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규 수원 효동초 교장
이철규 수원 효동초 교장

"어릴 때는 꿈이 없었어요. 살기가 워낙 힘드니까. 언젠가 한번은 어머니가 같이 죽자고 그러더군요. 난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힘들었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죠."

당시 이철규 수원 효동초등학교 교장의 나이는 9세로, 가장 큰 위기가 집안에 닥쳤다. 아버지 사업이 한순간에 망해 버렸고, 갑작스레 병으로 돌아가셨다. 어린 소년이 받아들이기에는 버거웠다.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어머니 곁엔 어린 이 교장만 남았다.

그는 한마디로 풍비박산이라고 했다. 집안 형편대로 내야 했던 육성회비조차 내기 어려웠다. 중학교 때까지 외국 후원자 도움으로 생계를 이어갔고, 고등학교는 충북도 우수성적 장학금으로 마쳤다.

"그래서 교대에 갔어요. (학비를) 전액 지원했거든요. 그때 생각했어요. 내가 가장 어려울 때 받은 도움을 나도 누군가에게 나눠 주는 사람이고 싶다는 제 마음과 일치했죠. 그렇게 선생님이란 이름으로 35년이 흘렀네요."

이 교장은 책이 읽고 싶어 이웃집 다락방에서 몰래 보곤 했다. 가난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이 오히려 자립심을 키우는 동력이 됐다는 그는 현재 고등학생인 딸에게도 강조한단다.

지금도 책 읽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 교장은 「세상에는 정말 소중한 것들만 있어서 풀 한 포기만 보아도 저절로 눈물이 납니다」(2020), 「미래형 학급 경영과 훈육:행복한 학급 만들기」(2021) 2권을 출간하고 현재 동서양 양자교육과 학습 방법을 담은 책 「퀀텀페다고지」 출간을 앞뒀다.

효동초등학교 이철규 교장이 수원특례시 영통구 효동초등학교에서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효동초등학교 이철규 교장이 수원특례시 영통구 효동초등학교에서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 유별난 선생님의 아이들 사랑법 

이 교장은 첫 발령지로 강원도 태백 광산촌을 택했다. 평소 소외된 산간벽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서다.

학급 아이들은 장산탄광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둔 자녀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들은 3교대 근무를 하는 바쁘고 힘든 노동자였다.

당시 미혼이었던 이 교장은 거리낌이 없었다. 광산에서 일하는 젊은 인부와 하숙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친밀하게 지냈고, 기독교연합회 청년회 봉사활동과 지역사회 행사에도 적극 참여했다.

활달한 성격과 구김살 없이 어울리는 청년 이철규는 학부모들에게 이웃이자 아이들 선생님이었다. 산간지역 주민들과 아이들에게 부족한 문화 혜택을 주려고 인근 군악대와 연계해 음악회를 열었다. 그는 태백에서 작은 음악회를 여는 선생님으로 이름이 났다.

"강원도 태백 광산촌 아이들이나 서울 도심에 사는 아이들이나 모두 똑같아요. 아이는 아이들일 뿐이죠. 교육은 어느 지역이든 선생님으로서 사명을 갖고 임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서울여대 부설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당시 학급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예매했다며 영화관 앞에서 모이자고 했다. 영화는 에이즈에 걸린 소년이 치료약을 구하려고 옆집에 살던 친구와 길을 떠나는 여정과 우정을 담은 ‘굿바이 마이 프렌드’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펑펑 운 당시 학급 반장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단다.

또 방학 첫날 학생들과 당일치기로 기차를 타고 가평으로 가 하루 종일 부대끼며 고구마를 캐고 놀다 왔다고 한다. 신나는 하루를 보낸 뒤 돌아온 청량리역에 까만 승용차로 줄을 세웠다며 웃는다.

도덕·창의·자주·건강인을 목표로 내세운 효동초 교육 비전.
도덕·창의·자주·건강인을 목표로 내세운 효동초 교육 비전.

# 창의발명교육가 참스승이 되기까지

수원 효동초는 2023년 디지털 시민역량교육 실천학교다. 전교생과 교직원, 학부모를 대상으로 뇌파 검사, 학부모 특강, 메타버스 플랫폼 워크숍을 진행한다.

"메타버스, 알파세대잖아요. 단말기, 와이파이 사양을 비롯해 학교 안 플랫폼 적용 환경을 구축하고 그에 맞는 교육과정 개발이 필요하죠."

그는 1988년부터 35년 동안 대한민국 교육현장에서 창의발명교육가로 활동했다. 30여 년간 이어진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에 초등학생을 출전시켜 입상하게 함으로써 글로벌 인재로 양성했다.

그가 교장으로 있는 수원 효동초도 지난 5월 6학년 학생 6명이 ‘효동스팀’을 꾸려 미국 캔자스시티에서 연 대회에 출전해 세계 각국 팀과 프로젝트 수행과제로 선의의 경쟁을 펼쳐 특별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는 부존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 미래는 창의발명이 재원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아무리 유능한 강사가 검증된 교수·학습법으로 최첨단 교구를 활용해 가르친다고 해도 배우는 학생과 교감 관계가 없다면 효과도 없고 외려 거부감만 쌓인다고 생각한다. 

2005년 3월 수원에 처음 부임해 담임을 맡은 3학년 3반 한 학생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증후군)였다. "쟤는 1·2학년 때도 그랬다"며 반 친구들이나 주변 교사들도 모두 포기한 채 낙인 찍은 그 아이를 그는 묵묵히 지켜봤다.

‘원인이 무엇일까?’ 그 학생 생각에 골몰하다 뇌과학을 접했다. 젖먹이 때 아이를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 대신 할머니 손에 자란 아이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어느 날 학교에 일찍 온 아이는 선생님의 노트북 세팅을 도왔다. 그 모습에 그는 아이에게 수업 준비를 맡겼다. 아이가 스스로 학급 일에 참여하도록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아이는 차츰 달라졌다.

이후 그는 10년간 계속한 연구와 탐구로 뇌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제안한 홍익학습법은 그렇게 탄생했다. 어떤 학습모형을 적용하든 평소 또는 수업 전 교감 활동이나 명상처럼 먼저 홍익인간(교육기본법 제2조) 이념을 공유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수원 영화초 재직 시절 만났던 6학년 학생은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 경험을 바탕으로 고등학교 유학을 결심했고, 이후 미국미네소타주립대학 시절 만난 미국인과 지난해 8월 결혼했다. 결혼식에서 주례를 본 그는 미국인 신랑에게 "넌 봉 잡았어, 임마!"라는 뜻으로 "You are a lucky guy!’라고 말해 결혼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해마다 스승의날이면 제자들이 그를 찾거나 연락한다. 벤처기업가로, 1인 창업가로 성공한 제자들은 스승이 있는 학교를 찾아와 무료 강연을 하며 그의 가르침처럼 나눔과 배려를 전한다.

그는 평소 기부활동에도 많이 참여한다. 그동안 각종 대회에서 받은 상금과 책 수익금 모두 기부했다. 교직생활 35년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인 그는 현재 전세살이를 한다.

이 교장은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41세 때 소개팅으로 만난 아내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단다. 모아 놓은 돈도 없고, 버는 돈 대부분을 기부하고, 각종 봉사활동에다 교육 개발에 애쓰는 별난 사람이라고 말이다.

이 교장은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노인들이 다니는 야학에 100만 원을 기부했다. 이 말고도 어린이재단, 굿네이버스에 정기 후원을 한다.

등굣길 지도 모습.
등굣길 지도 모습.

# 도전·실패·도전 ‘실패는 나의 자산’

"젊은 선생님들에게 자꾸 도전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선생님은 특정 분야에 관심 있는 아이들을 모아 잠재력을 키워 주죠. 선택은 아이들이 하고요. 우선 선생님부터 다양한 경험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망해 봤잖아요.(웃음)"

그는 1997년 돌연 정치·경제 전문지인 내일신문 지역사회부 기자로 취직했다. 국가 중심 시스템에 갇힌 현 교육문제를 교육환경 바깥에서 들춰 내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시작한 기자생활 3년 동안 재판까지 받는 처지가 됐고, 6차례에 걸친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직접 스스로를 변호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민형사 소송까지 당하니 무서울 일이 없더라는 그는 다행히 형사소송에서 합의가 이뤄져 교직에 복귀했단다. 판사 앞에 서니 세상이 달리 보이더란다.

또 직접 공연예술기획사를 차려 신춘음악회, 청정축제를 비롯한 다수 행사를 기획했다.

"잘 안 됐죠. 주변에서 하필이면 IMF 금융위기 시기에 교사를 그만둔다고 정신 나갔다고 하더군요. 그 무렵 뮤직카페도 했어요. 열정이 대단했죠. 하고 싶은 일 다 했어요. 후회는 없어요."

그는 실패도 자산이라고 말한다. "사업자등록증 2개, 폐업자신고증 2개가 있는데 특별강연에서 실패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요. 나의 자산이라고. 그리고 2000년 다시 임용고시를 봤을 때 교직이 가장 적임이라는 사실을 알았죠. 미래 인재들과 함께하며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인영 기자 liy@kihoilbo.co.kr

사진= 전광현 기자 jkh16@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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