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홍옥 인천북부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
안홍옥 인천북부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

학교폭력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학부모들에게 도움이 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4년 동안 학폭 상담과 심의위원을 하면서 몇 가지 느낀 점들을 말씀드리고 싶다. 

학폭 피해 신고를 하는 학부모님들이나 가해를 했다고 신고 당하는 학부모님들은 자녀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고, 든든한 방패가 되지 못하는 ‘무능한 부모’가 되지 않고자 과잉 반응하며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담임이나 학폭 전담 교사의 중재로 순조롭게 마무리될 사안도 학부모가 편파적이라고 항의해 심의위로 보내지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학폭 담당 교사가 업무를 기피하는 사태가 오고, 심지어 심의위원회장에서 담당 장학사에 위협적으로 항의하는 경우도 있어 자체 방호를 강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녀가 주장하는 내용과 상대가 주장하는 내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난 뒤 대처해야 하는데, 자녀 말만 듣고 상대를 무조건 나쁜 학생이라고 단정하고 접근하는 바람에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학생이 오히려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성 사안에서 자녀는 성에 대해 아직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마트폰이라는 가공할 문명의 이기가 그렇게 순한 자녀가 되도록 놔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언어폭력이나 신체폭력 사안도 상대 학생한테 당한 피해에만 매몰돼 원인은 생각지 않은 채 신고했는데, 조사 결과를 보니 자녀가 먼저 언어폭력을 행사하고 여러 친구들한테 상당 기간 나쁜 습관으로 행동했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공부는 잘하지만 소통능력이나 공감능력, 친구들과 좋은 관계 형성과는 거리가 먼 자녀의 중요한 허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학부모가 많다. 또 늦게나마 알았어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수용하지 않는 부모들이 많아 안타깝다. 평소 자녀의 휴대전화 검열만 철저히 해도 그런 면을 발견할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싶다. 자녀가 가해 또는 피해자로 학폭에 연루됐다 해도 피해가 아주 크거나 중요한 사안이 아니면 지나치게 과민 반응하기보다는 냉정히 사태를 파악해 전화위복 계기로 삼는 게 좋겠다. 나는 현재의 학폭법과 시행령이 아주 잘 운영된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수많은 전문가들이 고심해서 만든 합리적 제도라고 본다. 전문가와 학부모들이 참여해 다수결로 결정하는 심의위원회 제도나 3호 이하 낮은 처분은 학생 생활기록부 기록을 유보하는 제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학폭 기록이 자동 삭제되거나 심의를 거쳐 삭제하는 제도, 모든 사안을 시작부터 비밀 유지를 의무로 한 점, 변호사 선임으로 조력을 받도록 하고 심의위원회 심의 시 마지막 의견만 듣되 개별 발언권을 주지 않는 점 등. 형사법과 달리 범죄 구성 요건만을 따지지 않고 사안 발생 경위, 과정, 결과, 교육 효과를 종합 판단해 각자 의견을 내고 토론한 뒤 마지막에 다수결로 결정하기 때문에 어떠한 외부 압력이나 청탁 같은 부정은 개입될 수 없어 공정성과 적정성 면에서는 탁월한 제도다. 만약 변호사 개입을 현행 사법 제도와 같은 수준으로 허용한다면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테다. 그런데 변호사 개입에 심의위원회 심의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 두고 싶다. 인류 역사상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각자가 가진 탐욕과 이기심은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또 그 욕심 때문에 과학은 더 발전하고 인간의 갈등은 멈추지 않을 테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동물은 95% 완성돼서 태어나지만, 인간은 5%로 태어나 평생 동안 교육으로 완성된다. 인간은 엄마가 먹여 주지 않으면 죽고, 교육시키지 않으면 동물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된다. 또 사회적 동물이라서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학폭은 그 중 작은 일부다. 잘못했거나 다소 아쉽고 억울한 면이 있어도 적정선에서 양보하고 용서·화해하지 않고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키려 하거나 공개 망신을 주려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자녀는 더 나쁜 인성의 소유자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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