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받은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행복한 삶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이다. 어찌 보면 간단히 대답하면 될 질문이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아 "어렵다"며 말끝을 흐렸다.

답을 찾으려고 며칠을 고민하다 문득 몇 해 전 우연히 손에 닿은 산문집이 떠올랐다. 면지에는 작가가 손 글씨로 ‘당신과 나의 모든 일이 다행히 지나가길 바라며’라고 적었다.

얼굴도 모르는 독자의 다행을 바라는 글에 다음 장이 궁금했다. 작가는 불행에 어울리는 반대말을 ‘다행’이라고 표현했다. 불행 반대말은 행복이라고 여겼는데, 다행이라는 개념이 툭 던져진 셈이다. 주변에서 불행을 피한 이야기를 들으면 "다행"이라고 한다. 평소 내뱉는 말에 비춰 보면 불행 반대는 다행이라는 작가 글에 수긍한다.

안타까운 소식이 끊임없는 7월이다. 장마가 시작하기 전부터 역대급 장마라고 떠들었지만, 폭우로 임시 제방이 무너져 인근 지하차도가 잠겨 14명이 숨졌다. 수해 실종자를 찾으려던 스무 살 해병대원은 장갑차도 못 버틴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주춤하던 비가 다시 내리던 날 2년 차 초등학교 교사가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추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추모가 이어진다. 장소, 사람, 사건 형태는 다르지만 안일함과 부족한 대처가 부른 사고라는 점은 같다. 큰 탈이 없었다면 무사안일한 태도로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지나갔을 터다. 세간 이목을 끌자 새로운 대책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모인다. 역시나 해묵은 문제가 떠오르며 네 탓 공방도 이어진다.

문제를 알아도 큰 탈이 없다면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대책을 강구했다면 막아낼 인재였다. 하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괜한 트집으로 여기고 안주했다. 누군가 희생으로 관심이 집중되면 원인 규명과 책임자를 처벌하는 현상을 반복한다. 누구나 희생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높다.

연이은 소식에 기자는 행복한 삶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행으로 하루, 또 하루를 채워 가는 삶’이라고 답하려고 한다. 사람이 죽은 뒤 처방전을 만든다는 사후약방문 같은 처리가 줄길 바란다. 안일, 부주의, 안전불감증 탓에 일어나는 인재가 제발 마지막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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