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염으로 5일째 음식을 먹지 못한 채 출근하던 길이었다.

바로 전날 탈수 증상이 심해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제안 받았지만, 불과 일주일 전에 길게 쉬고 난 뒤라 또 쉬겠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주사와 수액만 맞고 병원을 나섰다. 일단 출근하면서 경과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

버스에 올라 내부를 둘러보는데 사람이 제법 많았다. 앉을 자리는 없었다. 손잡이를 잡고 서니 어지럽고 숨이 조금 가빴다. 원래도 미주신경성 실신과 기립저혈압을 앓는 기자로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쓰러질 뻔하거나 실제 쓰러진 경험이 이미 두어 번 있던 터라 차츰 걱정스러웠다.

그때였다. 앞에 앉은 사람이 내릴 준비를 하며 일어났다. 행운이었다. 기자는 자리에 앉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지럼증은 가시지 않았지만 앉으면 적어도 의식을 잃을 일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두 정거장을 갔을까. 한 할머니가 타더니 기자 바로 앞 좌석에 붙어 섰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그가 검지손가락으로 창에 붙은 교통약자석 표지를 찍으며 말했다. "나, 다리가 아파서…." 일어나라는 뜻이었다.

평소 같으면 그런 말을 듣기도 전에 자리를 양보했겠지만 그날은 정말 일어나기가 싫었다. 하나 이 노인도 오죽하면 비켜 달라고 했을까. 기자 사정만 사정이 아니니 가방을 안아 들고 일어나려는데 뒷좌석에 앉은 남자가 더 빨랐다. "여기 앉으세요." 노인은 남자가 일어난 자리로 갔다. 기자는 엉거주춤 다시 엉덩이를 붙였다.

문제는 그 뒤였다. 뒤통수가 따가웠다. "싸가지. 싸가지. 싸가지." 노인 목소리였다. 허공에 혼자 뱉는 말이었지만 어디로 향하는지는 명확했다. 다른 승객들 시선도 느껴졌다. 버스 안엔 아직 선 노인이 제법 있었다. 그 사이 계속 버티고 앉은 기자가 버릇없어 보였을까. 그러나 앉은 승객 중에 노인이 아닌 사람은 기자만이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 교통약자석은 언제부터 노인석이 됐나?

기자는 지난해 등단한 신춘문예 당선 소감에 허리 통증과 안구건조증, 수족냉증, 역류성식도염 따위 여러 병리 증상을 나열한 문장을 썼다. 병리를 다룬 평론으로 당선됐기에 일부러 넣은 구절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당선 소감을 읽은 한 친척 어른이 물었다. "우리 소예가 제일 아프고 고생했지? 나보다 힘들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자 어른은 "그래야지. 안 그렇다고 할까 봐"라며 웃었다. 그 짧은 질문에 담긴 악의를 오래 곱씹었다.

젊은 사람은 힘들다고 말하면 안 되는가. 떡 나누듯 아플 자격을 두고 경쟁하게 만든 사회도 문제지만, 그에 순응해 자기 아픔을 증명하려고 다른 사람 아픔을 깎아내리는 사람도 문제가 아닐까. 누가 가장 아픈지 대결하기보다 누가 어떻게 아픈지를 궁금해 하는 내일이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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