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예부터 "효자(효녀)는 부모가 만든다"는 말이 있다. 효자라 한들 그가 완벽한 사람일까? 누구든 인간인 이상 결코 완전하지 못하다. 그만큼 누구나 작은 허물들이 모여 하나의 인격체를 구성한다. 정치적으로 충신이라 불리던 사람들도 그랬고, 인간적으로 효자라 불리던 사람들도 그랬다. 그럼에도 이들을 충신과 효자로 만든 건 본인이 아니라 타자, 즉 임금과 부모다. 왜냐면 임금이나 부모가 신하나 자식의 허물을 덮어 주고 작은 공이라도 널리 알리면 이는 그 사람의 명예를 높이고 품격 있는 사람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충심과 효심은 바로 이렇게 해서 원숙해진다.

과거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다. ‘군사부일체’라 해 가르치는 사람을 존중하고 그를 위대한 인격체로 대접했다. 만약 제자 중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교사를 무시하고 인격적인 대접을 하지 않았다면 그가 스승이라 불렸을까?

공자와 소크라테스가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 된 것도 결국 그를 추앙하는 제자들이 만들었다.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 인간적 향기를 ‘인향만리(人香萬里)’처럼 널리 파급시킨 결과다.

오늘날 교단을 지키는 교사들은 학력(學力)이 널리 공인된 인재들이다. 매년 고교생의 최상위권 5% 이내에 드는 학생들이 교직을 선택하고 대학 졸업 후 그 어렵다는 ‘교원임용고사’를 통과한 소수 인재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오랫동안 고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와 학년부장을 역임할 때 학급이나 학교에서 최고 성적 우수자가 교대나 교육계열을 선택했음을 기억한다. 심지어 S대를 합격하고도 교대로 최종 선택을 했던 경우도 다수 있었다. 또 S대 지원권에 들어도 처음부터 교대를 선택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높은 학력과 학교생활에서 모범생이란 평가를 뒤로하면 인간관계나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다소 이기적인 인성이 그것이었다. 책상머리에 앉아 책과 씨름하느라 교우관계나 봉사정신, 타인과 공감능력에서 아쉬운 면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 줄 세우기에 익숙한 우리 교육제도에선 어찌 보면 불가피한 측면이다. 생존 경쟁으로 인해 인성은 부지불식간 습관이 되고, 이는 학교교육의 병폐를 낳은 주범이다.

바야흐로 2023년 1학기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이즈음 학교에 따라서는 새로운 난제에 봉착한다. 교사들의 휴직과 장기간 병가 신청으로 담임교사 교체와 교과교사를 신규 채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학기 중 담임교사 교체는 당사자인 교사와 학생들이 원치 않는 최악의 상황이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대표적으로 원인을 제공한 학생을 생활지도하다가 발생한 교사의 작은 말실수나 지도 방식 흠을 빌미로 학부모의 갑질과 비난, 부당한 민원 제기, 악성 교권침해에 따른 것이 크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서울 모 초등학교 2년 차 교사가 악성 민원으로 교실에서 극단 선택을 했다. 이런 비극의 초기에는 근근이 버텨 내지만 지속되는 불안과 고통이 신체·정서 질환으로 이어지고, 끝내 최악의 상태로 마감한다. 결국 학부모가 교사를 교직에서 밀어내거나 죽음으로 내모는 꼴이다.

안타깝게도 너무도 인간적인 교사가 남긴 작은 실수나 흠결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부모의 지나친 대응, 심지어는 인간적 모멸이 남긴 결과는 재앙일 뿐이다. 다시금 우리 사회에는 교사를 스승으로 대접하는 교육풍토가 절실하다. 작은 흠은 덮어 주고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교사의 회복력을 믿고 그들에게 믿음을 발휘한다면 전화위복이 돼 기대 이상의 교육성과를 얻게 된다. 갈수록 지나친 ‘투 머치 러브(Too Much Love)’의 자식 사랑은 조바심과 성급함, 이기심으로 이 땅의 많은 우수한 교사를 교단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진정으로 교사를 대접해 스승으로 거듭나게 하는 국민 의식과 행동이 절실한 때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