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훈 인하대학교 스포츠과학과
오지훈 인하대학교 스포츠과학과

요즘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삼삼오오 모여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을 흔히 보인다. 특히 우리가 ‘MZ 세대’라고 부르는 세대 사이에서는 ‘조깅 붐’이 일어나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공원, 강가, 심지어는 인도를 질주하곤 한다. 더 이상 마라톤은 중년층 고유의 문화로 취급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왜, 무엇을 위해 달렸을까? 조깅 열풍의 시작은 1967년으로 생각보다 역사가 깊진 않다. 이전까지 미국에서는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했다. ‘다 큰 성인이 달리는 모습이 우습다’는 풍토였고,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보며 음료나 맥주를 던지기도 했다. 그들에게 조깅이란 ‘육상 선수를 흉내 내는 철없는 어른들이 하는 행동’쯤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1967년 나이키 공동창업자이자 육상코치인 빌 바우어만이 「조깅의 기초」라는 책을 출간하며 "신체만 있다면 누구나 운동선수다!"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했고, 평소 신체활동이 적던 주부, 직장인 사이에서 조깅 열풍이 시작됐다. 

한국에 조깅이 전파된 것은 1979년 지미 카터 前 미국 대통령이 방한한 것이 기점이다. 당시 지미 카터는 아침 일찍 주한미군부대에서 미군들과 함께 조깅을 했는데 이를 언론에서 보도하며 관심을 끌었다. 이후 오늘날까지 조깅을 포함한 걷기는 매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참여하는 생활체육 종목으로 발전했다. 조깅에는 수많은 장점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사랑받는 점은 ‘가성비’다. 조깅은 적은 비용, 적은 시간, 적은 환경 제약에 많은 효과를 낸다. 빌 바우어만은 "운동화든, 잔디 깎을 때 신던 장화든 상관없다. 우선 무엇이든 신고 나가보라"고 말했다. 이처럼 조깅은 신발과 안전한 장소, 24시간 중 한 시간만 있다면 누구든 즐기는 활동이다. 

최근 미국 UCLA 대학과 일본 교토대 공동연구팀은 ‘중년층이 일주일에 이틀이라도 8천 보 이상을 걸으면 10년 뒤 사망 위험이 15%까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8천 보는 일반 성인 보폭으로 약 6㎞, 1시간 남짓 소요된다. 여기에 출퇴근 시, 일상생활 중 걷는 걸음을 뺀다면 운동에 드는 거리와 시간은 더 적어질 것이다. 또한 신체적 건강뿐 만이 아니라, 신경계 활성화를 통해 우울한 생각과 잡념이 사라져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진다. 즉, 조깅은 무병장수와 질 높은 삶을 추구하기에 적합한 활동인 것이다. 

하지만 MZ 세대 사이에서 ‘조깅 붐’이 일어난 이유는 비단 건강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SNS를 통해 드러내려한다. 또 유행된 정체성을 닮고자 하는 욕망도 있다. 최근 유행한 정체성 중 하나는 ‘운동하는 사람’으로, SNS 상에서 사용하는 해시태그 중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은 2022년에만 83만 회 언급됐다. 조깅 문화는 SNS로 함께 뛸 사람들을 모집해 조직한 ‘러닝 크루’로 더 확장한다. 이 같은 조깅 문화의 확장은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특히 스포츠 의류 브랜드와 유통업계는 조깅을 즐기는 시민문화에 주목하며 다양한 조깅 관련 팝업 스토어와 행사를 기획해 기존 조깅 소비층의 니즈와 잠재적 소비층의 관심을 충족한다. 

이에 발맞춰 지자체와 지방체육회는 긍정적인 문화를 격려할 필요가 있다. 지역 주민의 통합을 이루는 몇 안 되는 매개 중 하나가 운동이다. 이에 목표 운동량 달성을 통한 멤버십 혜택, 이를테면 지역 기반 스포츠 용품업종과의 연계를 통한 바우처 지급, 기부제 등과 같은 거버넌스 정책으로 건전한 운동 문화를 장려할 필요가 있다. 도보, 자전거 이용 시 교통비를 할인해 주는 취지로 지난 2019년 시행돼 현재 시민들의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알뜰 교통카드’는 좋은 사례다. 특히 기업의 ESG, CSR 경영이 중시되는 산업계와, 사회에 긍정적인 참여를 원하는 MZ 세대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지자체와 지방체육회 입장에서도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무병장수를 위해, 누군가는 정신적 건강을 위해, 또 누군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오늘도 달린다. 사람들이 달리는 이유는 단일적이지 않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우리 모두 달리는 방법을 모르고 있진 않다는 것이다. 오늘 일과 후 신발을 챙겨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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