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상관없이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닌 진화의 산물임을 안다. 이 이론을 정교하게 입증한 과학자가 찰스 다윈이다. 1809년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다윈은 의사인 아버지의 권유로 에든버러대학 의학과에 입학하지만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해 2년 만에 자퇴한다. 이후 케임브리지대학 신학과에 입학해 신학자를 꿈꾸며 졸업까지 했지만 그는 이 기간 식물학 연구에 눈을 뜬다.

졸업 후 박물학자로 해군 탐험선 비글호에 승선한 다윈은 5년간 생물학·지질학·광물학 등 다양하고 새로운 지식을 접한다. 귀국 후 시작한 「종의 기원」 집필은 무려 20년에 걸쳐 완성됐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까닭은 확실한 증거 수집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찰스 다윈 자신도 신학자를 꿈꿨을 만큼 19세기 당시 유럽 사회에서 신과 종교의 위상은 여전히 높았다. 영화 ‘종의 기원’은 찰스 다윈이 책을 출판하기까지 겪은 심적 고통과 그의 가정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은 영국에서 다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다소 폐쇄적 성향의 찰스는 장녀 애니가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사망하자 커다란 절망감과 상실감에 빠져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잠도 잘 수 없고 식사조차 할 수 없는 날이 길어지면서 찰스는 딸의 환영을 보게 된다. 상태가 이렇다 보니 연구에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찰스는 딸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진 상태였다. 자책의 마음은 아내와 관계도 더욱 멀어지게 했다. 어쩐지 아내가 자신을 나무라는 듯해 가족 앞에 서지 못했다. 게다가 찰스가 연구하는 진화론은 독실한 기독교인인 아내의 믿음에 배치되는 내용이기도 했다. 이런 여러 상황들이 그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그런 역경에도 불구하고 찰스와 엠마는 사랑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붙잡고 놓지 못하던 아이를 부부는 결국 보내 주고, 아버지의 사랑을 바라는 남은 아이들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찰스는 집요한 연구 끝에 지구상 생물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책 「종의 기원」을 1859년 발표한다.

인류의 세계관을 바꿔 놓은 다윈의 「종의 기원」은 출판 당시 창조론과 대립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오래지 않아 대부분 지식인들은 신앙심과는 별개로 과학으로 증명된 진화론을 받아들였다. 이는 찰스 다윈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보다 아내 엠마가 남편의 진화론을 적극 수용했다. 책을 집필하면서 다윈은 서서히 무신론자로 변해 갔지만 아내는 끝까지 신앙심을 잃지 않았다. 극명하게 다른 종교적 관점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서로를 지지하고 신뢰했고 사랑했다. 

영화 ‘종의 기원’은 다윈의 위대한 업적을 칭송하는 데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집필 과정에서 겪은 아픈 가정사와 개인적 좌절, 두려움 따위의 감정을 극복하는 모습을 통해 찰스 다윈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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