담임으로 인정 못하겠다며 3일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이를 설득하지 못하면 한 해가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에 집으로 찾아갔다. 며칠 동안 아이를 설득해 학교에 나오게 했다. 

당시 담임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굉장히 많이 고민하고 연구했다. 나의 조회·종례보다 옆 반 또는 다른 선생님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배우려 노력했다. 서점에 가서 교육학 서적보다 교단 일기를 비롯한 선생님들의 교단 생활 경험을 저술한 책을 읽고 참고하기도 했다.

그때 돌아가신 선생님을 본받으려고 노력했던 점이 35년간 교사생활을 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한다.

학생들과 재능나눔 벽화그리기 봉사.
학생들과 재능나눔 벽화그리기 봉사.

-교장으로서 남은 기간 이루고 싶은 일은.

▶퇴직까지 2년 남았다. 코로나19 탓에 동두천여중이 지닌 특유의 색이 옅어졌다. 올해는 코로나19 이전에 진행한 모든 프로그램을 원상 회복할 생각이다.

또 10년 동안 학교 이전 문제로 시설 개선을 하지 못했다. 더구나 동아리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싶은데 시설이 많이 부족하다. 동아리 학생들이 방과 후 안전하게 이용하고, 원하면 언제든지 버스킹 공연이나 작품 전시를 하도록 동아리방 10여 개를 갖춘 ‘행복관’을 마련하고 싶다.

학생들과 함께한 학생자치회 활동.
학생들과 함께한 학생자치회 활동.

-못다 한 얘기가 있다면.

▶학부모들이 동두천 교육에 믿음을 가졌으면 한다.

동두천에 사는 대다수 학부모가 이 지역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자신들이 30∼40년 전 다니던 학교가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라고 왜곡된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지역에서 학교를 나오면 좋은 대학을 못 간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동두천에 있는 6개 고등학교는 전국 평균 대학 진학률과 같거나 높다.

동두천 교육이 바뀌었다. 사립학교가 많기 때문에 자기 학교라는 믿음이 더 강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동두천=유정훈 기자 nkyoo@kihoilbo.co.kr

사진= <동두천여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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