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동안 한 분야에서 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큰 자부심입니다. 간호사는 누구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간호사분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계신다고 꼭 말해 주고 싶습니다."

35년간 간호사로 근무한 가천대학교 간호대학 김혜정 교수의 말이다.

김 교수는 생과 죽음을 오가는 치열한 병원 현장에서 35년을 묵묵히 버틴 간호사다.

누구나 그렇듯 서툴고 두려웠던 시작부터 뿌리 깊고 단단한 간호사가 되기까지, 김 교수는 청춘을 모두 바친 간호사 생활을 저서 「나는 35년 차 간호사입니다」에 고스란히 담았다.

김 교수는 가톨릭 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여의도성모병원에 입사했고,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서울성모병원으로 전보 발령된 뒤 2021년 8월 퇴직할 때까지 34년 3개월간 근무한 35년 차 간호사다.

김 교수가 경험하고 느낀, 그리고 생각하는 간호사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김혜정 간호사/교수.
김혜정 간호사/교수.

# 간호사란?

간호사는 ‘법정자격을 가지고 의사 진료를 도우며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을 뜻한다. 35년간 병원 현장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김 교수가 정의하는 간호사는 무엇일까? 그는 간호사가 ‘봉사자’와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간호사는 기본으로 이타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간호사는 의사 처방이나 규정된 간호기술에 따른 치료와 함께 환자와 가족에게 치료와 질병 예방에 대해 설명하는 업무를 맡는다. 날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다. 그렇기에 간호 실무 지식과 이를 임상에 적용하는 통합 사고능력도 중요하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은 필요충분조건이다.

간호사는 기본 3교대 근무를 한다. 3교대 근무란 교대제 근무 중 한 형태로, 1일 8시간씩 근무자를 3명으로 나눠 24시간 계속해서 일하는 근무 형태다. 간호사는 교대 근무로 근무시간이 불규칙하기에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김 교수는 3교대 근무에 적응하려면 건강한 몸과 마음 말고도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통 체력으로는 궂은 일과 불규칙한 근무 형태에 적응하기 어려워서다.

간호사를 지망하는 대다수 학생들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려는 마음으로 간호사를 준비한다. 새내기 간호사 면허자는 해마다 2만여 명씩 탄생한다.

매해 결코 적지 않은 인력을 배출하는데도 간호인력 부족 사태가 발생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여러 가지 중에서 가장 큰 이유로 열악한 노동 조건을 꼽았다.

그는 "쉽지 않은 공부 과정을 거치고 어려운 취업 과정을 거쳤는데, 일하는 환경도 열악해 그만두는 새내기 간호사가 많다. 통계상으로도 그렇고 실제로도 많이 봤다"며 "쉽지 않은 환경을 이겨 내려면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혜정 교수의 저서  「나는 35년차 간호사입니다」.
김혜정 교수의 저서 「나는 35년차 간호사입니다」.

# 간호사가 된 까닭

35년 동안 변함없이 간호사로 근무했던 김 교수는 처음부터 간호사가 꿈이었을까? 

김 교수는 공상이나 상상, 책 읽기를 좋아하는 모범생이었다. 생물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 권유로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간호학과에 진학한 뒤 고등학생 때 해 보지 못한 경험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학과 공부보다도 연극부 같은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김 교수는 동아리 활동이 생각보다 고된 편이어서 고생했단다. 이 경험들이 훗날 병원에서 힘든 생활을 버티는 데 도움을 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김 교수는 성적 부진으로 3·4학년 때 고생했다. 어떤 직군이든 그렇지만 간호사에게도 성적은 중요하다. 김 교수는 성적이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니 성적 관리에 힘쓰라고 늘 학생들에게 당부한다. 물론 요즘 학생들은 성적 관리에 진심이기에 걱정은 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 업무 중 인상 깊었던 일

김 교수가 쓴 책 「나는 35년 차 간호사입니다」를 읽으면 다양한 병원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겹겹이 쌓인 35년 시간만큼이나 많은 에피소드를 가진 김 교수는 많은 환자를 만났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골수염을 앓았던 여성 환자라고 회상했다.

김 교수는 "골수염 환자분이 계셨는데, 늘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타셔서 두 발로 걷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 환자분이 회복하고 두 발로 걷는 모습을 마주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처음에는 그 환자분인지 알아보지도 못했는데, 자세히 보니 골수염을 앓았던 환자분이어서 정말 반가웠다"고 웃음을 머금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장면을 보는 경우가 더 많다며 말을 이었다.

김 교수는 "수간호사 시절 만났던 40대 간암 말기 여성 환자도 기억에 많이 남는데, 죽음을 예감하고 혼자 남을 어린 딸들에게 음성 편지를 남기는 모습을 봤다"며 "딸이 처음 생리를 하게 되면 해 주고 싶은 말, 결혼할 때 해 주고 싶은 말, 아기 낳기 전에 해 주고 싶은 말이라고 했고, 그 이후로 그 환자를 보진 못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기억을 소환했다.

김 교수는 이처럼 병마와 싸워 지치고 힘든 순간에도 노력하는 환자를 보면 존경심을 느끼기도 한단다.

# 나는 35년 차 간호사입니다

김 교수는 서울성모병원에서 수간호사, 팀장인 관리자로 근무할 때 기록을 남기고 정리하는 행동이 습관이 됐다고 한다. 그리고 남은 흔적들을 보며 35년을 기록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지난 35년을 정리하려는 취지였지만, 완성하고 보니 새내기 간호사와 만나는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탄생했다고 자평했다. 병원 현장에서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낸 선배이기에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많아 그리 됐단다.

간호사는 쉽지 않은 직업임이 틀림없다. 어려운 직업이기에 앞서 걸었던 길을 알려 주고 싶었던 김 교수는 후배들에게 응원을 가득 전했다.

그는 "35년간 간호사로 근무해 보니 돈을 벌면서도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점이 참 의미가 깊다고 생각했다"며 "간호사는 누구나 쉽게 하는 일이 아니다. 힘든 일이지만 쉽게 포기하지 말고 오래오래 일하길 바란다"고 했다.

한 가지 일을 35년간 꾸준하게 해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김 교수는 이 긴 시간을 버틴 가장 큰 동력으로 ‘마음가짐’을 꼽았다.

날마다 힘들었지만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둬"라고 하는 남편 위로가 그녀에게는 큰 힘이 됐다. 또 동시에 "이까짓 일로 그만두면 안 되지" 하는 자극이 35년이라는 긴 세월을 버티는 원동력이 됐다고 김 교수는 회상한다.

병원 앞에서 동료와 함께 사진을 찍은 김혜정 교수.
병원 앞에서 동료와 함께 사진을 찍은 김혜정 교수.

# 새내기 간호사 질문

막 임상에 나와 두렵고 떨리는 출발선에 선 새내기 간호사들은 35년 차 간호사 김 교수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싶을까? 무엇이 가장 궁금하고, 어떤 비법을 전수받고 싶을까? 새내기 간호사들에게 받은 질문을 김 교수에게 전달했다.

"입사 전 다져야 할 마음가짐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김 교수는 "간호사는 육체와 정신이 편하고 쉬운 직업이 아니라서 의미 깊은 일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또 병원 생활에서 꼭 지켜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간호하면서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는데, 너무 원론 수준이지만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사람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임상을 떠난다면 어떤 길로 가면 좋겠느냐는 물음에는 굉장히 많다고 답했다. 김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간호학과 교수), 보건교사, 지역사회(보건소) 보건관리자, 지역사회 방문간호 관련 업무, 의료기구회사 간호직, 승무원, 기업체 보건실 근무와 같이 매우 다양하다"며 "간호학을 배우면 쓸 곳이 참 많으니 우선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경력을 쌓고 다음을 준비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이 밖에도 김 교수는 새내기 간호사가 임상에 잘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숙련된 간호사가 되려면 누구에게나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며 "그 누구도 처음부터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데, 조급하지 말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선배들이 이끄는 방향을 잘 따라가면 된다"고 격려했다.  

윤은혜 인턴기자 yeh@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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